『천공의 벌』, 히가시노 게이고, 2016, 재인
일본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5년, 그러니까 22년 전에 쓴 『천공의 벌』은 지금 읽어도 손에 땀이 차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소설 중에 등장하는 통신기기가 예를 들어 호출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을 뿐, 오늘 뉴스에 나오는 장면들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현실적이다.
소설의 제목에 나오는 ‘벌’은 두 가지 의미다. 핵발전소를 공격하기 위해 주인공들이 납치하여 원격 조정하는 대형 헬리콥터의 별명이기도 하고, 핵발전소의 원초적 위험성을 시민들에게 일깨우는 핵발전소 사고를 벌의 침에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확신범’들은 스스로를 ‘천공의 벌’이라 칭하며, ‘신양’이라는 이름의 고속증식로 위에 폭탄을 실은 헬리콥터를 띄워놓고는 일본의 모든 핵발전소를 파괴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
700페이지 가까운 이 소설은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핵발전의 갖가지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하필이면 어린 소년이 헬기에 홀로 태워져 천공에 머물게 되고, 이 소년을 스펙터클하게 구출하며 끝이 난 줄 알았던 소설은 이제 겨우 절반이 지났을 뿐이다. 추리소설이지만 핵발전소 하청노동자 이야기이기도 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와 핵발전소가 입지한 격오지 마을의 관계 이야기이기도 하며, 핵발전을 둘러싼 어른과 아이들의 갈등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핵발전 찬성 진영과 반대 진영, 일본의 용어로 ‘추진파’와 ‘반대파’에서 나오곤 하는 모든 논리와 사례들이 자연스레 등장한다.
“원전이 대형 사고를 일으키면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도 피해를 입게 돼. 말하자면 나라 전체가 원전이라는 비행기에 타고 있는 셈이지. 아무도 탑승권을 산 기억이 없는데 말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비행기를 날지 않도록 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그럴 의지만 있다면. 승객들의 생각도 모르겠고. 일부 반대파를 제외하곤 대부분 말없이 좌석에 앉아 있을 뿐 엉덩이조차 들려고 하지 않아. 그러니 비행기는 계속해서 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비행기가 나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비행기가 잘 날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어.”(423쪽)
소설 속의 확신범들은 이 침묵하는 승객들, 즉 일본 국민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임을 일깨우기 위해 극단적으로 보이는 방식으로 충격파를 던지고자 한다. 이 메시지는 야마가와 겐 감독의 2004년 영화 〈동경 핵발전소〉에서 동경에 핵발전소를 유치하자는 자폭성 공약을 발표하는 도지사의 선택과도 닮은 꼴이다. 동경도지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핵발전의 문제는 언제나 지역에 국한된,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는 일이 되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확신범이 마지막으로 발신한 팩스에는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이 다소 직설적으로, 그러나 문학적으로 담겨 있다. “원자로는 다양한 얼굴을 지녔다. 인류에게 미소를 보내는가 하면 송곳니를 드러낼 수도 있다. 미소만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침묵하는 군중이 원자로의 존재를 잊도록 해서는 안 된다. 항상 의식하고,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게 하라.”(674쪽)
어린아이는 벌에 쏘이고 나서야 벌의 무서움을 알게 되기에, 천공의 벌침이 교훈이 되기를 확신범은 그리고 소설가는 희망했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도 핵발전의 안전성을 다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핵발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의 압도적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벌과 벌침의 비유는 너무 착하고 약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탈핵신문 2017년 7월호 제54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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