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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평화, 해외

바탄 핵발전소 반대 투쟁의 기록

필리핀의 활동가들은 바탄 핵발전소를 모롱의 괴물이라고 부른다. 필리핀 바탄주 모롱에 소재한 이 핵발전소는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하에서 막대한 자금과 비밀, 부패, 인권 유린 속에서 건설되었다. 롤랜드 심블런 교수의 신간 핵 없는 나라 필리핀에서 민중 권력 대 핵발전은  이 괴물에 맞섰던 저항의 기록이다.

 

심블런 교수 스스로 핵없는필리핀동맹(NFPC)의 의장으로 활동해왔기에 증언과 설명은 직접적이다. 그는 바탄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전념해 온 이들, 희생당하고 사라진 이들에게 이 264쪽짜리 책을 헌정했다.

 

롤랜드 심블런의 신간 <핵없는 나라> 표지

 

바탄핵발전소(BNPP)와 맞선 최초의 이들은 모롱의 농부 그리고 인근 바탄 수출 가공지역의 노동자들이었다. 미국의 핵발전 회사인 웨스팅하우스사는 1976년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 필리핀에 핵발전소 수출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고, 모롱의 주민들은 지역 목사와 수녀의 도움을 받아 이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필리핀 당국은 군대의 위협으로 대응했다. 주민들은 BNPP가 그저 추상적인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민의 피해는 물론 부정부패, 낡은 설계, 잘못된 시공, 사람과 환경에 대한 위해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다.

 

참고로, 바탄핵발전소는 1983년에 가동을 시작한 한국의 고리2호기와 동일한 모델이다. 한 은행 문서는 BNPP가 마르코스 행정부에서 최대 규모의 사기 대출 프로젝트가 되었음을 드러냈다.

 

필리핀의 반핵운동은 마닐라의 소비자 보호 시민연합 조직에서 시작되어 1981년에 129개 조직의 연합으로 발전했다. 핵없는필리핀동맹은 법정 소송으로 BNPP와 싸우면서 노래와 시, 연극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BNPP1984년에 완공되어 우라늄 연료를 장전하여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핵없는필리핀동맹은 1985618일부터 20일간 대중파업을 통해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교통이 마비되고 회사들이 문을 닫고 작업이 중단되었으며, 군대의 위협 속에서도 마닐라시와 인근 지역 동조자들이 바탄 사람들과 합류했다. 핵없는 바탄 운동의 의장인 변호사 단테 일라야는 파업이 마르코스 축출로 이어진 19862월 에드사 도로의 피플 파워(People Power) 반란의 서곡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반독재 투쟁과 반핵 운동이 하나였던 것이다.

 

또한 전국 과학자연합은 바탄에서 4천 개 이상의 기술적 결함을 발견했다. 이런 사실과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체르노빌 핵사고는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BNPP를 보류하고 다음 대통령인 피데 라모스가 1993년에 이 결정을 지지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했다. 얼마 후 BNPP를 재개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났다. BNPP 건설 시작 때는 미국에서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가 있었으니 바탄 반대운동은 신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국과 필리핀은 거의 동시에 핵에너지 프로그램에 진입했지만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를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심블런 교수는 아시아의 핵산업은 지금도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필리핀의 에너지부와 과학기술부도 핵발전을 장기 에너지 옵션을 사용할 의사를 비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들은 BNPP가 실패한 것은 소통이나 홍보 문제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11월(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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