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핵발전소 부지선정, 열려진 판도라의 상자
진상현 교수(경북대학교 행정학부)
삼척시·영덕군, 신규 핵발전소 예정구역으로 확정
2012년 9월 14일 지식경제부는 강원도 삼척시와 경상북도 영덕군을 신규 핵발전소 예정구역으로 확정했다. 작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직전 신청한 3개 지자체 가운데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선정한 결과였다. 앞으로 지질조사, 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신규 핵발전소 부지선정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선을 코 앞에 두고 핵발전에 대한 찬반 논란이 활발히 진행 중인 현 시점에서, 예정보다 석달이나 빨리 공표된 부지선정은 핵 공화국을 변함없이 강화하겠다는 찬핵진영의 포석이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말기, 핵발전 정책 논란 중에 성급한 발표
지난 8월 KBS 시사토론에서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을 만나 지금의 전력부족 사태와 핵발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전임자 최중경 장관은 카리스마 넘치는 행정가였다. 사업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강했기 때문에 별명이 ‘최틀러’일 정도였다. 그만큼 힘 있었던 장관을 사임하게 만들었던 계기는 단 한 차례의 정전이었다. 현 홍석우 장관은 작년 9·15 정전사태로 인한 최중경 장관의 사임 직후 임명되었기 때문에 전력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부임하자마다 동절기 절전대책을 추진하느라고 진땀을 빼야 했으며, 올 여름에는 하절기 전력피크를 앞두고 정전 대비 민방위 훈련이 실시되었을 정도였다. 덕분에 현 장관은 ‘절전 장관’으로 불리고 있다.
당시 TV토론에서 홍석우 장관께 드린 부탁이 하나 있었다. 핵발전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성급히 판단하지 말고 차기 정부에서 고민할 수 있도록 유보해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홍석우 장관의 임기가 1년 남짓에 불과하고, 12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논란이 되는 핵발전 정책을 성급히 결정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핵발전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찬핵진영과 반핵진영 간의 대화와 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소통하려면 기본적인 사실 확인에서부터 상호간의 경제적 손익에 대한 이해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의 가치관에 대한 존중까지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분히 논의하고 고민하는 사회적 학습과정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대선후보들 가운데는 지금까지 핵발전을 확대해오기만 했던 대한민국 에너지정책에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합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장기적으로 핵발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으며, 안철수 후보도 저서를 통해 핵폐기물처리 등의 외부비용을 반영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핵발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소견을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새누리당을 제외한 대선 후보 2명이 핵발전에 대해 반대하는 상황이라면, 논란이 되는 정책을 정권말기에 1년짜리 단기 장관이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전혀 없다.
탈핵의 가장 시급한 과제,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
대한민국이 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 그 보다 한 발 앞서 신규 핵발전소 부지선정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지금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했으며, 탈핵으로 전환하겠다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선언한 상태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느라 일본은 뒤늦은 후회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이웃국가인 한국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국가전망과 계획을 수정해야한다. 그렇지만 현 정부는 국민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신규 핵발전소 부지 발표를 강행하며, 핵공화국 발전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결과를 살펴보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의존해온 핵발전을 당장 중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제도적 장치와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바람을 실현시키라고 만들어진 결사체가 정부이다. 그런 정부가 지금은 국민들의 소망과 반대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을 섬기는 정부로 거듭나게 만들어야 한다.
시민들의 힘으로, 핵발전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잘못된 신규 핵발전소 부지선정을 되돌리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탈핵이라는 전망을 갖진 후보자에게 투표해야 한다. 핵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후보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우리는 핵의 위험을 40년은 더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힘을 결집시켜야 한다. 삼척시장 주민소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후보지 선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하고, 법률적․제도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철회시키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법이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시민들의 힘을 모아 탈핵이라는 바람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원칙 하나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경제성과 현실론으로 무장한 찬핵진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은 시민들이 핵발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낸 신규 핵발전소 부지선정 철회가 핵발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발행일 :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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