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을 정책전원으로 보는 7차 전력계획
한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7차 전력계획) 초안이 공개됐다. 그동안 핵심 쟁점은 신규핵발전소와 노후핵발전소 폐쇄 여부였다. 6월 초 7차 전력계획 초안이 공개되기 전부터 고리1호기 폐쇄를 둘러싼 소문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지난 6월 16일 한수원 이사회를 통해 고리1호기 수명연장 신청 포기 결정이 최종적으로 내려지면서 큰 쟁점 중 하나가 종결되었다.
고리1호기가 폐쇄 절차를 밟는다고 해서 우리나라 핵발전 중심의 전력정책이 중단되는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핵발전소를 더 많이 짓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7차 전력계획 초안에는 ‘정책성 전원’이란 표현이 나온다.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집단에너지, 핵발전 3가지 전원을 정책성 전원이라 규정하고 석탄이나 LNG 등 다른 발전원에 비해 먼저 전력계획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 국민이 핵발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왜 핵발전이 ‘정책성 전원’으로 선정돼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없다. 다만 2013년 확정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설정한 핵발전 비중 29%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설명일 뿐이다.
7차 전력계획 논의에서 또 하나의 쟁점이었던 전력수요 증가 문제 역시 정부는 전력수요 증가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과 2014년 전력수요 증가율이 각각 1.8%와 0.6%에 이르는 등 최근 전력수요가 급감하고 있으나, 정부는 연평균 전력수요 증가율을 2.2%로 잡았다. 또한 과잉설비라는 비판이 이어졌던 전력설비 예비율을 기존 정부안대로 22%로 설정했다.
그 결과 2029년까지 우리나라는 모두 13기의 핵발전소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 지역별로는 기존 핵발전소 예정부지이외에도 2027년까지 영덕에 2기의 핵발전소를 짓고, 2028년과 2029년에 추가 건설될 핵발전소를 삼척에 지을지 영덕에 지을지 여부는 2018년까지 결정하기로 했다. 결국 영덕에는 2~4기의 핵발전소가 건설될 예정이다.
다른 계획은 불가능한가…대안적 7차 전력계획
정부의 이와 같은 계획이 나온 배경에는 앞으로 전력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깔려 있다. 지금까지 전력정책은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맞춰 공급계획을 잡는 공급위주의 전력계획이었다. 바꿔말해 전력수요가 얼마가 되든 그 수요를 맞춰 발전소를 짓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간 탈핵진영은 수요관리중심의 전력 정책을 세울 것을 촉구해 왔다. 무한정 늘어나는 전력수요가 아니라, 경제 여건과 상황에 맞춰 전력 공급 상한선을 정하고 이에 맞춰 수요를 줄이거나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흐름이나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할 때 과거와 같은 공급 위주의 전력정책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지적 또한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녹색당과 에너지정의행동은 최근 대안적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다. 즉 매년 2.2%씩 전력수요가 고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 둔화와 에너지효율 향상, 수요 관리 등을 통해 2029년까지 전력수요 증가율이 0.09% 정도임을 감안하고 이에 따라 새롭게 전력계획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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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7차 전력계획 |
대안적 7차 전력계획 |
전력소비 |
연평균 2.2% 증가 |
연평균 0.09% 증가(둔화) |
핵발전소 |
13기 건설 |
12기 폐쇄 |
영덕·삼척 핵발전소 |
건설 필요 |
불필요 |
노후핵발전소 |
폐쇄 계획 없음 (고리1호기 제외) |
모두 폐쇄 (수명 다한 노후핵발전소) |
<정부 전력계획과 대안적 전력계획 비교>
대안적 전력계획에서 핵심은 ‘징검다리 전원’으로 천연가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천연가스는 석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40% 수준에 불과하고, 각종 대기 오염물질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천연가스발전의 비중을 일시적으로 늘림으로서 기존 석탄화력발전소를 대체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가 보급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전력 소비를 예측해보면 현재 527TWh(테라와트아워) 수준인 전체 발전량은 2029년 523.6TWh로 현재보다 약간 줄어들게 된다. 정부는 2029년 발전량을 총 710.3TWh로 예측하고 있으므로, 정부 계획에 비해 약 35% 정도 전력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을 바탕으로 전력계획을 세운 것이다. 발전 비중은 현재 75% 수준인 핵발전, 석탄 등 반환경적인 발전원 비중을 2029년 29.1%로 줄인다. 대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 비중은 현재 25% 수준에서 70.9%로 급증하게 된다.
대안을 고민하는 열린 논의가 필요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탈핵시나리오가 발표된 바 있다. 이번 대안적 7차 전력계획(안)은 그 연장선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미 전체 전력의 30% 정도를 핵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탈핵정책은 당위적으로만 설명하기 힘들다. 탈핵시나리오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에 발표된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전력수급을 둘러싼 시나리오는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누군가는 지금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멈추라는 더욱 강경한 시나리오를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는 재생에너지 100%를 실현하는 시나리오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합리적인 근거와 원칙을 갖고 있다면, 모두 검토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에너지원을 쓰게 될 것인지에 대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전력계획 발표와 강행이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가치를 담은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폭넓게 논의하는 ‘열린 마당’이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우리에겐 이런 마당이 준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나올 8차, 9차 전력계획에선 다양한 생각과 가치가 담긴 시나리오가 서로 경합을 할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지난 6월 18일(목)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한빛홀에서 있었다. 당일 행사장 안에서, 해당 지역주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일방적인 공청회 진행을 규탄하며, 7차 전력계획 ‘전면 재수정’, ‘무효’라며 항의하고 있다. 행사장 바깥에서는 제한적 입장권 배부로 입장하지 못한 지역주민, 야당 관계자 등이 항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제공 = 이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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