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산업으로부터 독립된 규제기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김혜정(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세계적 흐름과 달리, 독립성을 위협받고 있는 한국의 안전규제
2011년 10월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설치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 진흥부서에 통합돼 있던 규제부서를 분리·독립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 원안위를 진흥부서인 미래부로 다시 통합하려고 했다가 야당의 반대로 국무총리실 산하로 격하시키는 선에서 정부조직을 개편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협상을 통해 국회가 원안위 전체위원 9명(상임 위원장·사무처장, 비상임위원 7명) 가운데 비상임위원 4명(여야 각 2명)을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안전협약에서 원자력 진흥·이용과 안전규제는 철저히 분리·독립되어 수행해야 한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세계는 모두 진흥과 규제를 분리할 뿐만 아니라 규제기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규제기관은 행정부서에도 속하지 않을 만큼 독립적 위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뒤늦게 규제기관을 발족했지만 원안위의 실질적 위상과 역할은 취약한 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핵마피아 수장을 초대위원장에 임명했고, 박근혜 정부는 원안위가 아니라 산업부 중심으로 원자력안전 컨트롤타워를 수립하라고 할 만큼 규제기관의 위상을 위협했다. 이러다보니 지난 봄, 핵발전 진흥부서인 산업부가 핵발전 사업자에 대한 규제권을 가지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는 데 까지 이르렀다.
핵산업계 인사들이 주요 요직을 차지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지난 수십 년간 국책사업으로 핵발전 산업이 육성되어오는 동안 핵산업계가 연구개발은 물론 핵발전 사업과 운영, 규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장악해왔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핵발전 3대 강국을 국가목표로 핵발전 확대와 수출, 신규 핵발전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해왔다. 핵발전 위주의 국가정책, 강력한 힘을 가진 핵발전 산업으로부터 독립된 규제기구를 제대로 세우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안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조직의 위상뿐만 아니라 핵발전 산업으로부터 독립된 인적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원안위는 1기 원안위(2011.10.26~2013.8.5)에 이어 2기 원안위(2013.8.6~현재)도 여전히 핵산업계 인사들이 주요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2기 원안위에 국회 추천 야당 비상임위원이 참여하면서 핵발전 산업으로부터 독립된 인사의 참여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비상임위원들은 상근을 하지 않는데다 사무처에서 작성한 안건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종종 하루 종일 회의를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만 다수의 핵발전 친화적인 위원과 사무처 장벽을 넘는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의 75%, ‘대형 사고 걱정’…60%, ‘노후핵발전소 가동 중단’ 응답
미국과 프랑스의 규제기관은 독립적일뿐만 아니라 전원 상임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위원마다 상근 인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핵발전 5대 국가로서 핵발전 확대를 추진해오는 동안 핵산업계가 모든 분야를 장악하면서 규제기관의 설립을 저지해왔다.
비록 최근 시대적 상황에 떠밀려 규제기관이 설치되어 있지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원자력안전에 대한 국민 신뢰는 밑바닥 수준이다. 7월 23일 CBS 노컷뉴스가 전국 성인 남·여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 국민의 75.3%가 우리나라에서도 후쿠시마 핵발전소와 같은 대형 사고가 일어날까봐 걱정하고 있으며, 60.4%는 노후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상 강화, 상임위원 수 확대, 사무처 인적 개혁 필요
국민들의 걱정에 화답하려면 원안위가 말 그대로 실질적 규제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처럼 야당 추천 비상임위원 한두 명 참여로 구조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국회에는 원안위 위상을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으며, 상임위원 수 확대안도 준비 중에 있다.
원안위의 위상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키는 것과 상임위원 수 확대와 더불어 원안위의 인적 개혁도 중요하다. 규제기구를 핵발전 산업의 보조적 기능으로 보는 핵산업계가 규제권까지 갖게 해서는 안된다. 핵발전 위주의 국가정책인 상황에서, 핵산업계를 의식하는 핵발전 진흥론자가 핵산업계를 규제한다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규제기구가 핵산업계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핵발전으로부터 독립적인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국가위원회에서는 상임위원뿐만 아니라 사무처에도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이 참여해왔다.
지자체까지 포함된, 독립적인 기구들의 다층적인 감시·규제가 필요
나아가 핵발전소 주변 지방자치단체에도 법적 권한이 부여된 감시기구가 설치돼야 한다. 지역에서부터 중앙까지 핵발전 산업자로부터 독립된 시민참여기구들이 다층적으로 감시와 규제 기능을 할 때 진정한 안전규제 체계가 정립될 수 있다. 원안위 설치법 개정과 더불어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감시기구를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발행일 : 20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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