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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핵발전소 수명연장 검토에서 빠진 것들

핵발전소 수명연장 검토에서 빠진 것들

안전성, 경제성, 사회적 수용성 종합적 검토가 필요!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와 세월호 참사 이후 수명이 끝난 핵발전소 수명연장 문제가 우리 사회 주요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낡은 핵발전소에 대해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말 그대로 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때마다 전문가 심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인했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안전성 논란은 꽤 오래된 이야기다. 특히 주요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설명회나 공청회 개최도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 않아 안전성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 반복되어왔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인정되면 노후 핵발전소를 가동해도 괜찮은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된다’.

핵발전소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계장치인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자동차는 법률로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다. 10년 정도 사용하면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경제형편이 좋지 못한 나라에선 20년 이상된 자동차도 잘 다니고 있다. 현재 운전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멈춘다든지, 차체 부식으로 사고시 탑승자 보호가 힘들다고 판단되면 차량을 바꾸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거나 새 차에 대한 욕심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신기술이 적용되어 연비와 성능이 향상된 자동차를 원해서 바꾸기도 한다. 이런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타고 다녀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자동차 이외에도 핸드폰, 냉장고, TV 등 거의 모든 기계장치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유독 핵발전소에 대해서는 기술적 검토를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보고 있는가? 현행 원자력안전법에는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해서는 오직 안전성 검토만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위해 한수원은 각각 수천억원의 비용을 투자했다. 자동차로 치면 낡은 부품을 교체하고 수리하는 비용이다. 한수원은 이미 수명이 다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렇게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타당한 지 검토했을까? 이를 검토한 경제성 분석보고서는 본문이 30여 페이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영업비밀이라 비공개 상태이다.

한수원이 삼성이나 LG처럼 민간 기업이라면 이 말은 맞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수원은 공기업이다. 바꿔 말해 고리1호기와 월성 1호기는 국민 소유다. 따라서 경제성 분석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며, 수명연장에 매우 필수적인 사안이다. 정부가 진행하는 다른 대규모 사업에 대해서는 타당성을 검토해서 제출하고 심사하는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유독 핵발전소 수명연장엔 그런 과정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간 한수원은 수명연장 결정 이전부터 대규모 설비공사를 하나씩 진행해 왔다. 2009년 월성1호기 압력관 교체 사업, 2013년 고리1호기 원자로헤드 교체사업 등은 모두 수명만료를 몇 년 앞두고 진행된 대규모 사업이었다. 폐차할 차에 더 이상 수리비를 들이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노후 핵발전소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주민들의 수용성 문제도 핵발전소 수명연장의 주요한 판단기준이다. 한수원 입장에선 핵발전소 수명연장은 설계수명이 끝난 상태에서 그것을 연장하는 것이기에 발전소를 하나 더 짓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정에선 지역주민들의 수용성이 매우 중요한 변수로 공청회뿐만 아니라 수차례 설명회를 통해 핵발전소 건설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이 절차마저도 형식적이어서 매번 공청회와 설명회가 무산되는 등 많은 진통을 겪는다. 이런 형식적인 절차마저도 없는 수명연장 과정은 2007년 고리1호기 수명연장 당시 수차례 지적되었으나,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민의 절대 다수가 불안해하고 반대하는 핵발전소 수명연장에 대해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통로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15년 안에 현재 가동 중인 23기의 핵발전소 중 12기의 설계수명이 끝나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제 본격적인 노후 핵발전소 시대에 접어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수명연장 절차는 아직 일천한 수준이다.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안전성 검토는 물론이고 핵발전소의 경제성과 지역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핵발전소 수명이 만료될 때마다 지루한 논쟁과 갈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비생산적이고 몰상식한 일들을 지금이라도 뜯어고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욱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발행일 : 2014.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