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비 급증, 재생에너지 맹추격…설 자리 잃은 핵산업
2014년 ‘세계 핵산업 동향 보고서’ 분석
이지언 편집위원
국가 주도의 강력한 정책에 따라 핵발전이 강세를 보이는 한국과 달리,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핵발전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소 운영비용의 증가와 후쿠시마 재앙, 재생가능에너지의 맹렬한 추격으로 인해 핵발전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핵발전이 에너지 공급에서 담당하는 몫도 크게 줄어, 전력 비중의 17.6%로 최대치를 기록했던 1996년 이후 하향세를 보여 2013년 현재 10.8%로 나타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지난 7월말 발표된 2014년판 ‘세계 핵산업 동향 보고서(이하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이번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핵발전소 가동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난 7월 기준, 31개국에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총 388기로, 지난해보다 39기 줄었고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2년과 비교해보면 50기 낮은 수준이다. 2011년 사고로 영구 폐쇄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6기를 제외한 일본 핵발전소 48기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운영 중’으로 분류한 것과 관련해 보고서는, ‘해당 발전소 대다수가 현실에서는 18개월 이상 장기간 가동중단 상태에 있다’며 43기에 대해서는 가동되지 않는 핵발전소로 평가했다. 30년 설계수명 만료에 따라 2012년부터 가동 중단에 들어간 한국의 월성1호기 역시 ‘장기간 가동중단’ 상태로 규정됐다.
핵발전소 공사 기간 늘어나고, 건설비용 상승…적자에 허덕이거나 정부 보조금에 의존
가동 핵발전소의 감소에 따라 에너지 비중도 하향곡선을 그렸다. 핵발전이 1차 에너지에서 차지하던 비중은 2013년 4.4%로 나타나 198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예정된 공사기간이 길어지면서 상당수의 추가 핵발전소 건설이 차질을 빚고 있다. 대만에서는 과거 15년 동안 건설 중이던 룽먼 핵발전소 2기가 얼마 전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공사 중단이 선포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20년 이상 ‘건설 중’이라고 확인된 핵발전소만 8기에 이른다. 특히 동시다발적인 핵발전소 건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경우, 총 28기 중 21기에서 공사기간이 연장됐다고 확인됐다. 현재 14개국에서 건설 중인 핵발전소는 총 67기로, 여기서 64%에 해당하는 43기가 중국, 인도, 러시아 3개국에 집중됐다.
공사 기간뿐 아니라 핵발전소 건설 비용도 크게 상승하면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사업자의 수익을 보전해주기 위한 보조금 투입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발전단가와도 직결되는 핵발전소 건설 투자액이 지난 10년 동안 킬로와트당 1천 달러에서 8천 달러로 8배로 증가한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중국, 핀란드, 프랑스를 비롯한 모든 국가에서 사실상 핵발전소 건설비용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늘어난 핵발전소 운영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사업자들이 적자에 허덕이거나 리스크가 큰 신규 사업에 대해서는 국가 보조금에 의지하도록 만들고 있다. 핵발전소 운영비용이 전력 도매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거나 이미 초과했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운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경우, 운영비가 전력판매수익을 초과해 2012년에만 약 15억 유로(약 2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독일 최대 전력기업인 이온(E.ON)이 현재 운영 중인 핵발전소를 법적 시한보다 7개월 일찍 폐쇄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바로 적자운영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평가됐다.
영국 정부는 신규 핵발전소의 운영비를 보전해주기 위해 (주로 재생가능에너지에 적용되는) 일종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다만 이런 식의 국가 보조금이 유럽연합 경쟁규약의 위반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심사가 진행 중이며, 결국 상당한 정책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만큼 국가 차원의 포괄적 지원 없이는 사업자가 신규 핵발전소 사업에 뛰어들기를 주저하는 형국이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체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입찰을 포기한 체코전력공사(CEZ)의 결정에 대해 ‘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반대로 핵발전소 건설사업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에 부정적’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핵발전소 부품 비리 사건, ‘한국 핵산업 이미지 심각하게 훼손’
보고서는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고 28년이 지났지만, 이른바 3세대 핵반응로를 비롯한 차세대 핵발전소 중 상업 가동을 시작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국형 원전’으로 홍보되던 APR1400에 대해 한수원과 한국전력의 설계인증 취득신청이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로부터 지난해 말 기각된 바 있다. 기각 사유는 핵심 분야에 대한 정보 누락이었다. 이번 보고서는 한국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핵발전소 부품 비리 사건을 다루면서 “단기간에 걸친 핵발전소 건설과 안정적인 운영으로 높은 수준을 인정받던 한국 핵 산업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올해 보고서는 지난해에 이어 ‘후쿠시마 현황 보고서’를 특별히 포함해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과 힘겹게 싸우는 현실을 비중 있게 다뤘다. 현재까지 핵발전소 사고와 피난에 따라 정신적 피해를 입거나 의료적 보호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람은 약 1천 7백 명으로 공식 집계됐다고 전하며, 자살률 증가에 대해서도 경계를 표현했다.
핵발전 감소와는 달리 풍력 25%, 태양광 43% 가파른 성장률
핵발전소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홍보되는 것과 달리, 현실을 보면 빠르게 늘어나는 발전원은 풍력을 비롯한 재생가능에너지로 나타났다. 2000년에 비해 풍력은 25%, 태양광은 43%의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핵발전은 19GW(기가와트) 가량 줄어 0.4%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만 풍력 32GW와 태양광 37GW가 추가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재생가능에너지가 전력 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핵발전으로 대표되던 기존의 기저부하 개념이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시간의 변화와 관계없이 항상 유지되는 일정 수준의 전력수요를 의미하는 기저부하는 주로 24시간 일정한 출력을 내는 핵발전의 몫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재생가능에너지에 의한 전력공급 비중이 확대되면서, 날씨의 변화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는 에너지 수요와 재생에너지 생산량에 맞춰 화력발전이나 핵발전의 출력을 유연하게 조절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경제적이고 기술적 한계로 인해 출력 조정이 가장 경직된 핵발전으로서는 전력수요가 낮아져 전력거래가격이 떨어져도 어쩔 수 없이 출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풍력과 태양광의 비중이 높은 독일과 같은 국가들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발행일 : 2014.9.1
'전국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핵발전소 수명연장 검토에서 빠진 것들 (0) | 2014.10.08 |
---|---|
핵산업으로부터 독립된 규제기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0) | 2014.09.20 |
6·4 지방선거 이후 탈핵운동의 현황과 과제 (0) | 2014.07.16 |
세월호, 핵발전소 그리고 위험한 한국 사회 (0) | 2014.06.10 |
실효성 있는 방사능 방재대책의 수립, 이제 시작이다. (0) | 2014.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