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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세월호, 핵발전소 그리고 위험한 한국 사회

세월호, 핵발전소 그리고 위험한 한국 사회

 

한재각(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수명을 넘겨 37년 째 가동중인 고리1호기 >

 

결국 세월호 실종자 중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유족들의 슬픔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며, 무능하기만 했던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유족들과 시민들은 청와대 앞을, 또 수많은 거리 위를 메우기 시작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사과까지 했고, 해양경찰을 해체한다는 등의 파격적인 조치도 천명하였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정부의 책임을 묻는, 애도와 분노의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사과에 진정성이 담긴 것인지,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인 것인지 사람들은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단지 악어의 눈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세월호 사과 발표 직후, 대통령은 서둘러 UAE 수출 핵발전소 행사 참가

눈물의 사과 이후, 박대통령이 UAE 수출 핵발전소와 관련된 석연치 않은 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한 것은 불길한 상징으로 읽힌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에도 핵발전소를 수출하겠다며 출국을 감행한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떠오른다. 나아가 승객을 버려두고 무책임하게 세월호를 빠져나온 - 박대통령 자신이 살인 행위와 같다고 비난한 - 선장의 허둥대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과연 한국호의 선장은 우리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까? 세월호의 선장처럼 우리를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지는 않을까? 불행히도 세월호 사과 발표 이후, UAE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순간 박대통령은 세월호 선장보다 더 무책임한 선장임을 보여줬다.

 

세월호 사고를 보며,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고리·월성 노후 핵발전소

지난 대선 때, 경쟁자였던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의 사과가 진정이라면 당장 노후한 고리와 월성 핵발전소부터 멈춰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가 참여했던 정부에서 수명을 연장한 핵발전소를 겨냥한 것이라 좀 머쓱한 일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정말 세월호 사고를 반성하고 사과한다면, 안전은 뒤로 제쳐두고 경제성장과 이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던 정부 정책과 사회 질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노후 핵발전소부터 멈추는 것이라는 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 사고를 지켜보면서, 본능적으로 고리와 월성의 핵발전소의 안전을 걱정했다. 여객선의 안전을 점차 갉아먹었던 탐욕스런 자본과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정책 기조를 가진 정부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과연 낡고 고장이 잦은 핵발전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원전비리 사건으로 정부 고위관료부터 말단의 관리자까지 줄줄이 구속되었던 것은 핵발전소라는 엔진을 단 한국호가 이미 기울기 시작한 것을 보여주는 징후가 아니었을까? 지금도 검증되지 않은 부품들이 핵발전소로부터 제거·교체되었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재앙, 노후핵발전소를 당장 중단하라!

세월호 사건은 오래된 깨달음을 새삼스럽게 부각시켰다. 위험은 계급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에게 세월호 사고는 훨씬 치명적이었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그들이 강남의 아이들이었다면 그 비극의 크기는 훨씬 작아졌을지도 모른다.

낡은 고리와 월성을 생각하면 식은땀부터 흐른다. 핵사고가 발생한다면 인근에 거주하는 340만 명의 주민들 중 몇 명이나 구조의 손길을 얻을 수 있을까? ‘안전의 계급학은 세월호 사건에서 잠시 드러났지만, 만약 핵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재앙일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가 준 경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노후 핵발전소, 당장 운영을 중단하라.

발행일 : 2014.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