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있는 방사능 방재대책의 수립, 이제 시작이다.
장다울(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선임 캠페이너)
실제 사고가 발생하자, 방재대책이 실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 2월 그린피스는 후쿠시마핵발전소사고 피해를 입은 일본 피난민을 만났다. 이들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린피스는 그 증언자가 되어 전세계에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우리가 만난 피난민 중에는 후쿠시마핵발전소가 있던 후타바마치(双葉町)의 사고 당시 시장이었던 이도가와 카츠타카(67) 씨도 있었다. 그는 그린피스 활동가들에게 한 영상을 보여줬다. 후쿠시마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몇 개월 전, 도쿄전력이 사고가 나면 방재대책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지를 보여주고자 만든 것이었다. 본인도 나오는 그 홍보영상을 보여주며 이도가와 시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제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여러분께서 지금 영상에 보시는 대로 실행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재난대비에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한다는 일본도 핵발전소사고에서는 속수무책이었던 셈이다. 이는 현실적인 방사능 방재대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지난 5월초 ‘원자력 시설 방호·방사능 방재 대책법’ 개정법률안, 국회 통과
지난 5월 2일 제324회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재석 215인 중 찬성 213인, 기권 2인으로 통과됐다. 이번 개정안에서 방사능 재난, 즉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방재대책과 관련된 주요 내용과 의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방사능 누출사고가 났을 경우 인근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비상대책을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지역인 방사능 비상계획구역(8~10km)을 ‘예방적보호조치구역(3~5km)’과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20~30km)’으로 구분 및 확대하고 이를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가 아닌 법률에 명시했다. 이로써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아왔던 기존 방재대책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법적 토대가 만들어 졌다.
○예방적보호조치구역(PAZ, Precautionary Action Zone) : 원자력시설에서 방사선비상이 발생할 경우 사전에 주민을 소개하는 등 예방적으로 주민보호 조치를 실시하기 위하여 지정하는 구역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UPZ, Urgent Protective action planning Zone) : 원자력시설에서 방사선비상 또는 방사능재난이 발생할 경우 방사능영향평가 또는 환경감시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구호와 대피 등 주민에 대한 긴급보호 조치를 위하여 정하는 구역 |
둘째, 원자력사업자의 책임으로서 물리적 방호 교육과 훈련의 실시를 추가했다. 이에 따라 원자력사업자 즉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은 자체 직원과 방호와 관련된 단체 또는 기관의 직원을 대상으로 방호 교육을 실시하고, 물리적 방호 훈련계획을 수립하여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후 시행해야 한다.
방사능방재계획 부분적 개선…하지만 지역주민·시민단체 등의 기대에는 미달
작년 7월 그린피스는 <방사능 방재계획 2013-한국은 준비되지 않았다>를 발표하며,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한국정부의 비현실적인 방재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바 있다. 이어 부산 광안대교에서의 평화적 고공시위를 통해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다. 다양한 시민단체 및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후쿠시마의 교훈을 반영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방재대책의 개선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에 따라 작년부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방재대책의 종합적인 개선을 위한 관련 법의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립된 개정안이 이 같은 시민들의 요구와 준비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방사선 비상계획 구역의 미흡한 구분과 확대에만 그친 것은 안타깝다.
법 개정 이후 실효성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지자체의 후속조치가 필요
이번 개정안이 의미를 가지려면 개정안에 따른 원자력안전위원회 및 지방자치단체의 후속조치가 매우 중요하다. 실효성 있는 방재대책이 단순히 비상계획구역을 넓힌다고 해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핵발전소 부지 별로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이 정해지면 구역 내 인구분포, 도로망 및 지형 등 고유한 특성을 고려한 현실성 있는 대피 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또 구역 내 거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실효성 있는 방호교육 및 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선진국과 같이 구역 내 주민에게는 방호약품을 사전 배포하고, 전국민이 복용할 수 있는 방호약품을 점차적으로 구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 지방자치단체의 방재 관련 인력 및 예산이 확충돼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핵발전소 안전 강화, 장기적으로 탈핵만이 유일한 안전대책
후쿠시마는 30km 내 인구가 16만명이었다. 한국의 경우 가장 오래된 고리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긴급하게 보호조치가 필요한 시민이 343만명에 이른다. 이런 현실에서 아무리 방재계획을 잘 수립한다하더라도 대형 핵발전소사고 발생 시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 적이다. 그러므로 단기적으로는 안전 강화를 핵발전소 정책의 최우선으로 삼고, 단계적 탈핵으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탈핵만이 위험한 핵발전소에서 시민들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기 때문이다.
* 사진설명 :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지난해 7월 부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광안대교(고리핵발전소에서 25km 지점에 위치)에서 평화적 고공시위를 벌이며, 중앙정부 및 부산시에 적절한 방사능 방재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발행일 : 201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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