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비리 막겠다며, 규제권 가지려는 산업부
선수가 심판도 보겠다는 〈원전사업자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은 중단돼야 한다!
김혜정(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지난 해 12월 31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정수성 의원(새누리당, 경주시)을 통해 〈원전사업자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발의했다.
산업부가 ‘원전비리 근절 후속 종합대책’의 하나로 추진하는 이 법률안은, 핵발전 진흥부서인 산업부가 핵발전 사업자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물품의 구매, 품질과 성능관리, 핵발전 시설에 대한 규제권을 갖는 내용이다.
이 법률안은 지난 해 7월 박근혜대통령이 원전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며 산업부 중심의 컨트롤타워를 만들라고 주문한 것에서 출발했다. 모든 규제를 ‘암덩어리’로 보고 ‘쳐부숴야 할 원수’로 인식하다보니, 국민안전과 직결된 핵발전도 규제기관이 아니라 진흥부서인 산업부가 해도 된다는 시대역행적 정책이 추진되는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전 우리나라는 진흥과 규제가 한 부서에 통합·운영되어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랫동안 우리나라에 진흥과 규제의 분리를 권고해왔으나, 핵산업계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인 2011년 7월에야 핵발전 진흥과 규제가 통합된 〈원자력법〉을, 핵발전의 이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원자력진흥법〉과 핵발전 이용에 따른 안전관리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원자력안전법〉으로 분리하고,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2011년 10월 26일, 대통령 직속의 독립적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가 설치되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 시절, 신설된 지 채 2년도 안 된 원안위를 다시 진흥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로 통합하겠다고 발표했다. 야당의 반대로 통합은 무산되었으나 원안위를 국무총리 산하의 차관급으로 격하시키면서, 대신 전체 9명의 위원(상임=위원장·사무처장, 비상임위원=7명) 중 4명의 비상임위원은 국회 추천으로 임명하기로 합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 또다시 원전비리를 빌미삼아 진흥부서인 산업부가 규제권을 갖는 법률안을 추진하고 있다.
원자력 이용·진흥과 안전규제를 통합하는 시대역행적 법률
산업부의 법률안은 원전비리 재발 방지 대책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이나, 핵발전 사업 허가권과 핵발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진흥부서가 규제권을 갖게 되면, 진흥과 규제를 분리한 현행 법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게 된다.
우리나라가 체약국으로 가입한 국제원자력기구는 원자력안전협약에서 원자력의 이용·진흥과 안전 규제를 엄격하게 분리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일본 등 핵발전을 이용하는 모든 나라가 진흥과 규제를 분리하고 있으며, 정부가 핵발전 안전에 대한 규제·관리감독을 이원화하여 추진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이후 경제산업성 산하의 원자력규제청이 원자력규제위원회로 분리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전기사업법〉과 〈원자로 등 규제법〉에 규정된 안전규제내용이 〈원자로 등 규제법〉으로 일원화되었다.
원전비리 명분삼아, 산업부 강화하는 법률
산업부 법률안에서 다루고자 하는 원전사업자에 대한 관리 감독과 핵발전소에 사용되는 물품의 구매, 품질과 성능관리, 핵발전 시설의 관리 등은 이미 원안위가 원자력안전법령과 규칙 및 기준 등을 통해 시행하고 있다.
현재 원안위도 시험성적서 위조·변조 등 원전비리 방지와 원자력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몇 개의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 발의한 상태이다. 원전비리 방지 대책을 강화하는 데 있어, 현행 원자력법령 및 원자력안전법 개정안 등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이는 원자력안전법 개정을 통해 충분히 보강할 수 있으며, 핵발전 안전 전반에 관한 모든 규제는 원안위 소관으로 일원화되어야 한다.
결국 진흥부서인 산업부가 규제권을 갖게 되면 핵발전 안전성과 국민 안전보다, 경제성을 우선시 할 수밖에 없으며 후쿠시마 이전 일본의 ‘규제 실패’와 ‘규제 포획’을 재현하는 것으로, 원자력안전규제기관의 무력화를 가져오게 될 수밖에 없다.
원자력안전규제기관 위상강화를 통해, 원전비리방지와 안전규제체계 구축
세계 5대 핵발전 국가(미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한국) 중 미국, 러시아, 일본에서 대규모 핵사고가 발생했으며, 프랑스의 경우에도 미국의 쓰리마일 핵발전소사고(1979년) 이후 1980년 생 로랑 발전소에서 우라늄이 용해되는 4등급 사고가 발생함으로써, 핵발전소 수가 많을수록 사고 확률이 높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큰 사고가 나지 않았지만, 핵발전소 고장 사고 원인의 62%는 인적실수와 부품불량으로 밝혀지고 있는데다 낡고 노후한 원전이 많아지면서 사고의 위험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은 원자력규제기관이 정치·법률·재정적으로 완전하게 독립되어 있어 규제기관이 강력한 규제권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도 후쿠시마 이후 규제기관 분리와 독립이 강화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박근혜정부들어서 규제기관인 원안위 위상이 차관급으로 격하되어 장관급인 산업부와 미래부의 실질적 규제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위상으로 인해 원안위는, 핵발전 확대 및 수출 중심의 정부로부터 독립성이 약할 뿐만 아니라 원자력안전, 핵안보 등에 대한 정책·제도 수립과 각종 인·허가와 검사, 이행조치 점검, 사고·고장 대응 등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원전비리는 일본 후쿠시마 사태 원인과 같이 지난 수십년간 한수원 등 핵 산업계와 관료, 학계 등 폐쇄적 핵발전 집단이 공조·결탁한 구조적 비리이며, 핵 산업계 등을 독립적으로 규제할 기관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핵 산업계의 주무부처인 산업부야말로 원전비리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데, 책임은커녕 오히려 규제권을 가져가는 본말이 전도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핵 산업계 비리 재발 방지와 핵발전소 부품의 품질 등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려면 〈원전사업자 등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 제정이 아니라, 핵 산업계와 핵발전 안전관리의 주무부처인 원안위를 다시 대통령 직속의 장관급 위원회로 위상을 격상하여 강력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핵심적 해결책이다.
다행히 지난 2월 국회에서 시민사회와 야당의 반대로 이 법률안은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4월 법률안이 재상정될 것이기 때문에, 국회에 대한 감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선수가 심판도 보는 〈원전사업자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안〉은 중단되어야 한다.
발행일 : 20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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