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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안보정상회의에서 체면치례는 고사하고 망신만 당한 박근혜 대통령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체면치례는 고사하고 망신만 당한 박근혜 대통령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사진출처 : 청와대>

갑자기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원자력방호법

3차 핵안보정상회의 개막을 10여일 앞둔 지난 313일과 14.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원자력방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국제 망신이라는 기사가 일제히 쏟아지면, 정국은 원자력방호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에 휩싸였다.

정확한 법률의 이름은 원자력 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핵발전소를 비롯한 원자력시설에 대한 방호와 핵테러를 비롯한 각종 방사능 재해에 대한 법률이다. 이 법률이 쟁점에 떠오른 것은 2012년 열린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합의한 핵테러억제협약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이 효력을 발효하기 위해서는 이 법률의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 협약은 201112월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처리되었고, 그 후속조치로 법률 개정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방호법 개정안은 201112월 국회에 제출되었는데, 20125, 18대 국회가 끝날때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19대 국회로 넘어왔는데, 아직 통과되지 못했던 것이다. 핵테러와 핵물질 방호에 관한 법률이다보니, 이 법의 개정안을 둘러싼 쟁점은 사실상 없다.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체면살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 출범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이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던 것일까?

원자력방호법을 다루어야 하는 국회 미래창조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는 보수 언론으로부터 불량 상임위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오던 상임위원회이다. 종편과 방송통신위원회를 둘러싼 여야의 갈등은 19대 국회 핵심 쟁점이었고, 이에 따라 법안처리는 고사하고 상임위 전체회의와 국정감사 파행이 수시로 이뤄져 왔다. 특히 최근에는 방송사 편성위원회구성을 둘러싸고 여야의 대치국면이 장기화되어 지난해 7월 이후 단 한건의 법안도 통과를 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논쟁으로 인해 개인정보보호법’, ‘단말기유통구조 개선법등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이 모두 처리되지 못했다.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주요 법안 114개를 먼저 처리하자는 합의를 했음에도 새누리당이 방송사 편성위원회 구성 방침을 바꾸면서 미방위는 열리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만들어진 원자력방호법 국면은 모든 것을 거꾸로 만들었다. 새누리당은 일제히 대통령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전까지 원자력방호법을 처리해야 하다며 집중 공세를 펼쳤고, 국무총리가 나서 원자력방호법 개정을 촉구하는가 하면, 급기야 여당 단독으로 임시국회까지 소집하고 대통령까지 나서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일부 언론들은 대통령 체면살리기라는 낯뜨거운 표현까지 써가며 핵안보정상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기 전까지 통과되어야 한다며, 한국과 네덜란드 헤이그의 시차까지 계산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코미디 같은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망신의 근거는 너무나 빈약했다. ‘망신을 주장하는 이들은 2012년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 개최국이었기 때문에 당시 합의된 협약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선언문에는 개정 협약이 2014년까지 발효되기를 촉구한다고 표현되어 있다. ‘다음 핵안보정상회의까지가 아니고, ‘2014년까지인 것이다. 특히 핵안보정상회의 제안국은 아직 이 두 협약을 비준조차 하지 않았고, 일본도 1가지만 비준하는 등 각국마다 사정에 따라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데, 갑작스레 체면운운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적절치 못했다.

이에 대한 야당의 대응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시작된 314, 정성호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이 법안은 새누리당의원들이 낸 법안이 아니라, 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201311월 낸 법안이라며 내용을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원자력방호법은 핵테러이외에도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내용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방사선비상계획 구역 관련 내용도 함께 담고 있다. 201311월 유승희의원이 대표발의 한 법안은 현재 8~10km 인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30km 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같은 법률의 개정안이지만, 핵안보정상회의 논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법안인 것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대통령 체면을 살리겠다며 동분서주한 여당, 내용파악도 못하고 동문서답을 한 야당. 이들의 대립과 고질적인 박근혜 정부의 불통 정치가 이어지면서 막판 대타협없이 원자력방호법 정국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체르노빌보다 위험한 연변 원자로?

하지만 또하나의 망신은 핵안보정상회의장에서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 영변 원자로에서 화재가 날 경우, 체르노빌 핵사고보다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며, 북한 핵프로그램 중단을 촉구한 것이다. 핵테러 세력으로부터 핵물질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을 논의하는 핵안보정상회의 장에서 북핵포기를 촉구하는 것이 적절한 발언이었는지는 차치하고, 이 발언에 대한 핵공학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영변 원자로의 위험성은 그동안 다양한 각도에서 지적되었다. 특히 화재 등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간 검토되었고, 그 사고 위험 또한 매우 우려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체르노빌 핵사고 이상이란 표현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것이다. 북한 영변과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같은 흑연 감속로이기는 하지만, 5MW급 실험용 원자로의 사고가 640MW급 상업용 원자로 사고보다 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사고시 피해 규모는 외부로 누출되는 방사성 물질의 양으로 결정되는데, 영변 원자로는 애초 핵물질의 양이 작기 때문이다. 이에 익명의 원자력 전문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이 국제회의 연설에서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을 하게 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청와대 참모진의 잘못을 탓했다. 앞서 영국의 한 군사전문기관이 이와 같은 보고서를 발표하고 국내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대다수 원자력전문가들은 이 보고서 내용에 회의적인 의견을 밝혔음에도 박근혜 대통령 발언에는 해당 내용이 그대로 인용된 것이다.

 

평소의 무관심이 참사로 이어졌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은 국내로는 체면을 중시한 원자력방호법 논란, 국제적으로는 부풀려진영변 핵사고 위험 발언으로 안팎의 망신으로 이어졌다.

2가지 사건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평소 박근혜 대통령이 핵안보를 비롯해 핵발전 등 핵에너지 전반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간 한미원자력협정개정을 미국 측에 줄기차게 요구하면서, 협정 개정이 상업용 핵발전소 수출의 필수 요건인 것처럼 표현해서 이번 건과 비슷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또한 한미 정상회담에 직전에도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주요 의제로 올릴려다 결국 제대로 말도 꺼내보지 못한 채 뒤돌아선 경험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단지 참모진의 실수라거나 헤프닝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상당히 큰 판단착오이다. 계속 반복되는 실수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는 법이다. 핵문제는 단지 국내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국제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와 참모진의 실수를 그대로 용인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번 망신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면, 핵에너지를 둘러싼 각종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할 것이다. 또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계획이나 우라늄 농축계획등 경제성과 안보문제 모두를 해칠 계획은 즉각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영변 원자로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반도 비핵화와 국내 핵발전소 노후 핵발전소 안전도 챙길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후속조치를 통해 국민들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또다시 국내에서 망신당하는 모습을 보지 않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발행일 : 2014.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