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원혼이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예.
국가가 죄없고 힘없는 국민한테 이라면 안됩니더....
인터뷰 진행 : 박혜령 통신원(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
돌아가신 이치우 어르신과 유한숙 어르신의 원혼이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밀양을 다시 찾았다. 30여 가구 남짓의 아담한 마을에 40년 넘는 교직생활을 마치고 귀촌하신 부부 고준길·구미현 씨를 만나 아담한 귀촌 생활을 뒤로하고, 송전탑 반대 싸움의 제 일선에 서게 된 이야기를 들으러 상동면 용회마을을 찾았다.
우리는 한전에 속았어예!
올해로 64세인 구미현 씨는 고준길 씨와 함께 2007년 상동면 용회마을에 정착했다. 어릴 적부터 잔병치레를 했고 오십이 넘으면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약해졌다. 남편은 이런 구미현 씨를 위해 주말마다 땅을 보러 다녔다. 1999년 어느 주말 우연히 남편을 따라 오게 된 곳이 이 곳 용회마을이다. 봄날 햇빛이 더 할 수 없이 따뜻했다고 회고한다. “마을 여기저기 핀 개불알꽃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더. 이곳의 풀 한포기 꽃 한 송이 예쁘지 않은 것이 없었어예. 밀양은 지명(地名)처럼 양지발라 햇빛이 따스하고 바람도 적은 산세가 아름다운 곳입니더. 누구나 한 번 오면 그저 좋다는 말을 저도 모르게 하게 되는 곳이지예……”.
남편이 정년퇴직 하자마자 2007년 당시 38kg의 허약한 상태로 이곳으로 왔다. 농사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 이곳은 치료의 공간이고 영혼의 휴식처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돌 하나도 직접 나르며 마당을 가꾸었다.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수십 년 고질이었던 병약한 몸도 거짓말처럼 건강을 찾았다.
“우리 동네는 마을 뒷산의 왼쪽과 오른쪽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송전선아래 마을이 놓여예. 머리위에 초고압 송전선을 이고 살아야 하는 꼴이지예. 2007년 당시 동네 분들이 말하기를 한전은 송전탑이 동네에서 거의 안보이게 뒷산으로 멀찍이 물리겠다며, 전혀 영향이 없다고 동네 사람 모두 한전에 속아서 처음엔 합의서에 서명도 했어예.”
2005년 주민설명회가 있고 나서, 용회마을 주민들은 한전이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믿고 합의서에 서명했다. “송전탑이 우리를 이리 괴롭힐 줄은 정말 몰랐습니더. 그런데 2011년 헬기가 동네 인근을 날기 시작했어예. 남편이 산을 올라가서 보니 동네랑 너무 가까운 기라예. 그래서 속았다는 걸 알았지예.”
30여 가구의 작은 부락인 용회마을엔 마을회관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없다며, 피해 사실을 알고도 모두 체념하고 모른 체 했다. 처음에 다른 동네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에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용회마을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마을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영상자료를 보며 송전탑의 진실을 자세히 알게 되었고, 한전에 이전의 합의는 무효라고 공식입장을 전달했다. 이후 용회마을은 송전탑반대대책위가 만들어져 한전과 공권력에 맞서 송전탑 반대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국민을, 권력에 대든다며 괴씸하게 보고 본을 보이려는 게 국가인기라예!
구미현 씨는 지난 10월에 재개된 공사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고 말한다.
“5월에는 500명의 공권력이 투입됐어요. 그런데 10월 1일에는 3,000명의 공권력이 투입되었어예. 까맣게 깔린 경찰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십니더. 밀양주민들이 권력에 대든다는 생각을 하고 본을 보일라고 하는갑다. 우리를 괴씸하게 생각하는 갑다. 그래서 경찰이 한전을 적극적으로 편드는 갑다……”
3000명이 넘는 공권력이 연로한 주민들을 거칠게 다루며 폭동 진압하듯이 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을 적대시하는 정부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국회 청문회에서 한전사장이 말했지예. 모 국회의원이 국민들이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정당하다’고 답을 하데예. 저는 한전과 밀양주민들 중 누가 정당한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예.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지 않으니 우리 스스로 지키는 거라예. 우리가 정당하다 그 말입니더.”
지난 5월 한전이 공사를 합의도 없이 재개하자, 용회마을 주민 한 분이 트랙터로 공사 진입로를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다쳤다면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45일 동안 구속했다.
“그 때 심정은 말로 다 못합니더. 차라리 내가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했을 겁니더. 한참 농사일이 밀린 사람을, 정당한 요구를 하는 국민을 한 달 보름을 구속한 거라예. 이런 억울할 데가 어데 있습니꺼. 주민들을 겁주는 거라예. 하루 아침에 논밭이랑 집이 휴지조각이 될 참변이라예. 근데 정당하게 항의하는 할매들을 번쩍 들어서 쫓아내고 꼼짝 못하게 잡아놓습니더.”
밀양에 합의가 있다면, 총칼을 들이대고 한 합의나 다름 없어예!
지난 12월 30일(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의 재산보상 범위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송·변전설비주변지역의보상및지원에관한법률(약칭, 송주법, 일명 ‘밀양송전탑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한전은 밀양 송전선로 경과지 세대별 주민 10명 중 8명이 개별지원금 신청을 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면(裏面)에는 주민간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전이 찬·반 양측의 갈등을 부추기는 합의도출의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합의나 개별지원금을 받아들이는 주민들의 의견이, 진정 송전탑 건설에 찬성한 합의일까.
한전은 주민들이 어떤 문제로 힘든 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5월과 10월 공사를 강행했다. 농사일이 가장 바쁜 봄철과 수확철이다. 마을 사람들은 한전이 때에 맞춰 일하는 것이 중요한 농사에 피해 받지 않으려는 시골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
공사가 다시 시작된 어느 날, 부당함에 항의하던 남편 고준길 씨를 경찰은 무작위로 연행했다. ‘선생님이 항의를 주도한 사람이냐’며 주민들을 윽박질렀다. 미란다 고지(경찰·검찰이 용의자를 연행할 때 그 이유 등을 미리 알려 주어야 한다는 원칙, 편집자 주)도 없이 연행해 하루 종일 조사를 받고 나왔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국민이 얼마나 약하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함부로 대드는 짓을 하지 못하게 단념시킨다. 그 이유가 아무리 정당하고 정의롭고 타당하다 해도.
“우리 나라는 민주국가라고 알고 있었어예. 밀양 송전탑 공사는 사업 시작부터 비민주적이었습니더. 주민이 그래 반대하는데 공사를 하는겁니더. 그리고 일본 후쿠시마사고로 핵발전소 더 짓지 말자고 하는데 더 지으려고 이 공사 하는겁니더. 국가가 힘없는 사람은 안중에 없는기라예. 기업이의 이익이 최우선이고 소수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라예. 지금까지 합의금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얘기했다면 지금까지 못왔을 겁니더. 주민들이 반대하면 시작 전에 합의를 보고, 안되면 포기하는게 맞습니더. 근데 일방적으로 공사하고 중간에 합의 본다는 거는 말이 안되예.”
<상동면 용회마을 주민, 구미현 씨>
얼마나 더 죽어야 공사가 중단될까예…, 이래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합니더.
이보다 더 끔찍하고 처참한 일이 있을까. 날마다 꺾인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하며 가파른 산을 오른다. 70대 노파가 손자뻘 20대 경찰을 상대로 몸싸움을 벌인다. 공권력은 노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폭언과 무력을 행사한다. 한전은 집집이 찾아다니며, 보상이라도 받으라고 종용한다. 이 억울함을 풀지 못해 분신을 하고 농약을 먹는다. 공권력이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울분을 토해내는 곳이 밀양이다.
2012년 1월 공사를 강행한다며 용역을 앞세워 들어온 한전에 항의하다가 분신하신 이치우 어르신이 가신 자리에 맺힌 억울한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2월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음독자살을 시도했던 주민 유한숙 씨가 또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죽었어예. 그런데 정부나 한전은 아무렇지 않은 가봐예. 사람 목숨이 이래 하찮은지 몰랐습니더. 밀양루 옆에는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가 있고 매일 전국에서 방문하는 조문객이 끊이지 않고 있어예. 어르신의 원혼이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예. 공사를 중단해주세요. 국가가 죄없고 힘없는 국민한테 이라면 안됩니더.”
구미현 씨는 병약한 몸에도 매일 공권력과 한전에 맞서 싸우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한전이 승리의 전리품인양 송전탑을 세우고 있지만, 밀양 주민들은 세워진 송전탑을 보면서 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해야 하는지, 더 뚜렷하게 확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송전탑이 건설된다면 절대 전기를 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녁에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들렀다. 밀양을 자주 들르는 분들과 송년회를 열었다. 가족 장례식처럼 구석구석 밀양 주민들의 손길과 정성으로 지키고 있는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가, 송전탑 공사 중단으로 아름답게 정리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잇따른 참담한 주검에도, 정부와 한전의 22개 공사현장 확대를 여전히 전쟁 같은 몸싸움으로 저항하고 있는 밀양주민들의 투쟁에, 시민들의 관심과 배려가 끊이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발행일 : 20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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