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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살고 싶을 뿐입니다”

김정회 씨(밀양 765kV 송전탑반대, 단장면 동화전마을 대책위원원장)인터뷰

 


 밀양 단장면 동화전마을의 765kV 송전탑반대 마을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정회 씨를 1029() 밀양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102일부터 서울에서 보름간 송전탑반대를 위한 단식을 강행하기도 했던 이다. 수척해진 몸을 추스르며 추수를 서두르고 있는 그를 만나 단식을 결심했던 이야기와 그 이후 현재 마을의 상황을 들어보았다.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농부로 살고 싶습니다.

늘어선 농사일을 미루고, 부인 박은숙 씨와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그는 무슨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을까.

송전탑으로 우리는 삶의 터전을 잃습니다. 일생을 바친 노력의 결과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데 참을 수가 없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땅을 팔 수도 없습니다. 누가 거대한 송전탑 옆에서 살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한전과 정부는 국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라고 합니다. 이건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한전의 처사는 어이없고 황당하고 억울한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단식을 결심하자 부인은 처음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도 엄청난 고통을 받아왔는데, 추가적으로 가족과 남편이 받을 피해가 두려웠고, 닥친 농사일을 감당해야 할 가장이 단식으로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꼭 해야 한다면 오히려 자신이 대표로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마을의 대책위원장인 김정회 씨는 이런 부인의 걱정을 다독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며 부인을 설득했고, 부인은 단식이라는 고난을 결국 함께 짊어졌다.

김정회 씨는 지난 8월 경찰·검찰이 송전탑 공사를 방해한다며, 업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적이 있다. 지금도 부인은 힘들 때면 송전탑 반대활동을 그만두자고 푸념을 내놓는다고 한다. 아이 넷을 키우며 단란하게 살던 이들의 일상이 송전탑공사로 길 위로 내몰리고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본인과 가족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억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41세의 젊은 농사꾼 김정회 씨는 10년 전 밀양으로 귀농했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군이 되기 위해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아름다운 밀양을 선택했다. 땅을 임대해 친환경배추를 생산하고, 판로가 없어 직접 도시의 아파트로 팔러 다니기도 했다. 현재 16개 품목의 농산물을 생산해 친환경 매장 등에 판매하며 일 년, 열두 달이 모자라게 바쁜 농부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평범한 농사꾼이 765kV 송전탑반대 마을대책위원장이 되어 단식이라는 생소하고 극단적인 방법까지 선택한 것은, 송전탑 공사가 자신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평생을 일군 삶터가 송전탑으로 인해 파괴될 것에 온 몸으로 항의하는 밀양의 어르신들의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당장 집 앞 산능선에 3기의 철탑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그의 농장에서도 온 들에 꽂힌 철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철탑을 반대하는 것은 그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너무도 당연한 요구인 것이다.

 

 

정부는 공권력을 철수하고, 한전은 마을을 갈라놓는 짓을 멈춰라!

지난 1027일 동화전마을이 한전과 합의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후라 마을의 안부를 물었다.

단식 후 내려오니 집 앞 95번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 24시간 밤이고 낮이고 공사를 해댑니다. 가슴이 무너지지요. 경찰은 지난 5월 공사강행을 항의하는 것을 채증해 주민들을 위협하고, 격렬하게 반대했던 이웃을 구속할 수도 있다며 주민들의 반대활동을 단념시키고 있습니다. 싸우러 나간 마을사람은 10명인데 마주한 경찰은 수백명이니, 경찰과 싸우는 게 너무 힘듭니다.”

동화전마을은 100여 가구가 사는 시골에서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마을에 찬성과 반대 입장이 나뉘어 오랜 갈등의 골이 있기도 했지만, 반대대책위를 만들어 마을의 뜻을 어렵게 모아간 곳이다.

밀양으로 수차례 탈핵희망버스가 다녀가면서, 동화전마을에도 전국의 지원단과 마을주민이 함께 반대의 뜻을 다지기도 했다. 지금도 동화전마을회관 입구에 들어서면 밀양 할매, 할배 힘내이소! 765kV 반대’, ‘공사 대신 삶을! 765kV NO!’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마을사람들은 한전의 제안이 합당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정부가 하는 것을 국민이 무슨 수로 막겠냐며, 계속 반대하다가 그나마 푼돈도 못 받을지 모른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합의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이장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합의서에 서명을 받아서 주민들 민심이 좋지 않아요. 한전과의 합의서인지 모르거나 다른 건 줄 알고 서명한 사람도 있지요. 동네 전체 회의를 하지도 않고 몰래 집집마다 돌며 서명을 받았는데, 이게 정부와 한전이 할 짓입니까. 다시 마을 사람들을 추스려서 싸울 준비를 해야겠지요.”

정부가 밀어붙이는 공사로 갈등을 겪는 지역은 공동체가 파괴되는 진통을 앓는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고스란히 남아, 마을주민들의 화합과 공공의 가치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찬성하는 주민들을 만들고, 찬반으로 나눠 주민들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한전과 정부의 처사는 이들에게 송전탑보다 더 깊은 상처를 입히고 있다.

송전탑보다 더 무서운 게 핵발전소!

나라가 하는 일이 이렇게 막무가내인지 몰랐습니다. 원칙을 지키고 순리를 따라야 합니다. 일본 핵발전소사고로 선진국들은 탈핵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명이 다한 위험한 핵발전소를 수명연장하고 있고, 거기다 계속 전기가 모자란다고 하면서 핵발전소를 더 지을 계획입니다. 위험한 핵발전소를 왜 자꾸 지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 좋으면 전기 싸게 많이 쓰는 대기업 앞마당에 세우던가. 왜 영덕, 삼척 아름다운 바다에 그 위험한 걸 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핵발전소가 없어져야 송전탑도 더 이상 짓지 않을 거라며,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변화가 더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서울 가니 보름동안 하루 빼고 14일을 축제가 열리더라구요. 그 많은 장비들 전기 쓰고, 도시 사람들 문화, 산업을 위해서 전기를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밀양의 문제가 왜 밀양 할매, 할배들만 고통받고 희생해야 하는 문제입니까. 기업에서 산업용으로, 고층빌딩에서 매일 쓰는 전기가 어떻게 오는 겁니까. 촌 할매들 재산, 생명 빼앗으면서 오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101일 공사재개 이후 5개의 공사현장이 11개로 늘어났다. 현장으로 레미콘 차가 매일 수십대씩 들어서며 주민들과의 대치도 더 극렬해지고 있다. 앞으로 한전의 공사에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동화전마을만 해도 100여 가구가 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 모두 하나로 뭉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장이 틀린 게 없기 때문입니다. 밀양에서도 송전탑에 대해 잘 모르거나 오해하시던 분들도 송전탑 반대로 여론이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송전탑이 세워지면 더 이상 여기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전처럼 살고 싶을 뿐입니다. 힘들더라도 계속 싸울 수밖에 없고, 밀양의 진실을 주변의 한명에게라도 더 알려야 합니다.”

지난 8월 경찰에 잡혀갔을 때 주민들이 몰려가 항의했던 피켓에는 착하디 착한 우리 정회를 돌려 달라였다고 한다. 단식 전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힘없는 할매, 할배들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손톱이 닳도록 흙을 파서 만든 삶을, 전 재산과 건강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가.’ 라는 간곡한 글에서처럼, 아무 잘못 없는 착하디 착한 김정회 씨와 밀양의 주민들이 다시 일상의 삶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김정회 씨가 말하는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이다.

자신들만의 이기심을 위해 송전탑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고 존중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최소한의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땅과 함께 정직한 땀을 흘릴 줄 아는 그의 마음이 전해져 밀양에 평화가 되돌려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발행일 : 2013.11.1   박혜령 통신원(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