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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밀양주민인터뷰>우리는 죽더라도 여를 지킬 겁니더

전쟁이라예, 그래도 우리는 죽더라도 여를 지킬 겁니더

-곽정섭씨(68, 밀양송전탑 반대 지역 주민, 부북면 위양리 산꼭대기 움막) 인터뷰-

 

취재 : 박혜령 통신원(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꼬박 5개월 넘게, 송전탑 건설을 막으며 산꼭대기 움막을 지키고 계신 곽정섭 어머니(68)를 만났다.

밀양시에서 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부북면 위양리에서 평밭마을을 오르는 산길을 4km 가까이 오르면 산꼭대기에 움막이 있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을 위해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움막을 여러 채 지어 놓았다. 그 중 맨 위의 움막을 오르면 765kV송전탑 반대 깃발과 함께 움막 둘레에 깊이 2m가량의 구덩이와 철조망을 마주하게 된다.

마치 전쟁터의 진지와 같다. 그렇다. 이들은 국가와 한전을 상대로 10년 넘게 치른 전쟁이, 막바지를 향하는 시점에, 이 움막에서 한 가닥 희망을 그리고 있었다.

“6.25는 나라 지키느라 전쟁했잖아. 그런데 인자 나라가 국민이랑 전쟁한다. 이기 말이 되는 거가.”

 

 

 

개 같은 우리 인생도 소중하다

곽정섭 어머니는 원래 태어난 곳이 밀양 산내면이다. 부산에서 평생을 살다가 친언니가 살고 있는 밀양으로 내려온 지 벌써 16년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맡기러 고향을 찾은 그녀에게 지금 닥친 일은 죽음을 각오한 뜻밖의 전쟁이었다.

정확하게 언제인지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당시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전직원들과 용역들의 참담한 폭언과 행동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공사강행을 위해 들이닥친 용역들을 보며, 죽음을 선택하신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이 돌아가기 전의 일이다.

우리는 합의 없이 공사를 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철탑이 들어서면 이곳은 사람이 못산다. 우리가 가진 게 뭐 있노. 단 하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아이가. 2011년 가을쯤 공사를 막으러 산으로 안 올라갔더나. 그런데 그네들이 우리를 개 취급 하는기라. 강아지를 쫑쫑하며 부르듯 하고, 걷는 것도 힘든 우리를 철탑현장을 옮겨가며 약을 올리고 욕을 해댔능기라. 우리는 사람이 아이더라

 

우리도 전기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전기는 필요없는기라!

우리 태어날 때는 전기도 없었다. 근데 그 전기 때문에 무슨 꼴을 당하고 있나.”

2011년 한전은 주민들을 찬성과 반대로 갈라놓았다. 반대가 더 많았지만, 찬반을 떠나 평생을 함께 살아온 주민들간의 갈등과 반목은 참기 힘든 고통이다. 이웃한 평밭마을 주민들과 함께 산위에서 경찰들과 싸웠다.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짐짝처럼 들어냈다. 끌려나오며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쳐 평밭마을 한옥순 어머니와 3일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사흘째 되던 저녁, 이대로 병원에 눌러있을 수 없어 환자복을 입은 채 서둘러 동네 마을회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네 방송으로 이대로 물러서면 안되다고 이웃들에게 호소했다. 3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회관으로 모이면서 이들의 너무나 정당하고 힘겨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노. 70이 넘은 노인들이고, 그저 고향땅 내 터전 지키고 싶은기 다인기라.” 지난 5월달에 공사를 위해 투입된 젊은 경찰과 한전 직원들을 막기 위해 이들은 옷을 벗고 오물을 뿌려댔다. 가진 것이라곤 아무리 보아도 몸뚱이 뿐이었다.

할매들이 끌려나가서 입 벌리고 누워있는기라. 다 죽는줄 알았다. 눈에 보이는기 없더라. 나도 모르게 옷을 벗었다 아이가. 닥치는 대로 잡았는데 흙밖에 없더라. 그래서 흙을 뿌려댔다. 우리가 할 수 있는기 없어서 다같이 소리지르면서 계속 울었다. 눈물이 끝없이 나더라.” 경찰들은 끌어낸 주민들이 쓰러져 있자, 쓰레기 담는 포대로 덮어 두었다. 자신들이 쓰레기 같았다고,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고 전하며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대하는 국가와 공권력의 폭력을 증언했다.

 

죄 없는 국민한테, 와 거짓말하고 협박하노!

움막 앞에는 공사를 강행하면 모두 들어가 죽겠다며 파둔 구덩이가 있다.

참 요상하데이. 똑똑한 사람들이 없는 말 지어서 한다 아이가. 신문도 한전도 경찰도 우리한테 거짓말만 하고, 우리 보고 죄인이란다. 맨날 벌금내라, 재판 받을끼다 하더라. 처음에는 겁이 났어. 근데 우리가 잘못하는기 아이다 아이가. 공사 강행하면 우리는 진짜 여서 죽을기다. 팔십되신 손희경 할매네는 500년을 넘게 한 대도 거르지 않고 위양리를 지키고 있다. 시아버지가 선조들 묘랑 땅들을 잘 지키라고 유언하셨단다. 부모 유언도 못지키고, 대대로 물려주신 땅 망할 판인데 우리가 살아서 조상 얼굴 뵙겄나.”

어렵게 지켜온 고향을 더 이상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으로 팔순의 노파와 움막을 지키며, 서로가 이곳을 지키는 이유이고, 힘이고,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한다.

발전과 개발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쉽게 바꾸고, 부수고, 새로 만드는 현대 사회. 그리고 국가의 이름으로 강행하는 공사를 위해 거짓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 공권력과 한전. 이들에게 닥친 가혹한 현실이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배려와 존중이 사라진 개발지상주의와 이를 묵인하는 현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함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여서 거의 매일 지낸 지 다섯달이다, 이기 감옥이다!

송전탑 바로 아래에 우리 집이 있다 아이가. 철탑 들어서면 우리는 그 집서 못산다. 집 바로 뒤에 송전탑을 이고 살아야 된다. 누가 여서 살라 하겠노. 넘의 땅에 동의도 없이 철탑 세운다꼬 나무 다 벴다. 그라고 한전이 750만원 준다 카더라. 수만평 땅이 있어도 1000만원 준다 카던라. 그 돈으로 방 한 칸 살 수 있나. 젊은 분들 들어보소. 우리가 너무 한교. ?”

지금도 매일 공사를 위한 헬기가 날아다닌다. 헬기 소리가 끔찍해 이불을 덮고 귀를 틀어막는다. 사람이 적다는 걸 알고 공사가 들이닥칠까봐 움막 밖을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겨울에는 햇빛도 거의 들지 않는 답답한 움막에서 길고 긴 겨울을 나고 있다.

지금의 고생보다 앞으로 닥칠 시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쏟아낸다. 이 산을 내려갈 수 없다. 움막을 지키며 언제부터인가 스스로를 움막 안에 가두었다. 공권력과 싸우며 입은 정신적인 상처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면서도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심정을 도대체 누가 헤아리며 보듬어 안을 것인가.

너무 힘들다. 너무 힘들다.그래도 버티야 된다. 내 없으면 더 나이 많은 할매들은 우야노. 저 구덩이만 보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래도 구덩이가 있어야 쪼매 안심이 된다 아이가. 자식들이 자꾸 내려오라 안하나. 그런데 이기 내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아니믄 니 대까지 이 고통이 간다. 그라니 내가 한다 그래 말하제.”

자식들은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쳐 다치는 상황을 걱정하지만, 이들은 수많은 경찰들이 오면 그라면 밟혀 죽으면 된다고 말한다. 자식과 다음 세대를 위해 밀양 땅이 온전하게 지켜지기를 바라며 온 몸으로 엄마의 마음으로 이 땅을 지킨다.

 

송전탑공사, 다시 생각해야 한다

현재 한전은 마을 주민들을 갖가지 회유책으로 찬성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민들은 송전탑의 유해성과 초대형 송전탑의 불필요함을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한전의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최근 전남 여수에서도 70년대 지어진 25기의 송전탑으로 8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 30여명이 암과 백혈병으로 죽거나 투병중임이 세상에 밝혀져 밀양 주민들의 우려와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한전은 밀양내 총 69개 송전탑 중 36개를 건설했거나 건설중이다. 한전은 지난 20133500명 이상의 공권력과 수천명의 공사인력을 투입해, 허가도 나지 않은 헬기까지 동원하며 공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밀양 주민들과 합의하지 않아도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합법적인 절차다수를 위한 공익을 내세운 공사이다.

국가와 기업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밀양의 송전탑 공사는 국가 폭력이고 대국민 전쟁이다. 죽음을 각오한 밀양의 전쟁을 누가 멈출 것인가. 과연 누가 이웃의 희생을 밟고 만드는 풍요와 부가 아닌, 정의로운 누림과 나눔의 울타리로 밀양에 평화를 내릴 것인가.

 

발행일 : 201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