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살아야 안되나..
밀양송전탑, 마지막 남은 4개 현장을 찾아
박혜령 통신원
밀양 송전탑 문제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신고리핵발전소에서 이어지는 161개의 송전탑 중 총 69개의 송전탑이 밀양에 건설될 것이다. 주민들의 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국전력은 공사를 강행했고, 현재 4개의 현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주민들은 마지막까지 반대와 저항을 이어갈 것이며,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남은 현장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로 가는 129번과 127번 송전탑 현장을 찾았다.
127~129번 송전탑 현장 입구 농성장에서 위양리와 평밭마을 주민들. 농성장을 철거하고 공사를 진행하려는 경찰과 한국전력 직원, 공무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진입로 입구에 농성장을 두고 위양리 주민들이 지키고 있다. 당일에도 시청 직원 십여명이 농성장 철거를 위해 현장으로 들어오려 하자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며 막았다.
하기로 했으니, 해야 한다?
주민들은 마지막까지 공사의 부당함을 알리며 싸우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129번 현장의 목소리는 간명하다.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을 믿어. 죽음을 각오하면 두려울 것이 없어. 우리는 우리와 미래 후손들을 위해 옳은 판단과 행동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129번 현장은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현장 중 하나이다.
매일 24시간, 현장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십명의 경찰과 시청 공무원들이 농성장을 철거하려고하기 때문이다. 십수명의 공무원과 경찰을 상대로 70~80대의 노모들이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크고 작은 부상과 정신적인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헌국전력과 정부가 공사를 강행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지난 2013년 5월 본격적인 공사강행이 시도되었고, 주민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전문가 협의체가 만들어졌다. 2005년 이후 9년간 지속된 갈등을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중재에 따라 전문가협의체를 통해, 공정한 조사와 논의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기로 한 시도였다. 그러나, 전문가협의체는 파행적인 운영과 편향된 결과 도출로 이어지며 갈등의 해결에 실패했다.
초반부터 한전의 부실한 자료제출 등의 논란과 위원장의 편파적 진행, 보고서 베끼기와 대필 의혹, 회의를 통하지 않고 전자우편으로 협의 강행 등의 오점을 남기며 종료된 것이다. 40여일 진행된 전문가협의체는 본래의 목적인 타당성 제고와 다양한 대안 모색은 사라지고, 이미 답을 정해놓고 시작한, 힘의 논리에 의한 요식행위라는 비난을 받았다.
한국전력은 765kV송전선로의 필요성도, 절차의 타당성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였고, 안정적인 송전선의 확보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한국전력은 이 과정에서 신고리 3·4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기존 송전선로로 송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지만, 끝까지 765kV 송전선로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것은 신고리 3~7호기의 추가 건설을 위한 송전망을 미리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여기에 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에너지에 대한 전국민적인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중앙집중식 에너지 생산과 수급에 변화가 필요하고, 핵발전에 의존한 전력생산에 전환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송전탑 건설에 대한 저항과 반대가 있어왔지만,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은 이런 에너지 전반의 정책전환과 핵발전 폐기의 전지구적 흐름과 함께, 거대 송전망의 문제를 한국사회 전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대 사건이다. 문제는 정부와 한국전력의 입장이, ‘한 번 결정한 사업과 정책은 재고없다’는 밀어붙이기식 사고를 고집하는 데 있다.
사업의 타당성과 합리성이 불분명한 정부의 에너지정책과 한국전력의 송전망 확보계획을, 지금과 같이 밀어붙이는 것은 도덕적이고 자율적인 질서를 버리고, 절대적인 권력에 복종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파시즘이다. 더구나 일부지역의 희생을 강요하고, 개인의 의견이 무시되며, 지도자와 권력자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국가 통치력의 절대화는 제2, 제3의 밀양을 양산하며, 지역공동체의 파괴와 민주사회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린다.
국가와 국민의 전쟁
129번의 한옥순 씨는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경찰들과 이 나라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싸울 것이라고 한다. 이미 이 싸움은 한국전력을 넘어 공권력과 정부를 향한 싸움이 되었다.
전문가 협의체의 결론 없는 마무리 이후, 지난 해 10월 공사가 재개됐고 3500여명의 공권력이 투입됐다. 처음에는 한국전력의 공사에 맞서 한국전력 직원과의 갈등이었지만, 정부가 한국전력의 입장에 서서 막대한 공권력을 투입하는 순간, 밀양은 국가를 상대로 한 민초들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수십년을 평밭마을에서 살아왔다. 산이 좋고 땅이 좋고 이 곳 밀양이 좋다는 순박한 분들이지만, 경찰을 상대로 거친 싸움을 해오고 있다.
특히 평밭마을의 한옥순 씨는 최근 농성장을 철거하고 공사를 강행하려고 산을 오르는 경찰들과 공무원에게 온 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장정 2~3명을 한꺼번에 상대하며 괴력을 발휘한다. 모두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냐고 물으면, 한옥순 씨는 내가 거짓이 없고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 순간 나 아닌 큰 힘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같이 싸우는 이웃들 모두가 그럴거다. 지금도 엊그제 산으로 올라온 수십명의 경찰들이랑 싸워 갈비뼈가 아프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데 매일 경찰이랑 싸우는 사람이 되었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옳지 않은 일을 하기 때문이야.”
129번 농성장에 붙어있는 현수막. 주민들의 뜻이 그대로 담겨 현장을 지키고 있다.
사람답게, 정의롭게 살고 싶다
“올해는 작은 농사도 접었어. 야생화가 좋아서 집에 기르던 화초도 많아. 근데 매일 농성장에서 지내니 50개가 넘는 화초 다 정리했어. 일상생활이 안되지. 근데 그보다 사람답게 살아야 안되겠나. 나는 우리가 이긴다고 확신해. 우리가 옳기 때문이야.” 한옥순씨는 지금의 상황을 담담하게 말한다.
“국가가 정의롭다면 이보다 더한 희생을 하라고 해도 우리가 반대할 명분이 없어. 그런데 이것은 정의롭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반대하는 거다.” 시청 공무원들에게 항의하러 가는 걸음에 평밭마을의 이남우 씨의 말이다.
이들의 바람은 너무도 소박하다. 꽃과 공기와 물과 함께 어우러져 살다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대신해 개발과 이익에 눈 먼 자본과 권력의 탐욕에 세상이 지배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제 밀양은 송전탑 몇 개 건설되는지 중요하지 않다. 목숨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할 것이며, 지금의 에너지정책의 불합리함을 알려갈 것이다. 막바지로 향하는 밀양 송전탑 싸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다. 절망과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말하며, 앞으로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발행일 : 201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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