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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비정상적인 전기화…가격체계 조정 등 적극적인 규제 필요

비정상적인 전기화가격체계 조정 등 적극적인 규제 필요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전기업계의 꿈, 완전 전기화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 일본의 가장 큰 전력회사인 도쿄전력은 도쿄전력 관내 20여개의 홍보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회사 홍보관에 들어가면 핵발전소, 화력발전소의 원리와 특징, 기술적인 설명 자료들로 가득하지만, 도쿄전력 홍보관은 그렇지 않다. 20여개의 홍보관 중 대부분은 올전화(オール電化, 영어의 ALL과 전기화의 합성어) 쇼룸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말그대로 모든 것을 전기로 사용하는 쇼룸(ShowRoom)이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시부야의 전력관은 8개 층 가운데 4개 층이 올전화를 홍보하는 층이다.

열쇠 따위의 고리타분한 물건으로 현관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화상인식 현관문으로 시작한 쇼룸은 한 개 층이 아예 전기족욕기와 욕조로 가득 찬 온천처럼 꾸며져 있는가하면, 다른 층은 외부 조도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창문 브라인더와 온도조절장치, 항상 따뜻한 변기와 비데, 방범시스템,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 전기차와 태양광 발전기 등 자가발전설비, 인터넷으로 연결된 냉장고와 시계가 즐비하다. 그리고 한개 층은 인덕션 렌지를 비롯한 각종 전기요리 기구를 사용한 대형 주방이 만들어져 전기로 만든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것을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각종 요리 강습이 진행된다.

도쿄전력 홍보관은 오랫동안 가스업계와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려는 전기업계의 꿈완전전기화가 실현된 꿈의 공간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도쿄전력은 현재 니이카타현 카시와자키가리와 핵발전소 인근의 홍보관 1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홍보관을 무기한 휴관 혹은 폐쇄시켰다. 도쿄전력은 밖으로는 절전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전기판매를 원했고, 올전화는 이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었던 것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 국민들이 모두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에너지 중 25.3% 전환손실, 이중 95%가 발전부문에서 발생

자연 상태, 즉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에너지를 1차 에너지라고 한다. 1차 에너지는 에너지 소비단계에서 2, 3차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유전에서 생성된 원유는 정유과정을 통해 중유(2차 에너지)로 바뀌고, 중유는 발전기를 통해 전기(3차 에너지)를 생산하는 등 다른 에너지로 변환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를 전환손실이라고 한다.

현재 국내 1차 에너지 전환손실은 25.3%, 전체 에너지의 1/4이 전환과정에서 버려진다. 이 용량을 환산해보면 7,028TOE(석유환산톤), 대략 1000MW급 핵발전소 103.7기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전력에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전환손실을 현재의 기술로는 완전히 없앨 수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전환손실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전환손실 중 95%가 발전부문, 즉 전력을 생산하면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른 에너지 전환보다 전기생산 과정에서의 손실이 더욱 크기 때문인데, 현재 국내 화력발전소 효율은 40% 정도로 전력생산과정에서 60% 정도의 에너지가 버려지고 있다. 여기에 3~4% 대에 이르는 송배전 손실을 합할 경우, 전기로 인한 전환손실은 더욱 커진다.

 

비정상적인 전기화 경향

 

 

전기로 인한 에너지 전환손실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비슷하게 추세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상대적으로 최신 설비를 갖고 있는 발전, 송변전설비로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오히려 전기로 인한 전환손실이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존에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를 사용하던 에너지원들이 전기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전기화 경향은 OECD 국가 중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속도이며, 대표적인 선진국인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전력을 제외한 에너지소비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전기소비증가율도 2% 미만을 기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전력을 제외한 에너지소비증가율은 1.6%에 불과한데, 전기소비증가율은 7.0%에 달하는 비정상적인 전기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에너지 소비는 크게 늘지 않는데, 전기소비만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체계 조정과 적극적인 규제 없이, 전기화 경향 막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많은 이들은 이 이유로 물가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적자를 보면서까지 올리지 못한 전기요금, 이에 따라 산업계를 비롯 우리 사회 전체가 전기로 난방을 비롯한 열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서 찾고 있다. 생활 주위에선 석유난로가 전기난로로 바뀌었고, 석탄이나 중유를 사용하던 용광로와 건조기는 전기용광로와 전기건조기로 바뀌었다. 상가에선 문을 열고 에어컨을 켜는 일이 자연스럽고, 심지어 가스 냉방기를 철거하고 전기 냉방기로 바꾸는 일들까지 생기고 있다.

또 다른 한편 전기화경향을 막지 못하는 우리나라 산업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정규모 이상의 건축과 개발 과정에선 에너지사용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는 자발적인 계획제출일 뿐 실질적인 에너지 규제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에너지 소비를 정부가 직접 규제하지 못한 채, 에너지수요에 맞춰 정부가 공급계획만 세우는 공급위주의 에너지정책이 낳은 폐해라는 지적이다. 국가에너지정책을 고려할 때, 저효율에너지다소비 업종에 대한 규제와 유도가 필요한데 지금까지 이것을 진행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국적 전기화 경향은 전국을 발전소와 송전탑 분쟁지로 만들어버렸다. 필요하다고 해서 자꾸 발전소와 송전탑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지금, 이제 전기화 경향은 전기업계에게는 좋은 꿈일지 몰라도 국민 모두에게는 악몽이 되고 있다.

 발행일: 201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