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성과와 한계 그리고 함정
-과제를 던졌으나,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 논의보다 한발 나아간, 민·관합동워킹그룹 구성과 운영
얼마 전 한 토론회 자리에서 어느 환경단체 출신 어느 전문가가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합동워킹그룹의 의미를 “이제 에너지문제가 복잡해져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작성해서 추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그룹이라는 분석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매우 공감가는 분석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해당사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소수의 전문가들과 관료 집단만 갖고는 국가운영이 힘들어지는 상황. 그 상황에 맞는 해법 중 하나가 거버넌스(협치) 아니던가?
사실 이러한 전초는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미흡하나마 있었다. 당시 에너지수요전망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둘러싸고 정부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환경단체, 노동조합 등을 초청하여 의견을 듣는 자리를 몇 차례 가진 바 있다. 매우 단편적인 행사였고, 이후 내용을 갖고 서로 토론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민·관합동워킹그룹은 달랐다. 지난 5월부터 약 5개월 동안 시기도 길었고, 단편적인 이벤트 성격이 아니라 서로 자료를 논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런 면에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분명 2008년 1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비해 논의구조가 한발 나아간 형태였다.
하지만 한계 또한 분명했다. 국가에너지정책 전체를 다루기에 5개월은 너무나 짧았고, 민·관합동워킹그룹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국민과 심지어 국회에서조차 내용을 알 수 없었고, 이를 보완할 만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임시 가건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한계는 민·관합동워킹그룹 권고안 발표 1개월을 앞두고 여당과 정부의 압력으로 산업부의 입장이 상당부문 관철되는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문제의 핵심은 핵발전 비중이 아니라 총량과 신규건설문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합동워킹그룹의 한계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가장 큰 성과로 일컬어지는 ▲핵발전비중 감소 ▲분산형 전원 ▲에너지수요관리 방안 마련 등이 모두 성과와 한계, 그리고 함정을 갖고 있었다.
핵산업계나 전력업계 인사들도 부정적으로 보았던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의 핵발전 비중 41%는 자연스럽게 낮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새누리당 에너지특위 조차 당·정 협의를 통해 향후 핵발전 비중을 33%로 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함정은 여기에 있다. 이유야 어찌했든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의 41%보다 낮아지는 것이기에 비율을 강조했던 것이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이 발표되는 날 어느 기자가 칼럼음 통해 밝힌 것처럼 ‘에너지기본계획 마술쇼’에 국민모두가 빠져서 ‘정말 박근혜 정부가 탈핵을 하는 거야?’라고 반문하게 만든 것이다.
프랑스처럼 전력소비가 거의 증가하지 않는 나라에서 핵발전 비중이 70%에서 50%로 낮아지는 것은 분명히 탈핵의 전조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20여년동안 전력수요가 80%나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에서 핵발전 비중 감소는 말그대로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다 분명한 탈핵시나리오 요구는 총량과 신규건설 문제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 이는 이미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녹색당 등 많은 정당들이 2030년에서 2060년까지 완전히 탈핵을 이루기 위한 시나리오를 발표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얼마의 총량을 언제까지 어떻게 줄일 것인가라는 점은 앞으로도 탈핵진영이 주요하게 내걸 목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산형 전원과 수요관리 정책의 이면
한편 분산형 전원과 에너지수요관리 방안에 대해서도 이들 목표가 갖고 있는 원칙적 긍정성과는 별도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담고 있는 이들 목표의 정의를 놓고 보면 많은 쟁점이 숨어 있다.
그간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던 분산형 전원은 대규모 수요처 인근에 발전소를 건설하여 송·배전망 건설을 줄이고, 지역별로 에너지자립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까지 동의하지 못할 이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에는 그 예로 포항제철에 소비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포스코 에너지를 예로 들고 있다. 전력산업구조개편 논의를 조금이라도 심도깊게 들여다 본 사람이라면, 대규모로 전력을 소비하는 대기업이 자신의 자회사를 만들어 전력시장과 가스시장 더 크게는 이미 민영화되어 있는 석유시장을 엮어 종합에너지그룹으로 탈바꿈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리고 그 첫번째 명목은 ‘자가발전’이었다. 최근 이들 기업이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경쟁에 뛰어들고 있고, 일부 발전공기업은 이들 발전소에 지분까지 투자하면서 민간발전사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이 분산형 전원이 애초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이라는 점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수요관리방안 역시 효율향상과 자발적 감축 등 1990년대 시민단체가 말하던 수요관리 방안과 상당히 동떨어진 논의들도 있다. 작년과 올해 전력대란이 발생하면서 한쪽에선 ‘대기업 특혜’ 논란이 있었다. 전기 다소비 업체들의 수요관리를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의 ‘절전보조금’을 받아간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전력당국의 수요관리는 비용을 들이면 언제라도 줄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런 보조금형식이 아니라, 주식거래처럼 전력수요감축을 전력거래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수요거래시장을 만들기 위한 계획도 추진 중에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처럼 일시적인 보조금형식이 아니라, 전력피크시 전력소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새로운 돈벌이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수요관리시장에 참여하는 곳들은 전력소비가 많은 대기업이거나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요시장을 창출하려는 업체들이다.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위하여
이제 중요한 건 민·관합동워킹그룹 권고안이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어떤 안을 만들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미처 민·관합동워킹그룹 권고안에서 다루지 못했던 많은 쟁점과 새로운 프레임이 담겨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방안은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남은 2달.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국민들과 함께 나눠야 하는 이유도 역시 거기에 있다.
발행일 : 20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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