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어떻게 볼 것인가?
하승수(변호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발표…핵발전소 비중 축소?
지난 10월 13일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이 민·관워킹그룹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정부는 발표와 동시에 언론플레이를 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정부의 얘기를 받아 ‘핵발전 비중 축소’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정부는 많은 것을 감추었고, 자신들이 얘기한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우선 ‘핵발전 비중 축소’라는 말 자체에 함정이 있다. 축소냐 확대냐를 얘기할 때에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기준점이 이상하게 잡혔다. 지금 우리나라 발전설비용량에서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4~26%정도 된다. 이것을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22~29%는 핵발전 비중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80% 부풀려진 전력수요와 늘어나는 핵발전소
정부가 ‘핵발전 비중 축소’라고 얘기하는 것은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설정했던 ‘핵발전 비중 41%’를 기준점으로 잡은 것이다. 그러나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비현실적인 계획이었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리고 중간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라는 대재앙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핵발전소 비중을 기준점으로 잡고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기준점을 잘못 잡다보니, ‘착시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지적할 문제점은 초안에 따르면, 핵발전소 개수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핵발전 비중 축소’는 숫자장난을 친 것에 불과하다. 정부가 장난을 친 방법은 간단하다.
쉽게 생각해서 ‘전체 전력 수요 × 핵발전 비중’을 해서 필요한 핵발전 설비 용량(필요한 핵발전소 개수)이 나온다고 할 때에, 앞부분의 ‘전체 전력 수요’를 부풀려 버리면 핵발전 비중을 낮춰도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2035년의 전력 수요 예측치를 2011년에 비해 80%나 높게 잡아 놓았다. 이렇게 전체 전기소비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가정하면, 핵발전 비중(비율)을 22~29%로 잡더라도 핵발전소 개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최종안에서는 수요전망을 조금 낮출 것이라고 하지만, 이미 크게 뻥 튀겨놓은 상태이므로 큰 의미가 없는 얘기이다. 따라서 그래서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핵발전 축소’가 아니라 ‘핵발전 확대’ 계획이다.
핵심쟁점인 전력수요전망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또한 절차적으로도 정당성이 없다.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수립과정에서 정부는 1차 계획과는 달리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는 민·관워킹그룹을 만들어서 초안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핵심쟁점인 전력수요전망에 대해서는 민·관워킹그룹 내부에서도 논의가 제대로 안 됐다는 것이다. 민·관워킹그룹을 막바지에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따라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정당성이 없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전력수요전망은 정부가 하듯이 할 일이 아니다. 전력수요가 얼마나 늘어날 것인지를 예측할 일이 아니라, 전력수요를 어느 수준에서 묶을 것인지에 대해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서 전력수요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산업용전기요금을 현실화하면 전력수요는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처럼 전력수요가 마냥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것은 핵발전소나 석탄화력발전소 같은 대규모 발전소를 더 지을 수 있는 명분을 찾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핵발전이 전체 전기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몇 %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노후한 핵발전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새로운 핵발전소를 추가로 지을 것인지의 문제이다.
두루뭉술한 숫자놀음, 국민을 기만한다!
사실 핵발전소 문제는 두리뭉실한 숫자로 얘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수명이 이미 끝난 고리1호기, 월성1호기를 폐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아직 착공도 하지 않은 신고리5~6호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새로운 핵발전소 부지로 삼척·영덕을 지정한 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이렇게 따져야만 핵발전소가 몇 개나 존재할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밀양 송전선문제도 연결되어 있다. 만약 수명이 끝난 고리1호기를 폐쇄한다면 밀양 송전선은 필요 없을 수 있다. 그만큼 송전해야 하는 발전소 개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핵발전 비중 축소’를 얘기하는 것은 숫자놀음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이렇게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면, 최소한 향후 핵발전소 개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공개적인 논쟁에 붙여야 한다. 그것을 피하면서, 2035년까지 에너지정책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너지기본계획, 공개적이며 투명한 논의절차를 거쳐야한다!
이런 계획을 만드는 절차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 하지만, 에너지기본계획을 이런 식으로 작성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몇몇 전문가들이 작업하고, 정부 관료들이 최종적으로 안을 만드는 것은 민주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없다. 에너지기본계획 같은 문제는 초안 작성 단계부터 공개적이고 투명한 토론과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을 통해서 100~200명 정도의 시민회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성별, 연령별, 지역별 할당을 통해 참여할 시민들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들에게 에너지·전력정책에 관한 설명과 정보제공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공부가 필요하면, 다양한 입장에 있는 전문가들을 불러 얘기도 듣고, 토론을 할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나라의 전력소비규모를 늘릴 것인지, 아니면 강력한 정책을 통해서 줄일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핵발전과 석탄화력, 가스발전, 재생가능에너지 등은 어떻게 조합을 할 것인지에 관해 초안을 작성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방식보다 훨씬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안전과 미래를 위한 시민의 목소리가 지금 필요하다!
어쨌든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진행형이다. 정부는 11월까지 정부의 초안을 작성해서 공청회를 할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형식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더 이상 우리의 안전을,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그들의 손에 맡겨둘 수는 없다.
발행일 : 201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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