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박근혜 정부 핵발전정책, 탈핵운동의 대응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세계 곳곳에서 탈핵유턴?
얼마 전 한 경제신문은 “원자력발전소 1기면 풍력발전기 6000개를 대체합니다. 그래도 원전을 포기하란 말입니까?”라는 데이비드 캐머린 영국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며,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주춤하던 탈핵정책이 속속 무너지고 있다며, ‘원전 유턴’, ‘원전 회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그간 핵발전을 둘러싼 논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모르는 이들이 보면, 이러한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벌써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3년이란 긴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기억에서 조금씩 지워지듯 탈핵정책도 현실론에 부딪혀 흐릿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미국의 경우 2005년 부시 행정부 시절, 핵발전에 대한 보증확대, 세제해택을 늘리는 에너지 법안이 통과되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이 정책기조가 유지되면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이 후쿠시마 이전부터 추진되고 있었던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2008년 영국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 계획을 수립하면서 2050년까지 영국을 ‘탄소배출 제로’로 만들겠다는 의욕적인 발표와 맞물려 핵발전이 탄력을 받는 중이었다. 영국정부는 탄소배출 제로를 위해 기후변화법을 제정하고, 기후변화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의욕적인 활동을 했지만, 온실가스 저감 방안에 핵발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정부는 2020년까지 최소 10GW(약 10기)의 신규 핵발전소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신규 부지 11곳을 선정, 부지선정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후쿠시마 핵사고가 생기자, 기존 계획을 일시 중지하는 정치적 제스쳐를 취하기는 했지만, 단 한번도 ‘탈핵’ 같은 것을 선언해본 적이 없는 국가이다. 단지 계획이 여론에 밀려 지연되었을 뿐.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핵발전에 대한 입장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한국 역시 ‘원전유턴’, ‘원전 회귀’ 국가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이명박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보다 핵발전소 건설과 수출에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그날도 UAE 핵발전소 기공식에 참여했을 정도였다. 후쿠시마 핵사고와 함께 핵발전에 대한 국민여론은 악화되었고, 이어 발생한 한수원 비리 사건은 위험성뿐만 아니라, 핵산업의 도덕성마져 뒤흔들어 놓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에 따라 핵발전소를 둘러싼 계획은 지연되었다. 대표적으로 올해 2월 발표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삼척, 영덕 등에 예정되었던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은 ‘유보’되었다. 하지만 이는 말뿐인 유보였다. 유보 발표 이후에도 이들 지역에서 토지와 건물에 대한 물건조사 등은 유보 발표와 상관없이 그대로 진행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유보’이지만, 실제로는 ‘추진 중’인 상황.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의 핵발전 비중 목표인 41%를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2~29%로 낮추겠다는 발표가 있자, 핵산업 관련 주가가 폭락하는 등 일대 소동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정부의 해명, 현재 26% 수준의 핵발전 비중을 28~29% 늘리는 수준에서 핵발전 비중 목표를 정하겠다는 정부 발언이 이어지면서 말 그대로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과연 한국사회는 탈핵으로 전환하고 있는가?
안타까운 일이지만,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 ‘저탄소 녹색성장’을 들고 나왔을 때도 이와 비슷한 혼란이 있었다. 저탄소와 녹색은 전통적으로 환경단체가 사용하던 개념이었고, 설사 그것에 문제가 많더라도 정부가 이런 표현을 쓰는 상황에서 직접 반대구호를 외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어 나온 ‘4대강 사업’ 계획과 핵발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기본계획 발표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이 말그대로 녹색분칠(green washing)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보듯이,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내 놓는 ‘순진한’ 정부는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단점과 문제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숨기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포장지’로 자신을 감싸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또한 이러한 포장지에는 단지 껍데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개선점을 포함시켜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뿐이다.
하지만 ‘핵없는 세상’을 꿈꾸는 탈핵운동 진영에게 문제의 본질은 한국사회가 탈핵으로 바뀌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 한국의 탈핵운동가들은 독일 메르켈 총리가 2022년 핵발전소 제로를 선언했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정작 독일의 운동가들은 ‘지금 당장 핵발전소 제로를 선언하라’며 반대 성명과 집회를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많은 지역에 더 많은 핵발전소가 지어지는 현실은 누가 보더라도 탈핵과 거리가 먼 우리의 현실이다. 보다 직접적인 행동과 저항을 통해 후쿠시마 핵사고가 인류에게 전해준 교훈을 실천하는 일. 이 일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발행일 : 201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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