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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비전과 목표가 없는 장기 에너지 계획?

비전과 목표가 없는 장기 에너지 계획?

 

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비전과 목표 없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잘못된 에너지 수요전망이 그 출발점

정책은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비전이 없다면 정책은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고, 목표가 사라진다. 따라서 정책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의지의 산물이다. 그런데 의지와 목표는 없고 수단만 가득한 정책이 있다면? 12월 발표를 앞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바로 이 해괴한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에너지기본계획은 국가 에너지정책의 최상위 정책으로, 에너지기본계획에 맞춰 에너지 수급에 관한 세부 정책과 예산이 확정된다. 에너지가 환경·산업·고용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에너지기본계획이 미래 사회상의 결정적인 키잡이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에너지기본계획에는 비전은커녕 목표도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비상식적인 정책의 시발점은 에너지수요전망 때문이다.

 

추세분석의 상향식 수요전망보다, 수요를 조절할 정책 목표가 중요

에너지기본계획에서 에너지 수요전망은 전적으로 상향식(bottom-up) 모델에 의존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수요부문별, 용도별로 추세 분석을 해 향후 수요치를 전망하는 식이다. 현재 경향을 투영하여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향식 모델은 구체적인 원인 분석을 통해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데이터 값은 가질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정책이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수요 전망안보다는 수요를 얼마나 조절할 것인가 하는 정책 목표 지점이 중요하다. 정부도 이런 이유로 수요 전망안과 수요 목표안을 별도로 수립하여 발표한다.

 

2035년까지 전력소비증가율 2.5% 예측출발선 자체가 왜곡되었다!

지난 10·관합동워킹그룹의 이름으로 발표된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은 2035년까지 전력소비 증가율이 연평균 2.5%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수요 관리를 통해 전력수요의 15%를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기준수요는 원인에 따른 결과를 예상하는 추계 프레임(forecasting)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전력 수요 추세에 비추어 수요 전망을 도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전력 수요 증가율은 정책의 실패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매년 3~5%에 이르는 물가상승률과는 달리 전력 요금은 거의 인상되지 않았고, 반대로 경쟁 연료인 가스나 석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때문에 전력수요는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인구나 GDP 등 주요 전망과 경제 활동 변수를 고려했다고 하지만, 출발선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다가 전력 수요 전망안 자체가 몇몇 전문가 사이에서만 다뤄지다 보니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미 사후적인 것이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핵발전소의 사회적 위험과 지구온난화 위기를 넘어설, 정책목표와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2.5% 전력 수요 증가율을 감안하면 2011년 현재 39백만 toe(석유환산톤) 정도인 전력 소비량은 2035년경 70백만 toe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관합동워킹그룹 권고안대로 전력수요를 15% 정도 줄인다고 하더라도 60백만 toe에 이른다. 재생가능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핵발전소나 대형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이 불가피하다. 심각한 상황에 이른 지구온난화나 핵발전소로 인한 사회적 리스크를 감안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다. 에너지기본계획과 같은 최상위 정책은 에너지 수급 전망은 물론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포괄적 지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력 수요를 관리하는 방안이 최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에너지기본정책의 핵심은 미래의 경향성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규범적 목표를 제시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전면에 나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에너지기본계획은 추계 프레임이 아니라 정책 목표 프레임(backcasting)이 중시되어야 한다. 에너지기본계획이 20년이라는 장기 목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책 목표가 우선시된다고 해서 경향을 예측하는 모델이 불필요해지는 건 아니지만, 에너지 위기가 가시화되었으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계획이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도달해야 하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에너지·기후변화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기술적 수단들을 이미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건 정부의 의지뿐이다. 경향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는 탈핵도, 미래도 불가능하다.

 발행일 : 201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