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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민관워킹그룹 참여 이후, 최근 에너지기본계획 논의 흐름을 지켜보며…

민관워킹그룹 참여 이후, 최근 에너지기본계획 논의 흐름을 지켜보며

 

이상훈 소장(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2008, 2013년 국가에너지정책의 차이점

박근혜 정부 에너지 정책의 뼈대가 될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이 곧 확정된다. 관련부처 협의와 녹색성장위원회 심의를 거친다고 하지만 예전처럼 산업통상자원부 안이 거의 수정없이 에너지기본계획이 될 전망이다. 산업부는 지난 1011일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워킹그룹의 권고안 형식으로 에너지기본계획 초안을 공개했고 여론을 살피고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117일에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가 개최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원전 설비 비중을 29% 정도로 유지하겠다는 산업부의 입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절차와 주요 과제에서 2008년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과는 차이가 있다. 우선 산업부와 국책연구기관이 에너지기본계획의 초안을 만든 후 관련분야 전문가들의 자문을 참고했던 관행에서 탈피하여 처음부터 산업부, 시민사회, 산업계, 학계 등 다양한 입장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60여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에너지기본계획 민관워킹그룹을 조직하여 초안을 만들고 이를 기본으로 산업부가 산업부 안을 만드는 절차를 거쳤다.

이런 거버넌스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수용성 악화, 9.15 순환 정전 발생, 반복적인 전력수급 불안, 밀양 송전탑 갈등 심화, 수도권 계통망 불안 등으로 정책당국에 대한 불신이 커진 반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참여 의지가 높아진 상황이 고려된 결과이다. 비록 여건에 떠밀린 수동적 선택이었지만 이는 에너지기본계획이라는 정부의 핵심적 정책 결정에서 정부 주도의 통제와 관리를 벗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주체적인 참여자로 협의와 합의과정을 통해서 정책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민관워킹그룹 권고안에서 에너지 가격체계 개편이 강조되고 발전용 유연탄에는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LNG와 등유에 부과된 세금은 완화하는 세제개편안이 명시되었으며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을 분산형 전원시스템으로 개편하겠다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무엇보다도 원전의 설비 비중을 기존 계획의 41%에서 22~29%로 낮추겠다는 안이 엄청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MB정부의 원자력, 재생에너지 동시 확대 정책을, 박근혜 정부에서는 원자력 확대로 정리

하지만 포장을 벗기고 장식을 떼어내면 새로운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실제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필자가 참여했던 전력분과 워킹그룹 막바지 모임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이번 계획이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계획 기간인 2027년까지는 이전 계획에 비해 다른 점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에너지 소비 조장과 왜곡을 초래해온 에너지 가격체계를 개편하는 중차대한 과제도 전기요금 소폭 인상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안이 나왔지만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 패턴에 충격과 변화를 주기에는 역부족이고 유류 및 천연가스와 전기 간의 상대가격 해소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세수 증대의 수단에 그칠 수도 있다. 비록 원전 설비 비중을 기존 계획보다 낮추었다고 하지만 산업부 의도대로 원전 설비 비중을 현재 26%에서 29%로 높인다면 기존의 원전 확대 계획은 순항할 것이고 과도한 전기화의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전력수요가 제1차 에너지기본계획 전망보다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2035년 연간 1인당 전력수요가 세계 최대 수준인 203515,732kWh까지 증가한다는 예측은 원전을 기반으로 에너지다소비업종을 위주로 한 산업계에 값싸게 전력을 공급하는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온실가스 감축을 고려하여 CCS 등 석탄화력발전소에 최신 온실가스 감축기술을 의무화한다고 하지만 발전자회사들도 감축기술 적용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의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화력 대신 가스화력의 비중을 대폭 높일 수도 있겠지만 발전업계와 산업계는 전기요금을 인상시키는 연료 전환보다는 차라리 달성 불가능한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현실화해야 한다며 반발할 것이다.

분산형 전원 확대를 말하지만 수요지 근처에 들어갈 가스복합 열병합시스템은 에너지 세제개편안이 실현되더라도 대용량 원거리 석탄화력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 이대로 간다면 분산형 전원 확대는 그럴듯한 표현일 뿐 결국 재생에너지 발전의 비중이 약간 증가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보급 정책은 이전보다 크게 후퇴할 전망이다. 20351차 에너지의 11%라는 재생에너지 중기 보급 목표 자체도 후퇴했지만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우선시하면서 재생에너지 보급에서 정부의 지원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보이고 이것은 관련 예산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시장 경쟁력이 있는 분야를 중점 보급하겠다는 것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시장 창출을 위한 정부 개입이 필요한 분야에서 손을 떼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재생에너지는 창조경제를 실현할 유력한 성장동력임이 분명함에도 MB정부의 녹색 성장 이미지가 강하다는 이유로 홀대받는 분위기이다. 사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은 상충되는 성격이 강해서 동시에 드라이브를 걸기 어렵다. 그래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확대했던 MB정부의 모순된 정책을 박근혜 정부는 원자력 확대로 바로잡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단체 등의 강한 반발, 그러나 시민들은 무관심하고

결국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맥락을 같이 하는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안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은 흐지부지되고 권고안의 강조점과는 달리 원전과 석탄화력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중식 전력시스템은 20년이 지나도 건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런 안에 대해서 환경단체와 진보정당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중적 저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에 대한 요구가, 원전 축소에 대한 열망이 아직까지 폭넓게 시민 속으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후쿠시마 이후 원전 수용성의 감소, 전기화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원격지 설비집중과 수도권 부하밀집에 따른 계통 불안, 송전망 증설을 둘러싼 갈등 심화, 발전부문 온실가스 감축 등 심각한 도전과 난제에 직면해 있다. 이번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런 도전과 과제에 슬기롭게 대응하여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을 구축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였고 그래서 민관워킹그룹이라는 거버넌스도 등장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계획 기간 동안 원전 비중 확대, 전기화 추세 지속, 발전부문 온실가스 증가, 발전단지 대규모화와 장거리 송전 구조 고착 등 상황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

 

에너지정책 산업계의 이해 과잉 반영에너지행정 산업통상부에서 분리·독립시켜야

결론적으로 이번 에너지기본계획안은 에너지 정책이 여전히 산업 진흥과 수출 확대, 물가 안정 논리에 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은 여전히 에너지다소비업계와 기존 에너지업계가 주축이 된 산업계의 이해가 과잉으로 반영되고 있다.

산업 진흥과 수출 확대가 국가 전체의 이익과 동일시되어 에너지 정책의 지속가능성은 사실상 무시되고 있다. 산업 진흥과 수출 확대에 떠밀려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에너지 행정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의 수립을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구조와 관행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 여론 다수가 원전 축소를 요구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에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이 공익 혹은 국익의 관점에서 현실화되는 상황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발행일 : 201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