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이 화제이다.
2014년 6월부터 민정수석을 지낸 김영한 수석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국회 출석 지시를 거부하고 사상 초유의 항명파동을 일으킨 뒤, 2015년 1월 사퇴했다. 불과 몇 개월도 안 된 짧은 기간 동안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2016년 8월 간암으로 사망했는데, 그가 청와대 근무 당시 작성했던 수첩에 각종 공안 탄압 의혹이 그대로 담겨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수첩 속, 청와대의 신규 핵발전소 대응
이 수첩의 내용엔 2014년 10월 삼척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가 2016년 12월 7일 공개한 수첩 내용에 따르면, 삼척 핵발전소 내용이 수첩에 처음 나온 것은 삼척 주민투표가 있고 난 직후인 2014년 10월 10일이다. 10일자 메모에서 김영한 수석은 “삼척 원전 관련 주민투표-전례로서 기능 우려”라고 적었다. 3일 뒤인 13일자 메모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인 듯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메모엔 “삼척 원전 관련 주민투표. 영덕 확산조짐”이란 항목에 대해 ▲선제적 대응 ▲주민투표로 국책사업에 저항, 선례. 기필코 달성 ▲지역언론 설득 등 향후 지침이 적혀 있다.
이러한 요구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10월 23일자 메모엔 김기춘 비서실장을 뜻하는 “長” 글자 옆에 “삼척 원전-영덕 전이 현상 없도록 사전 노력 要”라고 직접적인 지시사항이 나와 있고, 11월 14일자 기록엔 “삼척시장 허위사실 유포 기소예정-직권남용 수사 중”이란 내용이 나온다. 지방선거 당시 삼척시장의 허위사실 기소가 11월 24일 진행되었고, 주민투표에 대한 직권남용 검찰 송치는 2015년 8월 진행되었으므로 청와대는 선거법 위반으로 일단 삼척시장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주민투표에 대한 법적 개입을 차근차근 준비했던 것이다.
※2014년 10월 13일자 김영한 수석의 메모. “삼척 원전관련 주민투표가 영덕으로 확산될 조짐이 있다”며,
“‘선제적 대응’과 ‘지역언론 설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2014년 11월 14일자 김영한 전 민정수석 메모. “삼척시장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근혜 정부 개입, 더 밝혀져야!
삼척 주민투표 이후 삼척시장 기소와 영덕으로 반대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직접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은 수차례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삼척원전백지화범시민추진위와 사회단체 등은 성명서를 내고 삼척 핵발전소 백지화를 촉구했다. 삼척원전백지화범시민추진위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에 밝혀진 사실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삼척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삼척시 번영회, 새마을회, 장애인연합회 등 20여개 사회단체도 성명서를 통해 청와대의 수사 개입을 규탄하고 “건전한 지방자치를 말살하려는 세력에 대해 끝까지 감시하고 투쟁할 것”을 밝혔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수첩이 공개된 이후 탈핵운동 관련 다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재임기간은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직후인 2014년 6월 중순부터 2015년 1월까지였기에 수첩엔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2014년 6월 11일)이나 고리 1호기 폐쇄 결정과정(2015년 6월), 영덕 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2015년 11월)에서 청와대 역할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이들 사건은 모두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계속 제기되었지만, 이에 대한 증거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탄핵 정국에 불거져나온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수첩 공개는 그간 청와대가 국정을 관리해온 방식을 잘 보여준다. 지역주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모습,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지자체장에 대해 탄압을 가하는 모습, 일상적인 정보 취합과 검찰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 등은 그간 청와대가 민심을 억누르고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모든 사업에서 보여왔던 모습이다. 청와대의 이러한 행태 앞에 지역주민들은 생업을 뒤로한 채, 반대운동을 이어왔고, 결국 청와대가 그토록 우려했던 것처럼 삼척의 주민투표는 영덕 핵발전소 반대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울산과 경주의 지진을 겪으며, 불법 선거운동에 불과하다던 주민투표 결과는 이제 지역주민의 뜻이 반영된 결과로 인식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주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는 국가 에너지정책을 다시 세우는 일뿐이다.
한편, 이번 수첩 공개는 권력 최상층의 붕괴를 계기로 이뤄진 것이지만, 앞으로는 주요 고위층의 다양한 기록은 모두 수집되고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기록은 국가정책 결정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자 사료이기 때문이다. 투명한 정보공개, 법치주의에 입각한 행정집행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데 이런 자료는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한바탕 해프닝처럼 뉴스가 쏟아지는 지금,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살펴봐할 이유가 여기있다.
이헌석 편집위원(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탈핵신문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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