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미년(乙未年)이 저물고 있다. 탈핵신문 편집위원회는 떠나가는 2015년을 되돌아보며, 한국과 일본에서 어떤 사안들이 탈핵신문의 주요 뉴스로 다뤄졌는지 점검해보았다.
한국에서는 신규핵발전소 예정부지로 지정된 영덕에서 주민투표를 준비·추진하는 과정, 그리고 11월 11일~12일 주민투표를 성사시킨 결과까지를 다룬 기사가 18꼭지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7차 전력수급계획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 기사와 월성1호기 수명연장 결정 이후 재가동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주를 중심으로 만인소·무효소송 등으로 대응하는 기사가 6꼭지 기사화됐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최종 권고안 내용 및 영광대책위 등의 대응 활동, 종교계와 민간차원에서 전개된 다양한 한·일 교류, 대전 유성구의 민간환경감시센터 조례 청구 운동이 각 4꼭지씩 다뤄졌다. 갑상선암 공동소송, 저선량방사선 위험성 및 ECRR(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 내용 소개가 각 3차례씩, 경주 방폐장 준공·운영 및 해상운송,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확대 여부, 고리1호기 폐쇄 논란, 방사능안전급식 문제, 청도삼평리 송전탑 투쟁과 벌금 노역형, 원폭환우 김형률 10주기, 전북교육청 탈핵교재출간과 탈핵교육 선언 등이 각 2차례 기사화됐다.
이외에도 월성핵발전소 방사능 주변 지역주민 인체영향, 한국 청소년 일본 후쿠시마 방문, 일본산 수산물 수입재개, 신고리3호기 가동, 신고리5~6호기 추가건설계획, 월성1~2호기 합동 준공식, 한수원 정보공개 공익소송, 한미원자력협정, 핵폐기장 주민투표 10주년 등등도 관심있게 다뤄진 기사들이다.
편집위원회는 사안의 성격에 따라 일부는 묶기도 하고, 또 일부는 이슈별 안배도 하면서, 2015년 국내 5대 탈핵뉴스와 일본 3대 탈핵뉴스를 선정했다. 고리1호기, 영덕주민투표와 같은 승리의 기록도 있는 반면, 월성1호기 등과 같이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의 기록도 있다. 2015년 탈핵신문과 함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달려와 주신 필진들과 독자여러분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인사드린다 - 편집위원회 주
1위 영덕주민투표 추진과 성공, 그러나…
신규핵발전소 예정부지로 선정된 삼척과 영덕은, 작년(삼척, 2014년 10월 9일)과 올해(영덕, 2015년 11월 11일~12일) 정부·한수원의 비협조와 방해를 뚫고 민간주도의 주민투표를 성사시키며, ‘삼척·영덕 주민들은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로써, 정부·한수원의 신규핵발전소 건설 계획은 명백히 무산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한수원은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무시하는 전략으로 돌파하려 하고 있다. 민심을 외면하는 정부·한수원의 이런 형태에 민심은 분노하고, 삼척·영덕 주민들의 삶은 고단하다.
올 3월초 영덕 11개 농·어업단체가 연대한 영덕천지원전건설백지화범군민연대가 발대식을 가지며, 영덕 신규핵발전소 유치와 부지선정은 주민들의 의사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인 추진이기에, 영덕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초 영덕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 추진위원회가 출범했고, 9월초에는 영덕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일을 11월 11일로 공표하며 영덕군청 앞에서 영덕군민 궐기를 촉구하는 단식농성이 시작됐다. 영덕핵발전소를 반대하는 영덕주민들은 수요촛불집회, 장날 선전전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핵발전소 반대 여론을 영덕주민들 속으로 계속 확산시켜나갔다.
정부와 한수원 역시 선심성 관광, 쌀·수박·복숭아 등의 물량공세, ‘영덕발전 10대 사업 제안’ 등을 통해 핵발전소 찬성여론을 확산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이 과정에서 대다수 영덕주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11월 11일~12일 양일간 진행된 주민투표는 11,209명(영덕주민 대비 32.5%, 부재자 제외한 유권자 대비 41%, 선거인명부 대비 60.3%)의 영덕주민이 참여해, 10,274명(91.7%)이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했다. 영덕주민투표를 추진해 온 지역주민과 연대자들은, 주민투표 성공을 자축하며 투표결과에 환호했다. 하지만, 개표 다음날 정부와 한수원은 “주민투표 법적 근거 없다. 영덕원전 차질없이 건설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통해 강행의사를 밝혔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11월 말 영덕주민투표 추진위는 정부·국회를 방문해 “영덕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하고, 영덕천지 1~2호기 건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졌고, 영덕핵발전소반대군민연대 등은 촛불집회, 장날선전전 등을 현지에서 이어가고 있다.
2위, 고리 1호기 폐쇄 결정!
6월 16일, 한수원 이사회는 고리 1호기 수명연장(제2차)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978년 가동을 시작한 고리1호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핵발전소였다.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2006년,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가 수명연장(제1차) 반대운동을 진행했으나, 정부는 수명연장을 승인한 바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2012년 초 정전은폐사고, 세월호 사고 이후 급격히 증가한 안전 우려 등으로 고리 1호기 수명연장 문제는 2015년 상반기 가장 뜨거운 주제 중 하나였다.
특히 2015년 상반기 고리 1호기 폐쇄는 인근 지역주민과 탈핵단체만의 주제가 아니었고, 서병수 부산시장과 부산지역 여야 정치인들이 고리 1호기 폐쇄를 주장하고 나섰고, 부산시민들의 고리 1호기 폐쇄 열풍은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5월말까지도 고리 1호기 폐쇄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시간만 끄는 형태였다. 그러나 범국민적인 노후 핵발전소 폐쇄 열풍을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6월 12일 산업부 장관 주재로 열린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영구정지 권고’와 6월 13일 한수원 이사회의 수명연장 포기 결정으로, 고리 1호기는 폐쇄의 길을 걷게 되었고, 2017년 6월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은, 국내에서는 핵발전소 폐쇄 결정을 한 첫 번째 사례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부산반핵시민대책위와 전국적으로 연대한 시민사회단체, 부산지역 여·야 정치권까지 합세하여 노력한 결과물이다.
3위, 계속되는 핵발전 확대 정책 - 핵발전소 추가 건설과 수출
2015년 상반기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투명하지 못했던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절차의 문제점,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전력수요 증가율, 영덕과 삼척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갈등 등 다양한 쟁점이 상반기 내내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7월, 핵발전소 2기 증설을 골자로 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지었다. 이에 따라 신고리 7~8호기로 계획되었던 핵발전소 2기가 영덕에 건설하기로, 추가 2기는 삼척 혹은 영덕에 건설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핵발전 중심의 전력정책을 고수하는 것을 의미했다. 상반기에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확정됐다면, 하반기는 건설 중인 핵발전소와 수출을 위한 이벤트가 이어졌다.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 심의(10월), 신월성 1~2호기 준공식(11월)이 이어지면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가 24기에서 25기로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핵발전소 수출을 위한 외교도 이어져, 박근혜 대통령은 11월 파리 기후변화협약 회의 참석 이후 12월 체코를 방문해 핵발전소 수출 ‘세일즈 외교’를 진행하기도 했다.
4위 갑상선암 공동소송…전국에서 600여명 참가
2014년 10월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획기적인 판결이 있었다. 고리핵발전소 인근에 거주하는 이진섭 씨 가족이, 한수원을 상대로 ‘핵발전소 방사능으로 인해, 암 발병과 건강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갑상선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을 계기로, 갑상선암 공동소송이 시작됐다.
2014년 연말부터 2015년 상반기 동안 울진·월성·기장·영광·고창 핵발전소 주변지역 대책위를 중심으로 갑상선암 공동소송 참가인단을 모집했고, 전국에서 약 6백여명의 갑상선암 환자들이 참여했다.
이번 소송의 주심변호사를 맡고 있는 변영철 변호사(법무법인 민심)는 방사선 건강영향, 저선량 내부피폭의 위험성 등을 입증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버스비 박사(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ECRR 과학위원장)를 증인으로 채택해, 한수원 측 변호인들과 법정 공방을 이어갔다. 크리스토퍼 버스비 박사는 법정 증언 이외에도 국내 강연, 토론회 등을 통해 한국과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방사선 건강영향 모델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저선량 내부피폭이 왜 위험한지 그 원리와 구조를 체계적으로 소개했다. 크리스토퍼 버스비 박사의 방한으로, 방사선 건강영향, 저선량 내부피폭의 국내 이론적 토대가 한 차원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6년에도 법정 공방은 계속된다. 당장 1월 15일 “핵발전소 액체·기체 폐기물을 어떻게 방출하고 있는 지,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한수원 측 변호인단은 “불필요한 과정이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5위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확대…부산·경남 20km, 전남·북·울산 30km
2014년 5월 국회에서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방재대책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논란을 거듭해온 기존 8~10km였던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2015년 5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의결과 부산·경남은 약 20km로, 전남·북·울산은 약 30km 가깝게 결정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권고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확대’ 요구를, 몇 년간 숱하게 밀고당기기한 끝에 정부가 일부 수용한 결과다. 비록 한계가 있는 일부의 성과지만, 이 사안의 후속과제도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넓혀 놓은 방사선비상계획구역에,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여 어떤 방사능방재대책을 세워야 할 것인가, 또 예산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2016년은 넓혀진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을 적용한, 각 지역별 방사능방재계획과 매뉴얼 등이 처음으로 수립되어 발표될 것이다. 신규·노후핵발전소 등의 현안에 우선순위가 밀리다보니 소수의 관심과 빈약한 연구가 현실인 상황에서, 해당지역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또 해당 지자체는 이 사안을 어떻게 헤쳐갈 수 있을까. 새해,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우선 필요해 보인다.
탈핵신문 제38호 (2016.1월호)
윤종호·이헌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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