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현안 보고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7차 전력계획)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번 7차 전력계획에는 고리1호기 수명연장 여부, 영덕 및 삼척 신규 핵발전소 건설 여부가 담길 예정이다. 이에 따라 올초부터 7차 전력계획의 수립 방향에 대해 높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국회 현안 보고를 전후로 고리 1호기 폐쇄, 삼척 핵발전소 유보 혹은 백지화 등 추측성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관계자’라는 명의로 이를 뒷받침하는 발언도 언론에 보도되었다.
여·야 의원들의 질타 속에 진행된 국회 보고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4월 29일 국회 보고에선 어떤 내용도 담겨있지 않았다. 굳이 내용을 찾자면, 6월말까지 7차 전력계획 수립을 완료할 예정이라는, 이미 알려진 일정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노후 핵발전소(고리1호기)의 경우 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가 수명연장 여부를 판단할 것이며, 영덕과 삼척 신규 핵발전소 문제는 종합 검토해서 반영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원래 7차 전력계획은 작년 12월까지 확정하도록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이미 수개월이나 기한을 넘긴 상황에서 나온 정부의 무성의한 보고에, 여·야 국회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를 비판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런 ‘내용 없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현안 보고를 받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으나, ‘바쁜 일정 중에 이번 회의도 어렵게 모였다’는 다소 뜬금없는 이유로 빈껍데기 보고와 내용 없는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마다 한 번씩 모든 발전소, 송·배전 설비 계획을 담는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핵심 계획이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발전소 건설 포함 여부에 따라 증권가에선 주식이 급등과 급락을 하기도 하고, 해당지역 주민들은 수십년동안 각종 전력시설로 인한 피해를 그대로 떠안기도 한다. 이번 국회에서 벌어진 7차 전력계획 보고는 해당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특히 노후 핵발전소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해하고 있는 부산시민들과 벌써 몇 년째 반대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영덕과 삼척 주민들에게는 특히 그러하였다.
남아도는 전력설비, 산적한 쟁점사안
매번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지만, 이번 7차 전력계획을 둘러싼 논쟁은 특히 뜨겁다. 그동안 계속 늘어왔던 전력수요 증가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전력수요 증가율은 많아봤자 평균 2~3% 정도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효율 향상에 따라 0%대를 유지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력수요는 2010년 10.1% 상승을 기록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특히 2014년 전력수요증가율은 0.6%를 기록해, 1998년 IMF 경제 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사상 처음으로 0%대 성장을 기록했다. 경기침체와 에너지효율 향상으로 전력수요가 예전만큼 크게 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력수요 증가가 줄어들자, 당장 민간 발전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많은 자본을 투자해서 발전소를 지었으나, 전기 수요가 없으니 발전기를 가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연스레 발전회사의 수익은 줄어들게 되었고 이런 피해는 LNG 발전을 하고 있는 민간발전회사들에게로 집중되었다. 이들은 수익이 급감하게 되었다며, 전기판매 수익이외에도 발전기 설비 용량에 따른 요금(용량요금)을 올려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신규 발전소 건설은 사실상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2013년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시 석탄화력발전소 선정 과정의 부실을 둘러싼 감사원 감사까지 진행되었기에, 일각에서는 이미 승인된 석탄화력발전소의 승인 취소까지 거론되고 있다.
전력수요 증가 감소와 이에 따른 전력정책 변화는 7차 전력계획 수립의 가장 뜨거운 감자이다. 워낙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기에 이 복잡한 갈등을 조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가운데 고리 1호기와 영덕 및 삼척 신규 핵발전소 건설 문제가 놓여 있다.
투명한 공개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
이런 가운데 정부는 6월말까지 국회 보고와 공청회, 계획 확정을 모두 마치겠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계획 확정 완료까지 2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각종 쟁점에 대한 정부 입장을 확인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가장 중요한 전력수요 예측 자료와 전망은 여전히 비공개 상태이며, 각종 소문과 관측만 난무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밀어붙이기 식으로 정부 계획을 확정짓는 것이 아니다. 향후 급변하는 전력수요에 정부가 어떤 정책을 수립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무작정 발전소를 계속 짓다가는 지역주민은 물론 전력 산업 전체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노후 핵발전소와 신규 핵발전소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력계획에 담으라는 요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각종 자료의 투명한 공개와 사회적 논의, 매우 당연하지만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던 기본을 찾아가는 것이 7차 전력계획 수립과정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다.
글쓴이 : 이헌석 편집위원
2015년 5월호 (제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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