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주민투표, 한국의 탈핵과 민주주의를 구할 것이다
한재각(녹색당 정책위원/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10월 9일 삼척주민투표…핵발전 정책 전환과 지방자치 실험의 중요 사건!
삼척 시민들이 신규 핵발전소 부지 유치에 대해 찬반을 묻는 자주적인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삼척시는 지난 9월 12일 ‘삼척원전 유치찬반 주민투표 관리위원회’를 출범시키며, 10월 9일에 주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을 밝혔다. 이번 주민투표는 국가의 핵발전 정책 전환에 중대한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라는 민주주의 실험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삼척 세 번째 반핵투쟁…‘부지 신청 철회, 주민들 의견을 주민투표로 묻겠다’
삼척은 세 번째 ‘반핵 투쟁’에 나서고 있다. 주민들은 1990년대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냈고, 다시 2000년대 중반에 핵폐기장 건설도 막아낸 역사를 자랑스러워한다.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낸 후 세운 ‘원전백지화 기념비’ 앞에서, 삼척 주민들은 외지인들에게 그들의 반핵투쟁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2010년 전임 삼척시장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신규 핵발전소 부지 유치 신청을 하면서, 삼척은 다시 반핵 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첫 번째 공약으로 ‘원전 유치 철회’를 내세운 현 김양호 삼척시장이 당선되면서, 삼척의 민심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은 취소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주민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전임 시장만이 아니었고, 그 뒤에는 한수원과 중앙정부가 오만하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김양호 시장은 주민들의 뜻을 보다 확실히 밝히기 위해, 전임 시장이 신청한 핵발전소 부지 신청의 철회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주민투표로 물을 방침을 세웠다. 삼척시의회도 만장일치로 이런 계획을 지지했다.
정부·선관위 ‘국가사무를 핑계로, 주민투표 거부’…지방자치·민주주의 정신을 부정
그러나 주민투표법에 따라서 투표를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그 임무 수행을 거부했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에 대해 중앙정부(산업통상자원부, 안전행정부)에게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는지 문의하고, 국가사무라는 답변을 핑계로 투표관리를 해줄 수 없다고 나온 것이다. 독립적 헌법 기구로서 역할을 방기한 선거관리위원회도 문제이지만, 핵발전소 유치 신청을 철회하는 것이 지자체의 고유 권한이 아니라 국가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지역주민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면, 대체 뭐하러 주민투표법을 만들었나. 지방자치·민주주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사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것은 핵발전소라는 중앙집권적인 거대 에너지시스템의 고유한 속성이다. 핵발전소는 지역주민들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위험과 희생 위에서 건설·운영되며, 그 혜택은 서울 등의 수도권의 대도시와 에너지다소비 산업계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부정의(不正義)가 발생하면 이를 바로잡으라고 법을 제정하고 도입한 것이 주민투표제도인데, 이를 보장해야 할 중앙정부가 막아선 것이다. 중앙정부가 바로 그 ‘부정의’ 자체인 셈이다.
삼척 주민투표, 전 국민의 관심사…‘정부의 무모한 핵발전 확대정책을 바로잡는 계기’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계엄령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경찰 병력을 주둔시키고 주민들을 탄압했던, 부안에서도 부안군민들은 자체적으로 주민투표를 조직했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자기의 일처럼 투표 관리를 도왔다. 그 결과 핵폐기물처리장을 거부하고 핵발전 정책을 반대한다는 주민의견을 명확히 밝혔다. 삼척시민들은 부안군민들이 걸어간 승리의 길을 따라 걷기로 한 것이다. 국가가 해주지 않는다면, 주민 스스로 하겠다는 것이다. 자주적으로 조직한 주민투표를 통해 국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핵발전 건설 결정을 뒤집겠다는 것이다.
부안의 반핵투쟁이 삼척으로 옮겨 간 것이지만, 삼척 주민투표는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부안의 싸움이 핵발전의 부산물(핵폐기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해 세상 사람들을 깨닫게 했다면, 삼척의 싸움은 그런 핵폐기물 자체를 더 이상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부안군민들의 반핵투쟁이 그랬던 것처럼, 삼척시민들의 반핵투쟁과 주민투표는 중앙정부의 무모한 핵발전 확대정책를 바로잡는데 중대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삼척 주민투표는 삼척시민만의 투표가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삼척 주민투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정부·한수원 건설계획을 취소하는 것이 순리’
삼척시민들의 참여 속에서 성공적으로 투표가 마무리되고 핵발전소 유치를 반대한다는 뜻이 분명히 밝혀진다면, 중앙정부와 한수원은 그 뜻을 존중하여 건설 계획을 취소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한수원이 순순히 그렇게 할 것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이를 거부하고 강행한다면 삼척은 제2의 부안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삼척에 더 혹독한 바람이 불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이 한국 핵정책이 결정적으로 좌초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삼척의 투쟁이 지역만의 싸움이 아니라, 생명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국적인 싸움으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척은 한국 핵정책을 좌초시키는 뾰족한 송곳이 될 것이다.
삼척시민들은 핵발전소 터 위에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핵발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라는 의미다. 그간의 투쟁을 통해 삼척의 지역공동체는 대안적인 발전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나갈 혜안과 역량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미래가 삼척에서 열릴지도 모른다.
발행일 : 20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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