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의 역사는 삼척시민의 자기정체성
이광우(삼척시의원)
삼척은 핵문제로 21년째 싸우면서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의 골이 패이고 분열돼 있다. 지난 90년대 삼척(덕산)핵발전소 건설계획에 맞서 시민들의 투쟁으로 98년도에 건설예정지가 고시해제 되었으며 또한 2004년과 2005년 2년 동안의 싸움으로 방폐장을 막아내었다.
특히, 삼척시민들은 핵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한 기념으로 근덕면 덕산리에 원전백지화 기념공원(8·29공원)을 조성하고, 아름다운 땅을 물려준 조상들께 감사드리며 이 정신을 후손들에게 알리고 계승하자는 원전백지화기념탑을 만들었다. 지구상에서 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공원을 만들고 기념탑을 세운 유일무이한 곳이다.
이런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삼척에 또다시 3번째 핵발전소 반대투쟁이 지난 2010년 12월부터 시작되어 4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삼척의 반핵운동은 자기 역사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며,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싸움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삼척시민들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핵발전소 유치에 앞장서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전 김대수 시장을 심판하고 핵발전소 결사반대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고 그동안 반핵투쟁을 함께하여 온 김양호 시장을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했다. 이제 삼척의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삼척핵발전소 유치·건설은 삼척시민들의 의사를 왜곡했다
삼척핵발전소를 유치하기 위한 과정은 아주 치밀하게 기획되었으며 삼척시민들의 의사를 왜곡시켰다. 지난 2010년 전 김대수 삼척시장에 의해 벌어진 일련의 과정들을 돌아보면 알 수 있다.
2010년 5월 11일, 김대수 전 삼척시장 재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22조 국책사업인 세계원자력연구원 유치 공약 2010년 6월, 김대수 시장 후보 당선 2010년 7월 2일, 제2원자력연구원 유치로 말 바꿈 2010년 8월 16일, 스마트원자로 실증단지 유치로 또 말 바꿈 2010년 10월 18일, “원자력발전소 유치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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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경과를 보면 출마에서 당선 그리고 임기 시작 후의 말들이 얼마나 기획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재선의 힘으로 거침없이 밀어붙여, 시민들은 의사를 표현할 시·공간적 틈이 없었다. 실제로 자치단체장이 막강한 힘을 앞세워 반민주적 형태로 진행한다면, 시민들의 자유스러운 의사를 표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 ‘매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좁은 지역에서 삼척시를 상대로 납품해야할 사업자가 아닌 시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권력의 독단성은 이런 매력(?)에서 늘 유혹받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언제든지 시민들의 의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 이처럼 삼척에서도 시민들의 무관심과 무저항이 아니라, 의사가 왜곡되고 통제되어 왔던 것이다.
삼척 핵발전소 부지 지정과정 문제 있다…발전사업자를 자치단체·의회가 대변하는 꼴
우선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삼척 핵발전소 부지선정과정 상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핵발전소 부지선정과정은 최상위 계획인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수립된 후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에너지원별로 전력생산에 필요한 설비량을 정한다. 이때 발전사업자의 건설의향서를 접수하면서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삼척핵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는 발전사업자, 한수원은 2010년 독자적인 계획을 수립해서 지자체에 공문을 발송하는 등의 절차를 진행했다. 법률적 근거도 없고 한수원이 독자적으로 만든 방식으로만 진행하다보니 잡음이 많았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나몰라라’했다.
절차적인 허점이 너무나 분명하다보니 각 지자체는 경쟁 속에서 지역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삼척처럼 민심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시장의 독단으로 핵발전소 유치신청이 진행되는 일이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지역에서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역민들의 갈등을 부추기고 결국 발전사업자인 한수원을 위한 결과를 낳게 된다.
삼척 주민투표…“왜곡된 유치의향 바로잡고, 지역민주주의 복원하고, 지방자치 발전을 가져올 국가적 일”
10월 9일 삼척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의견을 묻는 삼척시민들의 주민투표는 한마디로 왜곡된 유치의향을 바로잡는 일이며, 파괴된 지역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며, 지방자치의 점진적 발전을 가져오는 국가적 일이다. 삼척시민들은 핵발전소 유치과정에서 엄청난 탄압과 억압을 받아왔으나 그에 굴하지 않고 투쟁하여 왔다.
지난 4년 동안 시민들의 노력으로 오늘과 같은 주민투표를 성사시킨 결과를 낳았다. 전 시장에 의해 저질러진 독단·독선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경제학의 그레샴의 법칙처럼 민주주의와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자치단체의 운영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6·4 지방선거를 통해 표출되었다. 6·4 지방선거를 통한 시민들의 경험은 앞으로 삼척의 운영을 시민들의 결정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 주었으며 또한 그리할 것으로 확신한다. 즉 시민의 명령에 대해 시민들 스스로가 통제할 것이다.
또한 삼척시민의 주민투표 결과는 국가적으로는 에너지정책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삼척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히려 정부는 삼척의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에너지정책을 전환할 때 마주할 핵마피아들과 대형건설자본들의 저항일 것이다.
이제 정부는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금년 내에 확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연내 계획수립은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삼척으로 인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그러나 결단하면 되는 것이다. 삼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너지정책의 전환을 선언하면 된다.
삼척시민들은 지금 탈핵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을 직접 목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5일부터 1년 넘게 지금까지 일본의 48기 모든 핵발전소가 가동을 중단해도 정전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다만 우리에게 진도 3.5의 지진이 경주와 울산에서 발생했다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다.
거짓과 기만으로 점철된 지난 4년의 역사를 시민들의 힘으로 종결짓는 시민들의 대투쟁에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삼척시민의 한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발행일 : 201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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