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기본계획과 탈핵한국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핵발전 비중 28년만에 처음으로 25% 이하로
지난 6월, 우리나라 전체 전력 중 핵발전 비중이 1985년 이후 처음으로 25% 이하로 떨어졌다. 전체 전력 중 핵발전 비중은 1987년 49.0%를 정점으로 조금씩 떨어져 그간 30%대를 유지하고 있다가 2011년 처음으로 29.9%를 기록하는 등 30% 이하로 떨어졌으나, 올해 한수원 납품 비리 사건 등으로 핵발전소 가동 중단이 이어지면서 지난 6월 24.2%를 기록한 것이다.
올 여름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핵발전소 가동 중단이 계속 이어졌다. 5월말 한수원 비리사건으로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호기가 갑자기 멈춘 것에 이어 수명만료로 지난 연말부터 멈춰있는 월성1호기, 증기발생기 결함으로 1년 넘게 멈춰있던 울진 4호기 등 전체 23기의 핵발전소 중 최대 10기에서 6기가 멈춘 상태로 여름을 지났다.
이에 따라 핵발전 비중은 곤두박질쳤고, 정부는 연일 ‘전력대란’이라며 절전을 당부했다. 재미있는 것은 ‘전력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관공서 에어컨 사용금지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취했지만 6월~7월 전력소비량은 작년에 비해 늘었다는 점이다. 한낮 피크 시간대에 전력소비를 줄여서 대규모 정전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산업용 전력소비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고, 결국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전력소비 감축은 실패한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유야 어찌했든 올해 계속 이어진 핵발전소 가동중지 사태는 우리에게 그간 ‘절대적 존재’였던 핵발전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전력공급원’으로서 핵발전소의 위상이 한수원 비리사건과 연일 이어지는 발전소 가동정지로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날씨와 일몰여부 등 전력 공급의 변화가 큰 재생에너지에 비해 핵발전은 ‘안정적인 전원공급원’이 자랑해 온 강점이었다. 그러나 한수원 비리와 계속되는 발전소 고장사건은 그동안 정부가 자랑해 온 핵발전의 장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핵발전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두쪽날 것처럼 핵발전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정부의 입장에서 핵발전 비중 24.2%는 그간 강조해오던 중요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2030년까지 핵발전 비중을 59%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2배 이상의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는 것인데, 과연 그만큼의 핵발전소가 정말로 10여년뒤에 반드시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 것이다.
탈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전력소비 감축!
핵발전이 24.2%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나라―대한민국에서 전력정책을 다시 만들기 위한 에너지기본계획 논의가 현재 진행 중에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탈핵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탈핵정책을 에너지기본계획에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통계출처 : 한국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일본) 전기사업연합회, 전력통계정보)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의 비의도적인 탈핵흐름을 보면서 진정으로 탈핵정책 수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탈핵정책을 반기지 않는 일본정부이지만 새로운 규제기준을 각 핵발전소가 맞추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핵발전 비중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비의도적인 탈핵흐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핵사고 이전 27.5%나 되던 핵발전 비중을 단 2년만에 1.7%로 줄였다. 일본이 이처럼 단기간에 핵발전 비중을 줄일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핵발전이 없어도 전력공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일부 반핵운동가들의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실제 적용해보자고 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사고와 높아진 규제기준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현재 핵발전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 일본을 만들었다.
일본이 이처럼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전력소비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었던 상황에 기인한다. 전력소비가 늘지 않은 상황에서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전국민적으로 벌어진 절전운동은 54기의 핵발전소 중 단 2기가 가동되는 상황에서도 전력공급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기본계획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틀과 방식으로 아무리 계산을 해도 우리나라는 ‘결코’ 탈핵정책을 채택할 수 없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전력수요, 아직 수명이 많이 남아있는 핵발전소들, 에너지소비 증가가 없으면 늘지 않는 경제성장 지표 등 기존의 틀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는 탈핵정책은 ‘몽상가들의 꿈’에 불과할 것이다.
올해 하반기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진정으로 탈핵한국을 만들고 싶다면,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말그대로 백지에서부터 다시 에너지정책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탈핵’이라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최대의 화두를 현실 정책으로 만들기 위한 보다 거대한 작업을 기대해 본다.
발행일 : 20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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