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방사능 비상계획구역 30km로 확대하라!
윤종호 편집위원
반핵·탈핵운동의 핵심 과제는 핵발전소를 폐쇄시키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핵발전소가 운영되는 일정기간 동안 안전하게 유지·관리될 수 있도록 감시하는 활동과 더불어 핵발전소 사고를 대비한 주민보호, 방사능 방재대책 등의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정부와 지자체 등에게 촉구하는 일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8~10km로 설정된 한국의 방사능 비상계획구역을, 체르노빌을 비롯해 후쿠시마 사고 영향을 고려하여 30km 이상으로 확대시키는 것은 핵발전소 사고를 대비한 주민보호, 방사능 방재대책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이다.
그린피스의 부산 광안대교 고공농성
지난 7월 9일 그린피스 송준권 등 4인의 활동가들은 부산 광안대교 제2주탑(105m) 연결 케이블 약 90m 지점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위험을 무릅쓴 이들의 고공농성은 부산지역을 비롯한 전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꼬박 이틀을 보내고 삼일 째 되는 날(52시간)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부산시 등 관련기관과 비상계획구역 확대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조건’으로 농성을 자진 해제했다.
이들의 핵심주장은 “현재 8~10km로 설정된 한국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30km로 확대하라”는 것이었다.
왜 30km인가?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일본을 비롯해 한국의 방사능 비상계획구역 8~10km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사고(레벨5, 국제원자력 사고·고장 등급 분류) 시 방출된 방사능 물질의 량을 근거로 설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1986년, 레벨7 등급)는 이미 26년이 지났지만, 반경 30km 이내 지역은 아직까지 출입이 제한돼 있다. 또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2011년, 레벨7 등급)도 반경 20km 이내 지역은 대피령이 떨어졌고(또한 지금도 출입금지 구역으로 남아 있다), 반경 20~30km 지역은 옥내 대피령에, 자율적 피난 권고지역이었다. 심지어 이이다테무라 등 일부 시·군은 최고 50km 지역까지도 대피령이 떨어졌다.
게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이 권고하는 핵발전소 비상구역 반경은 1000MW 이상의 원자로일 경우, 긴급보호조치계획구역으로 5~30km, 식품제한 계획구역으로 300km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핵발전소 23기 중 고리1~2호기, 월성 1~4호기 6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원자로는 약 1000MW 이상에 해당되고, 모든 핵발전소 지역들에 5~6기 이상의 원자로가 집중돼 있어 후쿠시마 사고처럼 원자로 연쇄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의 경험을 비롯한 일반적인 국제기준은 비상계획구역 최소 30km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최근 개편 논의 현황
방사선 비상계획구역(EPZ, Emergency Planning Zone, 이하 비상계획구역)이란, 방사선 비상시 주민보호를 위해 방사선 비상대책을 집중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설정한 구역으로, 현재 한국은 반경 8~10km 범위에서 원자력사업자(한국수력원자력)가 광역지자체와 협의한 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설정하게 돼있다.
[표1] 한국 원자력 시설별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 제2012-31호)
구분 |
범위 | |
발전용 원자로 및 관계 시설 |
반경 8~10km | |
연구용 원자로 및 관계 시설 |
개별적으로 결정 | |
사용후 핵연료 저장·처리 시설 |
시험 및 연구목적이 아닌 처리시설 |
반경 약 5km |
저장 시설 |
반경 약 1.5km | |
시험 및 연구 목적의 처리시설 |
부지 경계 | |
|
그 밖의 원자력 시설 |
부지 경계 |
201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의 비상계획구역을 개선할 것을 권고한 데 이어,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회와 시민단체, 핵발전소 주변지역 등에서 주민보호를 위해 방사능방재대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면서, 정부는 기존의 비상계획구역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이하 킨스)에 ‘비상계획구역 개편방안 연구(2012.5~2013.8)’ 용역을 내주었고, 킨스는 지난 7월 18일 ‘주민보호조치를 위한 비상계획구역 재정립 연구결과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킨스는 일부 지자체, 학계, 시민단체 등 각 1명씩을 패널로 참여시켜 의견수렴 절차를 밟았고, 보완과정을 거쳐 조만간 최종보고서가 발간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9월 킨스의 최종보고서 발간 후 법률 개정(초안)을 마련해 10월경 지자체 등 유관기관 의견을 수렴하고, 올 12월 비상계획구역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해 확정지을 계획이다.
정부와 관련 지자체의 입장은?
지난 8월 9일 김춘진 국회의원(고창·부안)과 김완주 전북도지사는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만나, ‘비상계획구역 개편 관련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춘진 의원과 김완주 도지사는 이은철 위원장에게 “고창·부안 등 전북지역은 영광핵발전소 사고 시 엄청난 방사능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현행 비상계획구역에 제대로 포함되지 않아 지역민들로부터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IAEA 국제기준과 일본 등 선진국 사례에 따라 비상계획구역을 30km로 확대하고, 방호약품 등을 구비할 수 있도록 추가 재원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이은철 위원장은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일 배포된 원자력안전위원회 공식 자료에는 7월말 현재 전북도를 제외한 나머지 핵발전소 관련 지자체들 입장은 ‘현행 유지(8~10km) 또는 축소’ 의견이다.
이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킨스의 7월 ‘발표회’ 등을 통해 확인한 것으로, 부산시(고리핵발전소)는 ‘30km 확대시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8~10km 현행 유지 입장)’하다는 입장이다. 또 전남도(영광핵발전소)는 ‘지역주민에게 심각한 불안감 조성. 지역주민이 원하지 않는 비상계획구역 확대 반대(기존 30km 확대 찬성에서 반대로 선회)’ 입장이고, 고창군(영광핵발전소)은 ‘지역 이미지 손상이 우려되므로 일률적 확대 지양’, 기장군(고리핵발전소)은 ‘현재 문제가 없다면 현행 유지(연구결과에 따라 축소 검토도 필요)’ 입장이다.
오랫동안 핵발전소의 문제점을 제기해 온 윤기돈 사무처장(녹색연합)과 이헌석 대표(에너지정의행동) 등은 “지난 7월 킨스 ‘발표회’ 내용과 이번 8월 원자력안전위원회 간담회 내용 등을 참고했을 때, 비상계획구역 개편방향이 예방구역(PAZ) 3~5km, 준비구역(UPZ) 8~10km, 감시구역(LPZ) 10~30km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개편방안은 기존 8~10km를 그대로 둔 채 구역만 세분화하여 IAEA 권고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만 취하고 있다. 일본이 기존 8~10km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사전대피구역(PAZ) 5km, 방사선 영향평가에 따른 대피구역(UPZ) 30km, 방사능구름 모니터링지역(PPA) 50km까지 확대 추진하는 참고했을 때, 제한적 성격의 감시구역(10~30km)을 설정하는 이번 개편 방향은 그간 비상계획구역을 30km로 확대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개선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지역이미지 손상’, ‘주민불안감 조성’, ‘아파트 값 하락(부산시)’ 등등의 이유로 광역·기초 지자체들이 비상계획구역 확대를 반대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린피스를 비롯해 국회와 시민단체, 핵발전소 주변 지역주민들이 주민보호 차원에서 주장해 온 ‘비상계획구역 30km 확대’ 요구가 ‘물거품’이 되고 말 위기상황이다.
윤기돈 사무처장, 이헌석 대표 등은 “현재의 국면을 지역주민 대책위 등과 공유하고, 향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방사능 비상계획구역 개편을 목전에 두고,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대책위 등이 과연 ‘비상계획구역 30km 확대’를 관철시켜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방사능방재구역 세계적인 현황
IAEA는 비상계획구역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①예방적 보호조치구역(Precautionary Action Zone, PAZ), 방사능 누출 양과 상관없이 예방적으로 미리 보호조치를 취하는 구역 ②긴급 보호조치계획구역(Urgent Protective Action Planning Zone, UPZ), 방사능 누출이 확인될 때 긴급보호조치 구역 ③식품제한 계획구역(Food Restriction Planning Zone, FRPZ 혹은 Long Term Protective Action Planning Zone, LPZ), 환경 감시 및 시료채취 결과에 따라 수시 평가되고 이를 토대로 대피, 음식 섭취 제한 등을 조정하는 구역
[표2] IAEA,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핵발전소 비상구역 반경 권고기준(〈방사능 방재계획 2013, 그린피스(2013.7)〉)
시설 |
예방적 보호조치구역 (PAZ) |
긴급 보호조치계획구역 (UPZ) |
식품제한 계획구역 (LPZ) |
원자로 > 1000MW |
3~5km |
5~30km |
300km |
원자로 100~1000MW |
0.5~3km |
5~30km |
50~300km |
※ 국내 23호기 원자로 중 고리1~2호기, 월성1~4호기는 600~730MW급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약 1000MW 이상급에 해당
[표3] 주요 핵발전소 운영 국가, 비상계획구역 비교(〈방사능 방재계획 2013, 그린피스(2013.7)〉 등 참조)
국가 |
한국(개편안, 미확정) |
일본(계획 중) |
프랑스 |
미국 |
PAZ |
3~5km |
5km |
5km |
16km(방사능구름 피폭 대비대응지역) |
UPZ |
8~10km |
30km |
20km |
80km(식품섭취 피폭대비대응지역) |
LPZ 혹은 FRPZ |
~30km |
50km(방사능구름 모니터링 지역, PPA) |
전국 식품섭취 환경감시지역 |
후쿠시마 사고와 대피령
[표4] 후쿠시마 사고 일지(〈방사능 방재계획 2013, 그린피스(2013.7)〉 요약)
3월 11일 |
14:46 |
규모9 동일본 대지진 발생 |
16:46 |
방사능 비상사태 발표 | |
20:45 |
2km 내 거주자 대피령 | |
21:23 |
3~10km 내 거주자 옥내 대피 | |
3월 12일 |
05:44 |
10km 내 거주자 대피령(총리 지시) |
15:36 |
후쿠시마 1호기 폭발 | |
18:25 |
20km 내 거주자 대피령(총리 지시) | |
3월 14일 |
11:01 |
후쿠시마 3호기 폭발 |
3월 15일 |
06:14 |
후쿠시마 2호기 폭발 |
11:00 |
20~30km 내 거주민 옥내 대피(총리 권고) | |
※ 미국 대사관 자국민 80km 밖으로 대피 발표 | ||
3월 25일 |
일본 정부 20~30km 거주민 자율 대피 권고 | |
4월 21일 |
20km 경계구역(출입금지) 설정 | |
4월 22일 |
최대 50km 떨어진 이이다테무라, 미나미소마 등 5개 시·군 대피령(1호기 폭발 후 41일) |
[표5] 각 핵발전소별 비상계획구역 관할 지자체
구분 |
현재 |
30km 확대 시 |
고리핵발전소 |
-부산(기장군) -울산(울주군 |
-부산(기장군, 부산진구, 남구, 동구, 금정구, 동래구, 사상구, 연제구, 수영구) -울산(울주군, 중구, 남구, 북구, 동구) -경남(양산시, 김해시) |
월성핵발전소 |
-경북(경주시) |
-경북(경주시, 포항시)- -울산(울주군, 동구, 중구, 북구) |
영광(한빛)핵발전소 |
-전남(영광군) -전북(고창군) |
-전남(영광군, 무안군, 함평군, 장성군) -전북(고창군, 부안군) |
울진(한울)핵발전소 |
-경북(울진군) -강원(삼척시) |
-경북(울진군, 봉화군, 영양군) -강원(삼척시, 태백시) |
합 계 |
-6개 광역, 7개 기초 |
-7개 광역, 29개 기초(중첩지자체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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