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황을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밀집한 핵시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시대에 건설된 15개의 원자로를 보유하고 있다. 12개는 2020년까지 폐쇄될 예정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든 원자로를 만료일로부터 최소 10년 동안 계속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6개의 원자로는 안전에 필요한 보완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연장되었고, 그래서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좀비 원자로’라 불리기도 했다.
국제 반핵단체 ‘비욘드 누클리어(Beyond Nuclear)’는 전쟁 발발 닷새 후인 2월 25일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와 관련한 우려를 밝혔다. 성명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원자로가 가동되고 있는 지역에서 사상 처음으로 전쟁이 일어난 유례없는 상황이며, 이는 전통적인 기반 시설 폭격과 파괴의 경우에서 본 것과 달리 인간의 삶에 극도의 위험을 드리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엄청난 규모의 인간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15개의 원자로 중 하나라도 손상이나 파괴로 주요한 방사능 누출이 발생한다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 수많은 인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핵발전소 부지 주변과 출입통제 구역 내에서의 군사 활동 역시 큰 우려 사항이다. 일반인이 거주할 수 없는 고도로 방사능 오염된 지역을 이동하는 군대, 탱크 및 중장비 때문에 방사능 수치가 증가한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2020년 4월에 큰 산불이 이 지역을 휩쓸었을 때 방사능 수치는 16배나 증가했었다.
발전소 부지의 점령과 군사적 충돌로 상당한 양의 방사성 폐기물이 있는 현장의 모든 활동도 중단되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에 대한 공격이나 우발적인 충격은 더욱 위험하다. 폭발한 4호기의 무너진 석관을 감싸고 있는 새로운 보호 돔은 손상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다. 이 돔 안에는 우라늄, 플루토늄 및 기타 방사성 폐기물을 포함하는 슬러지 및 모래가 섞인 액체가 들어있다. 지난 5월에도 작업자들은 파괴된 4호기 지하에 있는 폐기물에서 중성자가 비정상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감지하여 연쇄 반응이나 심지어 폭발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체르노빌에 있는 ISF2(사용후핵연료 임시 보관 시설, 건식 캐스크)도 심각한 문제다. 이 시설의 설계, 건설, 관리 및 운영은 처음부터 결함이 있었고, 홀텍 인터내셔널로 관리가 넘어간 후에도 심각한 문제가 계속되었다. 의도적 공격이든 의도하지 않은 사고이든 ISF2에서 핵연료 화재가 일어나면 넓은 지역에 고방사성 폐기물이 치명적으로 누출될 수 있다.
또한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포리치아 핵발전소(6기)를 포함하여 4개 지역의 핵발전소 모두가, 공격을 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멜트다운에 취약하다. 후쿠시마에서처럼 현장 전력 손실이 일어날 경우 냉각이 중단되고 원자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 수조에 보관되거나 차폐되지 않은 채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역시 방사능 누출 가능성이 상존한다.
“핵시설을 운영하는 나라에서 전면전을 본 적이 없다” - 마이클 슈나이더
“핵발전소 손상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지만 때로는 상황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 에드윈 라이먼, 우려하는 과학자 연합
또한 전쟁은 핵발전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가족에게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여 일부 사람들이 대피하도록 유혹할 수 있다. 그러나 핵발전소는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운영 중에도 안전하지 않으며, 버려져서는 안 되는 시설이다. 이는 노동자와 가족에게 끔찍하고 희생적인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다.
비욘드 누클리어는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우리의 집단적 실존적 위협인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시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핵발전이 위험하고 의지할 수 없으며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2년 3월(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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