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_ 윤현정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
재난은 약한 쪽부터 무너뜨린다
“태풍은 온 동네의 창문을 다 깨버렸고, 자동차를 파손시켰고, 신호등과 간판을 부쉈고, 다음 날까지도 정전을 일으켰고, 심지어는 원전의 가동을 멈추게 했습니다. 저는 그날 태풍 하나로 우리의 시스템이 멈추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윤현정 활동가(18세)가 8월 23일 ‘탈핵 비상선언’에서 ‘청소년 기후행동’을 대표해 발언했다. 그는 작년 여름 태풍으로 울산의 신고리 핵발전소 3·4호기와 고리핵발전소 1·2·3·4호기의 소외전원이 상실돼 가동이 정지되었을 때 잠들기 어려웠다고 한다.
울산에서 생활하던 그는 2016년 경주지진과 울산지진도 경험했으나, 2020년 여름에 닥쳐온 태풍만큼 고민을 던져준 것은 아니었다. 윤현정 활동가는 지금도 “너무나 힘들었던” 작년 여름의 기억이 선명하다.
“되게 힘들었던 기억. 언제 가장 힘들었느냐고 하면 작년 여름이었어요. 많은 감정이 들었어요. 기후위기에 대한 공포.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두려웠어요.” 윤현정은 여름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울산에 살다가 지금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윤현정 활동가(이하 윤현정)와 온라인 줌을 연결해 화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피켓시위 나서다
윤현정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쓰레기 분리배출이나 계단 이용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을 하며 살았다. 기후위기에 관해서는 학교에서 배운 지구온난화 정도의 인식이 있었을 뿐이다. 그는 공장식 축산업에 관심 가지면서 ‘비건’(완전한 채식)이 되었고, 축산업 관련 자료를 찾다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접했다.
기후위기가 뭐지? 윤현정이 기후위기 문제를 파고들면서 든 생각은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며, 개인의 실천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기후위기는 100년 뒤의 일이 아닌 지금 닥친 심각한 일, 환경보다는 인권의 문제, 우리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때가 2019년 여름, 윤현정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윤현정은 옆 반 친구 ‘해영’을 만났다. 그 친구도 비건이었는데 두 사람은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었고,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피케팅을 하기로 했다. 그들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19년 9월쯤에 처음으로 ‘기후위기 속에서 어느 누구의 삶도 무너지지 않도록’ 등의 글귀를 써서 기후위기 피켓시위에 나섰다. ‘학생’이 피켓시위를 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 반응은 우호적이었다. 친구들은 기후위기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인권, 우리 삶을 아우르는 문제라고 했을 때 많이 공감했다.
학교를 그만두다
윤현정과 그의 친구는 주중에는 등교 시간에 학교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주말에는 울산대공원 정문 앞에서 피켓시위를 했다. 윤현정은 피켓 들고 나가면 변화될 줄 알았다. 그러나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으로부터는 ‘시위는 과격하니까 학교 안에서 해라. 동아리 활동이나 분리수거, 플라스틱 줄이기 등을 하라’라는 말을 들었다.
두 사람은 피켓시위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전략적으로, 더 많은 사람과 같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해서 2019년 11월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우리를 위한, 기후를 위한 책상 행동’에도 참석했다. 겨울방학 때는 울산시청 앞에 피켓시위를 했다.
울산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할 때 시의원이나 교육감 이런 사람의 반응이 ‘기특하다’, ‘대견하다’였다고 한다. 윤현정은 그 말이 처음에는 칭찬이고 좋은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찜찜했다. 그 사람들한테 요구하고 있는 건데,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것인 줄 모르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에서 노조가 파업하면 기특하다고 하나?’, 윤현정은 시의원이나 교육감 등이 ‘우리를 위협적이거나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윤현정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갔더니 입시만을 위해 달려가는 느낌이 강했다. 선생님들은 3년만 참고 열심히 달리면 3년 뒤에 하고픈 거 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3년은 참아야 하는 시간. 3년은 아무렇게나 흘러가도 된다는 이미지. 이런 학교를 계속 다닌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윤현정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학교라는 공간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서라고 한다. 그는 기후 운동을 하기 전에는 청소년 인권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말 잘 듣던 학생이었으니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런데 기후운동을 하면서 보니 사회가 정해놓은 청소년 이미지는 학교 다니고, 말 잘 듣고, 수업 잘 듣고 하는 소극적인 것이었다. 학교는 청소년이 정치적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윤현정은 결국 1학년 다니다가 10월에 자퇴했다. 윤현정은 “(학교 그만두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학교를 그만두어도 별로 걱정 안 했다. 부모님은 부모는 부모의 인생이, 너는 너의 인생이 있다며 내 선택을 존중해줬다”라고 했다.
서울로 가서 ‘청소년 기후행동’ 활동가로
윤현정은 올해 1월에 부모님과 살던 울산을 떠나 혼자서 서울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 학교 그만두고 서울에 캠페인으로 바쁜 일이 있어서 일주일 동안 서울에 갔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전국 40여 개 지역에 활동가가 있으며, 회원은 200명 정도인데 전국에 흩어져 있어 주로 온라인 소통을 하며, 사무실은 서울에 있다고 한다. 윤현정은 서울에 가면 동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좋았다. 그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싶었다. 국가의 주요 정책결정권자가 있는 곳이 서울이라고 생각하여 더 적극적인 기후운동을 서울에서 하고 싶었다.
윤현정이 서울로 가고 나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활동에 쏟는 시간이다. 예전에 울산에서는 하루 한두 시간 정도를 기후위기 운동에 썼다면, 서울에서는 살아가는 시간 대부분을 기후운동에 쏟는다고 한다. 이제는 기후운동이 윤현정의 삶이 되었다. 윤현정은 청소년 기후행동에서 기획과 언론대응 등을 하는 상근활동가다.
윤현정은 서울로 가기 전인 2020년 봄, 코로나19가 세상에 투영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고 한다. 재난으로부터 소상공인 등 약한 쪽부터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그해 여름 태풍을 겪으면서는 사회 시스템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제가 살던 울산은 고리, 신고리, 월성, 신월성 총 12호기의 원전으로 둘러싸인 원전도시입니다. (사고가 나면) 저는 제가 자라온 곳을 떠나야 하고, 우리 가족의 생계는 끊기고, 저는 제 안전과 생존조차 스스로 지킬 수 없습니다. (중략) 혹시나 원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두려움에 밤에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수시로 원전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윤현정이 8월 23일 탈핵 비상선언에서 발언한 내용 일부다. 그의 목소리는 체험에서 일어난 몸의 목소리가 전달돼 절박하게 들렸다. 윤현정은 정치인들을 향해서 하고픈 말이 많다. 정치 공론장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하겠다면서 석탄발전소 대신 핵발전을 늘리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사람들(정치인)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내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죠. 나도 시민인데 내 목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정치인이 툭하면 변화를 외치며 ‘안전한 대한민국, 든든한 나라’를 외치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음에 분노스럽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들 만나서 정책제안서를 전달하고 면담하는 자리가 있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이야기 나누었을 때 ‘좋은 의견입니다’, ‘나중에 답장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라는 반응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서 무력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교육청 시위를 통해 ‘탈석탄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응답하라 교육청>이라는 행동을 통해서 전국 17개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고 석탄 투자를 하는 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하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11개 교육청이 탈석탄 선언에 동의했고, 실제 서울시교육청과 울산시교육청 등은 조례를 바꾸었다. 교육청이 선언하니까 금융권인 KB금융그룹, 기업은행, 농협 등도 탈석탄 선언에 동참했다고 한다. 그럴 때는 마음이 뿌듯하다.
윤현정은 정치권을 향해 요구하고 있다. 2030년 탈석탄, 2017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70% 이상 감축. 조속한 탈핵. 지금까지 정부 정책결정권자는 전문가나 사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었는데, 왜 농민, 석탄발전노동자, 장애인, 여성, 청년 등 기후위기 당사자가 정책 결정에 관여 못 하는가. 윤현정은 당사자가 만드는 정책수립이 시급하며, 엘리트들이 만드는 정책의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윤현정 활동가가 현장성을 잃지 않는 활동가로, 활동함으로 인해서 두렵지 않고 충만하길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용석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9월(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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