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투쟁과 끝나지 않은 국가폭력(3)
처음 경험하는 싸움, 그 길 위에서
한 여름밤,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애당2리 산골짜기에서 별을 보았다. 잘 싸워서 이겼다고 웃으면서 저 별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어느 곳에서의 별빛이 이처럼 애절한 마음을 갖게 할까. 밀양 부북면 위양마을과 평밭마을에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움막을 파고 쇠사슬까지 감은 채 송전탑 건설을 막으려고 했다. 부북면 움막 앞에는 소나무가 있었고 빛 하나 없는 산속이었다. 주민과 연대자들은 그곳에서 쏟아져 내릴듯한 별을 바라보며 소나무와 별빛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행정대집행과 공권력에 의해 주민들은 사지가 들려 공사장 바깥으로 내쳐졌고, 송전탑은 들어섰다.
7월 31일부터 이틀 동안 송동헌 ‘백두대간 송전선로 반대 봉화군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봉화군 송전탑 건설예정지 몇 곳을 가보았고, 그간의 경과를 들었다. 송 위원장 가족과 함께 백두대간 능선이 있는 구룡산 곰넘이재까지도 올라갔다. 그곳은 원시림이 살아있는 곳이다. 한국전력은 그 원시림 산허리에 송전탑을 건설하려고 한다.
울진-가평 간 송전탑 건설 이야기가 박근혜 정권 때 나왔었고, 이후 문재인 정권 들어서고 송전탑 건설 이야기는 백지화된 것처럼 2년 정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신울진핵발전소 3~4호기 건설이 중단되었으니 송전탑 건설도 백지화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19년에 다시 송전탑 건설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봉화에서 군의회 권영준 의원이 ‘봉화 백두대간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이하 전 대책위) 위원장을 맡았고, 봉화군에 단 1기의 송전탑도 허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송동헌 위원장은 전 대책위를 믿고 있었다. 다른 지역도 봉화군을 부러워했다. 2019년 6월에는 전 대책위가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앞에서 ‘백두대간 고압송전탑 봉화구간 건설 반대 봉화군민 결사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권영준 위원장이 각화사 주지스님의 집도로 삭발식을 거행했다. 결의대회에는 군의회, 이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 주민 등 1천여 명이 참여했다. 권 전 위원장은 대회에서 결의문을 통해 “한전의 송전선로 계획 철회까지 반대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권영준 전 대책위 위원장(현 봉화군의회 의장)은 송전탑 피해 마을 이장들을 각 면사무소에 불러놓고 한전과 합의한 내용을 통보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대책위를 해산하였다.
송동헌 위원장은 “그는(권영준 의장) 지역 정치 10년 하면서 지역사회에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것이 송전탑 막는 일이라고 내게 말한 적도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한전과 합의 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게 최선이다”라면서 자신이 한전과 합의한 것을 정당화했다.
비대위 만들고 탈모 현상까지
‘백두대간 송전선로 반대 봉화군비상대책위원회’(이하 봉화비대위), 이 봉화비대위를 만든 사람은 춘양면 애당2리에 사는 송동헌 이장을 비롯해 피해지역 주민과 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이다. 송동헌 이장은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그의 집은 태백산줄기 ‘참새봉’ 아래 있다. 500kV 송전탑이 송 위원장 집 반대쪽 참새봉 허리에 꽂힐 예정이다. 그러나 여러 마을이 한국전력과 합의하거나, 주민들 의견이 분분하여 마음이 힘겹다. 봉화군에는 3개면 8개 리에 걸쳐 송전탑 80여 기가 들어설 예정인데 2개 마을만 한전과 합의하지 않은 상태다.
봉화비대위는 송전탑 건설 반대 현수막을 피해지역 주민들과 600여 장 게시했다. 그러나 그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자기 집이 송전탑 경과지와 가까우니까 반대한다”라거나 “돈(합의금) 더 받아내려고 한다”는 말도 들었다. 마음을 보여줄 수도 없고, 처음 이런 싸움에 나선 송 위원장은 탈모 현상까지 겪으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으나, 적극적으로 심리상담까지 받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송 위원장은 송전탑 건설 예정지역과 인접해 있는 이장을 만나서 공동의 문제가 아니냐. 반대해야지 하지 않느냐라며 설득했다. 많은 사람이 국책사업이고, 반대해도 성사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고선2리와 애당2리는 합의하지 않고 아직 버티고 있다. 봉화에서 유명한 고선계곡도 송전탑 경과예정지다. 고선계곡에서 만난 최동식 씨(66세)는 정년퇴직하고 귀촌하였다. 그는 경치가 좋아 귀촌했건만 송전탑이 들어선다니 비통한 마음이라고 심경을 말했다. 그가 사는 고선2리 주민들 역시 송전탑 건설 찬반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 매장시키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
“한전이 마을마다 인센티브 이야기하면서 돈으로 주민들 매수를 시작했다. 작년 연말부터다. 빨리 합의하면 많게는 5천만 원, 적게는 3천만 원을 5년 동안 준다고 한다. 송전선로 공사를 5년 정도 한다고 하더라. 헬기와 화물차 등이 다닐 거란다. 마을 사람 중 빨리 합의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한전이 입김 센 사람 계속 만나고 다닌다.”
송 위원장이 하는 말이다. 심지어 송 위원장이 마을 이장인데 이장이 계속 반대하면 이장을 배제하고 마을 대표 5인을 구성해 한전과 합의하자는 움직임도 감지된다고 한다. 한전이 밀양에서 썼던 수법 그대로다.
송 위원장은 마을이 나서서 송전선로 건설을 찬성한다면 욕먹을 일이라며, 돈 몇 푼 받고 백두대간 산등성이마다 송전탑을 꽂을 수는 없다고 했다. 봉화군가에도 ‘태백산 정기’라는 말이 등장하고 학교 교가 등 곳곳에 태백산 정기라는 말이 나온다. 한전은 국책사업이라는 말로 그 산줄기마다 파헤쳐 기와 혈을 다 끊어내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송 위원장이 사는 애당2리에는 주민이 소유한 땅이 송전탑 경과지인 직접 피해자가 20여 명, 간접피해자는 약 30가구라고 한다.
송 위원장은 한 번도 이런 싸움을 해본 경험이 없다. 그는 지난 6월 밀양 송전탑 건설 행정대집행 7년 행사인 ‘끝나지 않은 폭력과 파괴된 마을’ 포럼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밀양 주민들이 겪었던 국가폭력과 마을 파괴가 현재 봉화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소름이 돋았다. 그는 8월 9일에는 봉화군농민회와 함께 소성리 사드 반대 집회현장에도 갔다. 그분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어떻게 싸우는지 보고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소성리 가는 길에 붙은 현수막을 주의 깊게 보았다. 전국에서 엄청 많은 단체와 사람이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 많은 사람이 뭉쳐도 끝나지 않은 싸움을 보면서 또 한 번 머리가 쭈뼛 서고 ‘소름’이 돋았다. 한편으로 전국이 연대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소성리 주민이 5년 동안 고생한 거 생각하니 마음도 아프고, 봉화군 송전탑 반대 싸움의 현실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단다. 국가폭력이 한 마을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한여름 폭우가 지나가고, 송 위원장은 봉화군 곳곳에 걸린 현수막을 다시 묶었다. 늘어진 현수막은 줄을 팽팽하게 묶고, 찢어지거나 삭아 줄이 끊어지는 현수막은 회수했다. 먼 훗날 마을 사람들과 후손들에게 욕먹을 일 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그러나 송 위원장은 절망하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하였다.
용석록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8월(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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