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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빌 핵발전소 저지 투쟁의 값진 기록

영화로 만나는 탈핵

빌 핵발전소 저지 투쟁의 값진 기록



1973719. 프랑스에 가까운 독일 흑림지대의 작은 마을 카이저스툴의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빌(Wyhl)에 건립될 것이라는 라디오 뉴스에 놀랐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정부는 핵발전이 라인강을 따라 수천 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산업단지와 함께 청정에너지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핵발전소는 포도를 재배하는 농민들의 우려를 불러왔고 짧은 시간 안에 저항운동이 시작되었다. 길고 격한 토론들이 벌어졌고, 핵발전에 반대하는 이들은 1975218일 핵발전소 예정부지 점거에 들어갔다. 이틀 만에 경찰이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지만, 강압적으로 끌려가는 농부와 여성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영되면서 순식간에 빌 핵발전소는 독일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223일이 되자 28천 명의 사람들이 다시 부지로 모여들어 점거가 확대되었다.


<Wyhl? - Nai Hämmer Gsait!>(No, we said!), 고고 겐쉬(Goggo Gensch), 다큐멘터리(독일, 2013, 44)



반대 여론이 격화될 것을 염려한 독일 정부는 더 이상의 진압을 포기했고, 점거자들의 비폭력 저항은 마을 음악회, 토론회와 함께 9개월간 이어졌다. 결국, 1975321일 행정 법원은 발전소 건설 면허를 철회했고, 이 지역은 자연보호 구역이 되었다. 독일에서 시민들이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낸 첫 사례였고, 핵발전소 건설이 붐을 이루던 70년대에 고어레벤 핵폐기물 운송 저지 투쟁과 더불어 독일 에너지전환 정책의 큰 물줄기가 만들어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빌 핵발전소 반대 운동의 동력은 1980년 녹색당 창당으로 이어졌고, 인근의 도시 프라이부르크가 유럽에서도 이름난 생태 도시로 발전하는 한 배경이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민들의 각성과 토론을 통한 성장, 연대의 체험, 투쟁의 사회적 확산을 당시의 생생한 화면을 통해 꾸밈없이 담아내고 있다. 카이저스툴의 주민들은 다행히 고립되지 않았고, 더 넓은 사회적 인식 변화와 정책 변화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독일의 정당들은 눈치가 있었고 책임을 고민할 줄 알았다. 핵에너지를 둘러싼 40여 년의 투쟁과 토론이 탈핵 정책을 단단하게 만들고 독일의 정치마저 바꿔 놓았던 것이다.



19752월 빌 핵발전소 부지 점거투쟁 기념비



영화 제목의 “Nai Hämmer Gsait”는 바덴 지역 방언으로 우리는 안 된다고 말했다(No, we said)”는 뜻으로 빌 핵발전소에 맞선 사람들의 슬로건이었다. 이 영화는 인터넷에서 독일어로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https://vimeo.com/396678210)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10월(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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