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만나는 탈핵
서쪽에서 해가 뜬 날(Day of the Western Sunrise)
△ <서쪽에서 해가 뜬 날>, 감독: 케이스 레이밍크
(75분, 2018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일본어/영어자막)
1954년, 미국은 태평양에서 여섯 번의 수소폭탄 폭발 실험을 진행했다. 참치잡이를 위해 작은 목선 제5후쿠류마루(第五福龍丸)에 몸을 실은 23명의 일본인 선원들이 만난 것이 하필이면 그 첫 실험이었다. 3월 1일, 비키니 환초 근처에서 이른 아침 낚시채비를 드리우고 있던 그들은 먼 서편 바다에서 갑자기 섬광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이 해가 반대쪽에서 뜨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아오르고 이어서 굉음이 밀려왔다. 일본이 핵폭탄과 함께 패전한 경험이 생생한 젊은 선원들은 그게 핵폭탄 같은 것이라고 직감했지만 주변 어디에도 미국 군함이나 장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얼마 후 그들의 머리와 갑판 위로 하얀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핵 폭발로 인해 산호초가 가루가 되어 방사능 낙진과 함께 떨어지는 것임을 몰랐던 그들은 그 ‘죽음의 재’를 그대로 맞았고 방사능으로 오염된 음식과 물을 쓰며 2주의 항해 끝에 일본으로 돌아왔고, 그제야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몸에 이상을 느낀 선원들을 일본 정부는 도쿄의 병원에 격리했고, 평화 시기에 처음 발생한 피폭 희생자들이 된 그들은 방사능 질환 치료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바다 사내들답게 유쾌하게 병원생활을 시작했지만, 텔레비전 뉴스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면서 걱정이 깊어지게 된다. 뉴스는 그들이 모두 원자병에 걸렸고 치료 방법이 없으며, 방사능에 오염된 참치가 시장에 유통된 것이 발견되어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국 체내 피폭의 후유증으로 고참 선원 한 명이 사망했고, 남은 선원들은 말을 잃는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 22명은 1년 2개월이 넘는 병원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들에게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방사능이 전염된다는 오해 속에 가까웠던 이들도 그들과의 접촉을 꺼렸고 젊은 여성들은 선원과의 결혼을 거절했다. 이웃의 냉대 속에 술에 빠져들기도 했고 피폭 영향과 우울증으로 많은 이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에서 생존한 선원들은 그 당시의 아픔을 담담히 증언하며, 틈틈이 반핵운동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보태고 있다. 그들의 말을 통해 피폭자에 대한 시선, 핵에너지의 본성, 미일 관계의 이면 같은 많은 이야기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그림과 생존 선원들의 증언을 교차해 구성한 이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가 담고 있는 묵직한 스토리다. 일본의 전통인 ‘가미시바이(종이연극)’ 스타일은 선원들의 메시지와 교훈을 장면마다 꾹꾹 눌러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는 2018년부터 8개국 20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또한, 피츠버그대학 아시아연구센터 등 여러 교육 기관과 행사를 통해 인권과 평화 교육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제작사 달리보카필름 웹사이트에서 영화 소개를 볼 수 있으며, vimeo.com에서 유료 시청이 가능하다. http://daliborkafilms.com/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0년 9월(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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