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종단, 탈핵 순례기 -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핵발전소를 찾아갔습니다.
양기석 (신부, 천주교 창조보전연대)
부산 기장에서 삼척까지, 탈핵도보순례
천주교, 불교, 개신교, 천도교, 원불교 5개 종단 7개 단체의 연대체인 ‘종교환경회의’(상임대표 양재성 목사)의 관계자와 종교인들 50여명은 지난 8월 20일부터 23일까지 동해안에 위치한 핵발전소 지역을 차량 이동을 병행한 도보 순례를 하였습니다. 부산 기장의 고리 핵발전소, 경주의 월성 핵발전소와 핵폐기물 처리장 공사 현장, 울진 핵발전소, 영덕·삼척의 신규 핵발전소 예정 후보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우리 종교인들이 핵발전소를 찾은 것은 다름 아니라 생명과 평화라는 절대가치를 위협하는 핵발전소가 하루 빨리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타의 종교가 그러하듯이 그리스도교를 열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 자체로 길 위의 삶이요, 순례의 삶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내신 30여년을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길 위에서 지내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해가 필요한 분들을 위해 잠시 복음(福音)에 대한 정의를 해석해 드린다면, 말 그대로 ‘복된 소리’, ‘들으면 삶이 행복해지는 말씀’이 복음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일생을 길 위에서 지내셨습니다. 그분은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났고, 질병과 마귀로부터 오는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율법이라는 사회규범을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오히려 억압하는 악에 물든 삶을 사는 이들을 일깨워 바른 길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해서 길을 나서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 생명과 평화가 열매를 맺는 세상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바로 복음을 전하는 행위이셨고,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명에 따라 세상 끝날 까지 이런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감히 예수님을 따르는 이라 칭하는 저는 그래서 길을 나섰습니다. 함께 하셨던 이웃 종교의 도반들 또한 자신들이 안고 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러하셨을 거라 여겨집니다.
복음을 전한다 함은 결코 유쾌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신명나는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복음인 것처럼, 죄와 억압의 굴레가 끌어들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것 또한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행복한 새로운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경고하고 깨우치게 해 주는 것 또한 복음인 것입니다.
핵발전소 인근, 힘없는 이웃들의 아픔
그래서 우리는 핵발전소가 자리 잡은 지역을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왜곡되고, 사람들을 고통스러운 삶으로 내모는 부패하고 악한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하기 때문에 거부하기 힘들고, 나이 들고 병들어 희망이 없기에 내칠 수 없고, 많이 배우지 못했다고 이용당하고, 강요당하는 이 나라, 이 땅의 주변부에 사는 이들의 현실이었습니다. 마치 2천 년 전 성경에 등장하는 가난하고, 병들고, 이방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취급 받았던 이들처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궁벽한 시골 어촌에 산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고 제대로 따질 줄 모른다는 이유로 그 위험한 핵발전소를 끌어안아야하는 힘없는 이웃들의 아픔이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율법 조항은 바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간이 ‘율법’을 위해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그 굴레가 버거워 힘겨워하던 옛사람들처럼, 전기를 만들어내는 핵발전소가, 그리고 이것을 운영하는 주체인 정부와 한수원이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피부로 못 느끼고, 오히려 핵발전소와 송전탑, 정부와 한수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되는 삶의 굴레를 거부 못하는 이웃들이 바로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이 버거운 굴레를 벗어버리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를 죽음에로 내모는 어둠에서 벗어나, 우리를 생명에로 이끄는 빛을 선택하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어둠의 현장인 핵발전소를 찾으며 이 어둠을 용인한 우리의 삶 또한 회개하였습니다. 30년 동안 전구를 밝히고자, 수 만년이 될지도 모를 어두운 미래를 후손에게 떠넘기려한 우리의 욕심을 참회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비우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그 길에서 많은 이웃을 만났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핵발전소로 인한 고통을 남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아파하며 치유하기 위해 애쓰는 여러 활동가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구도자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양보할 수 없는 생명과 평화의 가치
물질이 지배하는 삶을 거부하는 우리 종교인들은 각자가 모시는 위대하신 ‘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연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삶 속에서 위험을 물리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청하는 기도를 올리며 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은 창조주가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햇볕과 바람과 함께 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길 위에서 만난 희망은 우리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독을 뿜어내는 핵발전소가 아니라 우리의 길을 비춰준 뜨거운 햇볕이었고, 흐르는 땀을 식혀준 시원한 바람이었습니다. 기도하며 걷던 순례 중에 계속 함께 해 준 해와 바람이 바로 우리 미래를 안전하게 지켜줄 친구였던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직접 실천하며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생명과 평화의 가치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속가능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입니다. 핵산업계와 토건자본의 이익을 무엇보다도 우선시하는 현정부와 한수원 등이 마치 달콤한 꿀과도 같이 제공하겠노라며 현지민들을 현혹하는 수천억에 이르는 자본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 마련해 주신 천혜의 자연환경과 끈끈한 공동체가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이 시대와 이 세계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어두운 세력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핵발전소라는 것을 알리는 것도 복음입니다. 죽음을 가져다주는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이 제공하는 햇볕과 바람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또한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또한 복음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핵발전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리는 것에 매진할 것입니다. 함께 해 주셨던 이웃종교의 도반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발행일 : 20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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