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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2호>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 미래의 전략사업인가 핵재앙인가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미래의 전략사업인가 핵재앙인가?

노진철(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경북도가 동해안에 원자력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본격 추진하고 나섰다. 대구‧경북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등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핵시설을 한곳에 모으는 세계 최대 핵단지화라며 반발하고 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2007년부터 건의해온 원자력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사실상 국책과제로 선정돼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그 배경은 이명박 대통령이 스마트 시범원자로 조기 선정과 국제원자력기능인력교육원 설립을 약속하면서, 원자력클러스터를 30년을 내다본 미래의 전략사업이라면서 주민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중시하는 공무원 방식을 버리고 목표를 서둘러 달성하라고 지시한 데 있다. 원자력클러스터 사업은 2028년까지 경주, 영덕, 포항, 울진 등 경북 동해안에 13조4500여억 원을 들여 소듐냉각고속로 연구시설인 제2원자력연구원, 원자력 수소 실증단지, 스마트원자로 시범단지 등을 유치·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년 3월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이후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원전 강대국은 자국의 여론을 의식해서 원전 정책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선진 각국은 탈핵정책을 도입했다가 25년 동안 이러타할 사고가 없자 고유가, CO₂감축압력 등의 환경 변화에 대응해 원전을 재도입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던 차였다. 세계 각국은 ‘핵안전 신화’의 주역인 일본에서 핵사고가 터졌다는 것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원전 폭발사고는 “더 이상 안전한 원전은 없다”는 것을 뜻했다. 따라서 이들 국가는 다시 탈핵정책으로 선회하거나 신규 원전건설을 포기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핵폭발을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원전의 단계적 폐쇄와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선택하고 있다. 그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원전 강대국들이 주춤해진 틈을 타서 원전수출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바로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핵재앙을 보면서도 이명박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 12월말 삼척과 영덕을 신규 원전 후보지로 선정해 발표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탈핵 여론이 강화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동해안 원자력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경북에는 이미 10기(울진 6기, 월성 4기)가 들어서 있고 주민들이 앞으로 10기(울진 4기, 월성 2기, 영덕 4기)의 건설을 동의한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영덕에 신규 원전 4기를 더 들이는 데 어려움은 없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경북도의 자신감이 원자력 관련 주요 시설들을 유치해 지역을 원전산업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 조성사업’을 건의하기에 이른다.

눈 앞의 이익에 약한 지역민들

고리1호기 폐쇄 논의가 무색할 정도로 신규 원전 건설을 향한 정부의 움직임은 확고하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발표한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원전을 미래 핵심 에너지원으로 규정하고, 현재 전력공급의 34%를 차지하는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끌어올리고 가동 중인 21기 이외에 19기를 추가로 더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고리1호기가 폐쇄된다 하더라도 신규 원전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원전 밀집으로 인한 핵재앙 위험은 더 커지는 셈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1960년대부터 고도 산업화에 따른 대량 에너지 충당을 위하여 원전 건설에 나섰다. 그렇지만 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이 각인된 것은 70년대 산유국들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무기화 정책을 선언하면서 1973년 이후 국제 원유공시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는 등 두 번의 오일 쇼크였다. 선진 각국은 장기 경기침체를 통해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만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하며, 원전이 고도 산업화에 따른 대량의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는 데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에 따라 70년대까지 245기의 원전이 건설되었고 100여기의 원전이 계획 또는 건설 중에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쓰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뒤이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원전이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는 재앙의 불씨라는 공포를 심어 주었다. 하지만 당시 동해안에서는 주민들이 원전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기 위하여 경쟁을 벌렸다. 권위주의 정부와 보수화된 언론이 원전을 경제발전과 선진화된 과학기술의 상징으로 표상화하면서 그 위험이 여론화되지 못하고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탓으로 주민들은 원전 사고를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충격적인 것은 경북지역 주민들이 바로 이웃나라에서 벌어진 원전 대재앙을 경험하면서도 ‘적당한 조건이라면’ 지역에 원전 유치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적당한 조건이라면’ 원전이 아무리 큰 재앙 잠재력을 갖고 있는 위험 덩어리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지역 주민들은 결코 외부의 강압 때문에 원전 유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후손의 미래나 남들의 평안보다 자신의 평안을 앞세우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다만 도덕적 망설임, 양심의 가책, 인간적 연민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현재의 이익 앞에서 눈 녹듯 사라져버린 것뿐이다.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는 지구적 재앙의 가능성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경북지역 주민들이 핵단지화에 동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핵재앙을 피할 길은 탈핵뿐!

정부는 원전을 폐지하면 당장 전력대란으로 경제적 위기에 빠질 것처럼 야단법석을 떤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당장 탈핵으로 갈 형편이 아니라면서 원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원전의 비중이 59%로 늘어난 2030년에는 탈핵으로 돌아서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된다는 뜻인가? 원전 의존도가 현재의 2배에 이르는 2030년에는 탈핵이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경북 동해안은 현재도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한 지역이다. 만일 ‘동해안 원자력클러스터’가 조성이 된다면 경북 동해안은 원전 초밀집 지역이 되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될 뿐이다. 핵사고가 났다하면 연쇄 폭발로 경북지역 전체가 죽음의 땅으로 돌변할 수 있는 상황으로 더욱더 몰릴 뿐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 원전 확대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경북지역 주민들이 원전을 지역개발과 지방재정의 자립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필요악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원전에 대한 주민들의 저항이 집권당의 정책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원자력클러스터의 핵심은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 등을 추출하는 건식재처리과정인 파이로프로세싱과, 재처리 후의 플루토늄을 발전연료로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로 핵연료주기를 구축하는 데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30여년 전 미국 국립연구소가 고준위 핵폐기물을 재처리하기 위해 개발했으나 여전히 실험실 수준의 답보 상태에 있다. 또한 소듐냉각고속로는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만큼 일반 경수로보다 제어가 어렵고, 사고 시 방사능피해도 경수로보다 훨씬 더 크다. 실험 단계에서도 끊임없는 사고발생 때문에 미국과 영국, 독일도 소듐냉각고속로의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한 채 원형로 수준에서 개발을 포기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사고가 났다하면 핵재앙이 몰아칠 것이다.

핵재앙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원자력클러스터’의 유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탈핵에 있다. 반핵이 단순히 원전을 반대하는 데 비해 탈핵은 그 대안으로서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고효율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같이 추진한다. 우리나라 국민은 소비주의와 생활편의를 우선하는 생활 풍토 때문에 냉․난방 및 급탕과 관련한 에너지 절약이 쉽지 않다. 또한 철강, 석유화학, 기계조립 등 에너지다소비형 산업에 기반한 경제성장 구도 때문에 에너지 고효율화도 쉽지 않다. 특히 포스코, SK, GS칼텍스, LG화학, 호남석유화학, 여천NCC, 쌍용양회, 삼성전자, 현대오일뱅크 등 상위 10대 에너지다소비 기업은 일본 기업에 비해 최신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신기술 신공정 개발 등 추가적인 노력 부족으로 에너지 효율성이 매우 낮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도 이명박 정부가 재생에너지시장을 활성화시키던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버리고 목표치 조기 달성을 위해 대기업 중심의 ‘발전비율할당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쉽지는 않다. 그래도 탈핵만이 핵재앙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발행일 : 201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