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산업계의 대변자, IAEA
“IAEA는 살인자!(IAEA is murderer!)”
2008년, 폴란드 포츠난에서 열린 제1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4) 행사장 한쪽 편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NGO 들의 부대행사로 열린 토론회-‘기후변화와 핵발전’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밖으로 나가던 중이었다. 발표자였던 호주 출신의 반핵운동가 헬렌 칼디코트 박사(국내에 《원자력은 아니다(양문, 2007)》가 번역되어 있다)와 IAEA 관계자 사이에 언쟁이 붙은 것이다. 토론회 내내 헬렌 박사는 IAEA가 발표한 체르노빌 사망자 숫자가 축소되어 있다는 점을 소리 높여 비판했고, 이에 대해 불편했던 IAEA 관계자가 항의를 하자 강도 높은 언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내 주변에서 언쟁을 말리기 시작했고, 다음 토론회가 예정되었던 행사장이 정리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국제기구 IAEA, 독립적이지 못해
평범한 이들에게는 국제기구 중 하나 정도로만 알려진 IAEA. 그러나 이 해프닝은 그간 IAEA가 핵발전소와 관련해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1953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s for peace)’ 제안을 계기로, 1957년 만들어진 IAEA는 형식상 UN의 독립기구이다. 하지만 핵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그리 독립적이지 않다.
지난 3월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전 IAEA 출신 관료의 말을 인용해, 아마노 유키오 IAEA 사무총장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해 서방측에 치우친 의견을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의 근거가 된 IAEA 보고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이 신빙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보고서의 근거들이 새로운 사실이 아닐뿐더러 명확한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IAEA의 중립성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핵무기 분야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관련 분야에서 수없이 지적된다. 앞서 언급한 체르노빌 핵사고 암사망자 숫자와 관련해서, IAEA 보고서와 EU의회 녹색당 보고서―‘TORCH 보고서’는 7배~15배의 차이가 난다. IAEA에서는 사망자 숫자를 4천명으로, ‘TORCH 보고서’에선 3만~6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 대변
후쿠시마 핵사고와 관련한 IAEA의 태도도 계속 문제가 되었다. 작년 3월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 IAEA는 사고 내용과 그 심각성에 대한 발표를 뒤늦게 했으며, 지난 9월 열린 IAEA 연례총회에서 회원국들은 IAEA 조사단이 전세계 핵발전소 안전점검을 의무적으로 시행할 것을 요구했으나, 결국 ‘자발적으로 IAEA 조사단을 받아들일 것’을 포함한 행동계획을 승인하는 데 그쳤다. 독일, 스위스 등 탈핵을 이미 선언한 나라들은 ‘내용이 약하다’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인도의 반대와 일본, 미국의 미온적인 입장에 따라 안전촉구를 결의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다.
IAEA는 애초에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고,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대표적인 불평등협정인 핵확산금지조약(NPT)―핵무기를 갖고 있는 기존 5개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치 않는다―에 기반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핵사찰과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채찍’과 핵발전소의 건설 승인이라는 ‘당근’을 적절히 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IAEA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이다. 그들은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제대로 담보하지도, 그 내용을 책임지지도 못했다.
정부와 핵산업계의 IAEA 앞세우기
그간 우리나라 정부는 ‘국제기구’라는 이름을 앞세워, 불신받고 있는 한국 핵산업계를 보완해 주는 집단으로 IAEA를 이용해왔다. 굴업도 방폐장 부지, 경주 방폐장, 고리1호기 수명연장 등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안마다 IAEA를 초청해 ‘진단’을 받았으나, 굴업도에선 활성단층이, 경주에선 암반 부실이, 수명연장된 고리1호기에선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IAEA는 어떠한 해명과 책임도 지지 않았다.
국내 현안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며칠 동안 들러 문서만 보고가는 IAEA도 문제이지만, 권한과 책임을 갖지 않는 그들이 무슨 큰 공신력과 객관성을 가진 것처럼 홍보하는, 국내 핵산업계의 후진성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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