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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슈

<창간호> 핵발전의 안전은 사회적 소통이 확보해 준다

핵발전의 안전은 사회적 소통이 확보해 준다
IAEA 안전점검 결과 발표를 지켜보며

박진희(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지난 6월 7일, 수명연장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 있는 월성1호기에 대한 IAEA 안전점검 결과가 발표되었다. IAEA 안전점검 단장은 월성1호기가 향후 10년간 계속운전(수명연장, 핵발전 추진쪽에서 일컫는 표현 ― 편집자 주)해도 될 정도로 준비가 잘 돼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월성 핵발전소 소장은 조사단의 점검 결과 핵발전소의 안전성은 국제적으로 우수한 사례로 확인되었다고 발표하였다. IAEA 보고서는 정부의 수명연장 정책을 확정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IAEA라는 국제기구가 우리 핵발전소의 안전을 인정하였으니 정부의 수명연장에 더 이상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 것일까? 핵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이런 국제기구 소속의 전문가들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후쿠시마사고가 보여 주듯이 핵발전소의 안전은 국제기구 점검으로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반응로(핵발전 추진쪽은 흔히 ‘원자로’로 표현 ― 편집자 주)도 IAEA의 점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점검을 시행한 이번 점검단 발표에 따르면, 약 8일 간의 일정 동안 발전소에서 사전 준비한 주기적 안전성평가 보고서, 주요기기 수명평가 보고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토대로 경년열화(經年劣化,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빠지는 현상, 노후화를 뜻함―편집자 주) 관리 등이 국제적 기준에 따라 이행됐는지를 점검했다고 한다. 이는 IAEA 점검의 주요 내용이 발전소에서 제출한 보고서가 국제 기준에 따라 잘 작성되었는지를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문제는 IAEA에 ‘계속운전 안전성 평가’를 의뢰해서 점검을 받은 결과 계속운전이 중단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핵발전소를 둘러싼 사회적인 논란을 전문가들 지식을 동원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이 성공할 수 없음은, 핵발전 위험을 둘러싼 논쟁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1973년에 미국 국회에 기술영향평가국(Office of Technology Assessment)이 설치되었을 때 기술위험 논란의 주요 대상이 되었던 것이 핵발전이었다. 미국 정부는 이 곳에서 전문가들이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 방사성 물질의 위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면 논란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확률적 예측 공식 등 전문가들이 생산한 정보는 축적되어가도 정부의 예측대로 사회적 논란은 줄어들지 않았다. 자동차 사고보다 낮은 핵발전소 사고에 의한 사망률을 언급해도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을 겪으면서 시민들은 핵발전소 위험은 회복이 불가능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것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런 시민들의 불안은 핵발전소 사고 위험 확률 정보로는 잠재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시민들은 폐쇄적인 조직에서 생산된 정보에 대해서 그 조직이 전문가 조직이냐와 상관없이 불신하는 경향을 보였다. 어떤 배경의 전문가가 이들 위험 정보 생산에 관여하고 있는지, 정보의 생산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는지를 정보 신뢰에 대한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핵발전소 수명연장, 핵발전소 확대 정책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재의 사회적 논쟁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현재의 전문가 중심의 위험 계몽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발전소 폐쇄를 결정한 독일 윤리위원회가 언급하고 있듯이 궁극적으로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 핵발전소 위험에서 벗어나는 합리적인 해결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핵발전소 사고가 보여주듯이 핵발전소 사고는 전문가들의 예측 능력을 벗어나 있다. 핵발전소 수명연장 논란을 해소하는 길은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이런 불확실한 전문가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다. 핵발전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핵발전소 폐쇄 주장을 비롯한 다양한 핵발전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들이 표출되고, 소통되고, 수렴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이런 소통의 장이 마련이 될 때 정부의 핵발전소 관련 정보에 대한 신뢰도 획득될 수 있을 것이다. 핵발전 안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자 안전 점검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까지 시민들이 결정하게 하고, 점검에 필요한 질문 사항들 역시 시민들이 결정하게 하는 독일 정부의 노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발전소와 같은 위험 기술 정책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책 계획부터 실행에 이르기는 전 과정에서 시민들의 실질적인 참여를 어떻게 늘려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또한 핵발전소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기도 하다. 핵발전 정책은 이런 점에서 기존 정책 문화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