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신문을 지금껏 아껴주시고 애독해주신 구독자 여러분께 창간 50호를 맞이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오직 핵 문제에만 집중하여 걸어온 나날입니다. 처음 참으로 낯설고, 한편으로 어려운 주제를 다루다 보니 많은 분으로부터 어렵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탈핵을 자신의 주요 신념의 하나로 삼는 분이 많이 생기면서, 그조차도 너끈히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많아진 점이 참으로 기쁩니다.
탈핵신문은 전문지가 아닙니다. 그들만의 리그, 기술공학적인 연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전문 그룹이 생기는 것은 환영할 만 합니다. 그러나 핵의 반민주성을 타파하는데 개입할 시민의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의제의 가치 기준은 ‘사람’과 ‘생명’
지금은 탄핵과 조기 대선의 국면입니다. 한 점으로 사회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는 시기입니다. 역사의 이런 격랑 속에서 많은 의제는 잊히고, 겨우 몇몇 의제만이 목숨을 부지하게 될 것입니다. 감추어진 시대의 모순이 봇물 터지듯 드러나겠지만, 정작 제대로, 소중히 다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싸구려 취급을 받으면서 가볍게 소비되고 버려지고 말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적인 대응방식이라는 논리로 횡행할 것입니다. 당선 가능성을 위해 대연정을 맺고, 그에 걸맞게 요구 수준을 낮추어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전방위로 밀려들 것입니다.
탈핵신문은 지금껏 다른 길을 걸어왔고, 또 그래서 변함없이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치의 서열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순 없습니다. 어떤 것을 먼저, 또 어떤 것을 부득이하게 그다음으로 자리매김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정치적 수용 가능성이나 기술적 합리성으로 정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기준은 절대적으로 ‘사람’이고 ‘생명’이어야 합니다.
탈핵신문이 중앙이 아니라 지역을, 탈핵운동 내에서도 쉽게 잊히고 가볍게 다루어지는 주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사람과 생명’이라는 기준에 충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탈핵신문의 기사를 쉽게 쓰려고도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냥 평이하게 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 논리가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도대체 그것이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체감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일입니다. 밀양송전탑 싸움을 오랫동안 해오신 어르신들을 보면 제대로 된 공교육의 혜택을 보지 못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전기와 관련된 문제, 송전시스템과 핵발전소의 상관관계를 잘 이해하십니다. 70, 80대의 황혼기를 보내시는 어르신들이 웬만한 시민들보다도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식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삶과 에너지 문제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핵, 우리 삶과 연관된 본질적인 문제
탈핵신문의 과제는 그래서 탈핵이 결코 특별한 주제가 아니라 우리 삶과 연관된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기사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핵기술이 안전하지 않고, 경제적이지도 않으며, 깨끗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대안이 없어 불가피한 것이 아닌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핵기술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운영되는 비윤리적인 시스템이며,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위험한 독선적인 기술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탈핵신문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언제까지 어느 지점까지 도달해야 한다는 목적을 미리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것은 인정합니다. 상근 기자 1명 없는 신문사가 무슨 배짱으로 아직도 버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구독자의 관심이라고 하겠습니다. 탈핵으로 가는 세계사적인 흐름에 역행하여 핵발전 진흥과 이제는 핵무장론까지 거론되는 시기에 탈핵신문 하나쯤은 굳건히 자리 잡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탈핵신문이 폐간되어도 상관없을 만큼 탈핵이라는 흐름이 우리나라에서 구현되는 그 날까지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애정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발간사
김준한 발행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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