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2011년) 5주기, 체르노빌(1986년) 30주기. 과거의 한 사건을 기점으로 오늘을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수세적이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암울하고 참혹한 사건의 실상을 생생하게 떠올려 가해자의 무지와 오만을 지적할 때면, 부득이하게 반대급부로 피해자의 씻을 수 없는 상처며 그 트라우마(trauma,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재현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강고한 핵산업계며 정부의 태도를 수십 번 겪고 보면, 마치 우리가 그렇게 아프게 기억하는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상황이 한 걸음 한 걸음 현실로 다가오는 것을 무기력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도 됩니다.
물론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체르노빌을 거쳐 후쿠시마를 넘어 흘러온 지금까지의 시간에 분명 승리의 빛나는 성과가 있습니다. 먼저 설계수명을 10년 넘겼지만 끝내 이루어낸 고리1호기 폐쇄의 위업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핵발전 진흥정책에 균열을 낸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지난해 11월 ‘영덕 핵발전소 유치찬반 주민투표’도 거론해야겠습니다. 2004년 부안을 거쳐, 2014년 삼척의 민간주도 주민투표를 이어 이루어낸 직접민주주의의 성과로, 향후 탈핵운동의 하나의 전형(全形)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쉼 없이 대두된 수많은 탈핵이슈는 그 자체로 탈핵신문의 주요한 기삿거리였습니다. 맨 처음 탈핵신문을 기획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들이 의기투합하여 굳이 종이신문을 결의하게 된 이유는 결코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탈핵사회를 위한 모두의 연대의 와중에 흩어진 지역과 단체의 소식과 아픔을 이어주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나름 기여하기 위해 신문을 발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히 지난 한 해, 저희 신문의 노고가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탈핵운동은 서로 소식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면서 큰 흐름을 잃어버린 채 코앞에 닥친 각자의 문제에 매몰되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수많은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해져 그 정보가 양적으로 풍부해졌지만, 이젠 그것을 엮어내며 우선순위를 제대로 판별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곧 특별히 후쿠시마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의 연대와 국내·외의 언론과 책을 통해 정보 접근성이 대단히 뛰어난 시대에 돌입하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고 때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어떤 움직임도 거대한 탈핵을 향한 염원에서 제외돼도 될 만큼 하찮은 것은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이유로 핵이라는 문제를 실질적인 삶과 연결해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지속 가능한 세상, 핵이 없고서야 비로소 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맞이하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가장자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찬핵론은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하기에 긴밀한 연대가 대단히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가장 잔인한 핵마피아의 전술입니다. 약한 고리, 곧 핵이 내 눈앞에서 잠시 멀어진 듯한 착각을 일으켜 거짓된 안전의 환상에 젖어들어 지금 그대로의 삶을 유지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현실을 호도하게 하는 것. 그래서 탈핵신문의 제일 첫 번째 자리는 바로 그 ‘약한 고리’입니다. 제대로 된 기자 한 명 없고, 기업의 도움 하나 없이 버티어가는 보잘것없는 언론사일지 모르지만 가장 작기에 그래서 가장 효율적으로 집중하여 가장 큰 힘을 발휘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도 숨 가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고리핵발전소에서 겨우 11km 떨어진 해수담수 시설 운영과 관련한, 기장군민의 공급찬반 주민투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반드시 우리 가운데 탈핵을 기치로 하는 정치인을 곧추세워야 할 총선이 있으며, 또한 미루어낸 숙제처럼 버티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올해도 탈핵신문은 걸어온 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새롭게, 더 집요하게 핵을 담보로 영위되는 우리 일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지금 당장 늦지 않게 핵이 없어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데 한몫을 담당하겠습니다.
바로 그 길에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과 동참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6년 3월호
김준한 발행인(신부)
입금계좌 : 농협)352-0947-02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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