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 안옥례 집행위원
대전 유성은 핵연료 생산 공장과 하나로 원자로를 비롯한 연구시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내년부터 진행될 사용후핵연료 건식재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 실험’ 같은 현안도 안고 있다. 동시에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설립을 위한 조례 제정운동 등을 경험하면서, 주민들의 열기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탈핵신문은 지난 12월 20일(화) 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 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안옥례 씨를 만나, 대전의 현안과 그 동안의 주민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8살 딸아이의 엄마이며, ‘유성핵안전시민대책본부’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한살림 대전 핵없는세상을위한생명위원회 위원장, 대전시 시민안전실 정책 자문단 등 대전 지역의 핵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탈핵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는지?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여기에는 어떤 매트릭스가 있을까 라는 고민을 했었다. 그러던 중에 녹색평론(격월간 잡지) 읽기 모임을 통해 핵과 관련된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2013년 7월경 대전에 있는 한전원자력연료(주)의 연료 생산 공장 증설 문제로 지역에서 논란이 많았다. 아랍에미리트에 핵발전소와 함께 핵연료도 수출하기 위해 공장 증설이 계획된 것이다. 주민들의 반대 서명이 모아지고 대표들이 교섭에 들어갔지만, 놀랍게도 찬성에 사인하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전원자력연료(주)와 ‘상생협약’을 맺은 것이었다. 당시 협약서는 공개되지 않았고 많은 분들이 그 내용을 궁금해 했었다. 그 후, 2015년 2월 일부 주민조직과 시민단체, 협동조합, 종교단체, 정당들이 중심이 되어 ‘대전유성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제정 운동본부’를 출범시켜 조례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 했다.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 끝을 알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선 듯 마음을 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긴 고민을 이어가다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다.
●주민 조례 제정운동의 진행 과정은?
민간원자력환경안전감시기구 조례제정 서명운동은 2015년 4월부터 시작했고 7월 9일에 서명부 명단을 유성구청에 제출했다. 마침 메르스 사태가 터져, 마스크를 쓰고 거리 서명운동을 받는 등 어려움이 많았으나 힘든 조건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연대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법적 요건인 6180명을 훌쩍 뛰어넘은 1만여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핵관련 사안은 지방자치단체 사무 범위를 넘은 ‘국가사무’이고, 대전에 있는 시설들이 발전용 시설이 아닌 연구용 시설이기 때문에 관련 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 사실, 우리가 조례를 통해서 꼭 만들고 싶었던 것은 ‘민간환경감시기구’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공개하는 방사능 수치가 맞는지, 이 지역이 정말 안전한지’에 대해 실질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민간 기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례가 최종 단계에서 ‘감시 센터를 둔다’는 문구가 ‘둘 수 있다’는 문구로 수정되었다. 결국 감시센터가 아닌 위원회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조례가 통과된 것이다. 현재 조례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몇몇 사안들이 가지는 문제에 대해 수정 발의 안이 입법 예고된 상태이다.
처음부터 이런 결과에 대해 우려하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례운동본부에서 주민발의를 강행한 이유는 이 방법이 그나마 주민들한테 우리 지역의 핵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성이 현재 핵 문제와 관련해 직면하고 있는 이슈는?
2016년 6월에 최명길 국회의원실 보도자료를 통해 사용후핵연료가 대전에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1987년부터 2013년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1699봉의 사용후핵연료가 대전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핵폐기물에 속한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최소한 10만 년을 인간으로부터 격리해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게다가 발전소 내 이송도 금지된 손상된 사용후핵연료까지 대전에 반입이 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세슘137을 비롯하여 크립톤, 삼중수소 등 기체성 방사성 물질이 굴뚝을 통해서 그동안 방출되었다는 사실도 지난 10월 말에 알려졌다. 대전에 있는 하나로 원자로의 규모는 발전용 핵반응로(=원자로)의 규모보다 훨씬 작다. 그럼에도 어떤 분기에는 핵반응로가 있는 지역보다 대전이 더 많은 기체 방사성 물질을 배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전소 지역 방사능 비상 계획 구역은 20~30km인데 비해 우리 지역은 1.5km다. 그리고 1.5km 내에 3만7천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래서 위험성을 핵반응로의 규모로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것뿐만 아니다. 내년 7월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건식재처리(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금쪽같은 ‘내새끼’를 키우며 살고 있는 우리 지역의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우리만 모르고 진행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최소한의 안전성 확보는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와 관련된 내용이 공론회가 되고, 주민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연구원은 ‘안전하다’는 말만 일관되게 이어나갈 뿐이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내·외 안전기준을 다 지킬 만큼 자신감이 있다면 주민들이 요구하는 3자 검증(사업자 쪽 전문가, 주민 쪽 전문가, 시민사회 및 주민 대표)은 왜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활동하면서 어렵거나 힘들 때도 많겠다.
이런 활동을 하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 이웃들이 있다. 서민 입장에서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 집값의 등락에 예민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솔직히 나 자신도 우리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게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집값 등락보다 생명의 안전이 더 소중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하다. 그리고 첨예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이곳에서 내가 이 분야의 비전문가라는 것도 참 어려운 현실이다.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이 거대한 핵 관련 이해당사자들과의 갈등 혹은 싸움은 두렵고 지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을 먼저 안 사람이 나서지 않으면 이 문제가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 잡는다. 내가 걸어간 만큼 우리가 함께 한 만큼 세상은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유성주민으로써 핵발전소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지역의 핵관련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은 역시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핵발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핵과 관련해 너무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고 있다. 덮어놓고 핵발전이 최고다에서 반핵에 이르기까지.
이웃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려고 한다. 무작정 ‘탈핵해요’가 아니라, 먼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한다. 전기를 쓰는 것은 참으로 안락한 삶을 허락한다. 지난 여름의 에어컨 사용은 물론이고, 난방을 하는 와중에 온수매트를 켜면 금방 따끈한 아랫목이 된다. 우리가 영유하고 있는 안락함은 값싸고 친환경적인 ‘핵’발전에서 온다는 환상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 우리 모두의 머리에서 손과 발로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 핵발전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탈핵신문이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진실을 아는 것은 두렵다. 주변에 핵관련 현안을 알리려고 하면 “골치 아프다”며 싫은 내색을 하시기도 한다. 맞다, 경험해본 분들은 다 잘 아실 것이다, 너무나 골치가 아프다. 그럼에도 탈핵신문 독자들인 우리가 먼저 멈추지 말고. 혹은 이제 마음을 내셔서 이런 글을 처음 접하신 분들부터 생명을 이어나갈 터전인 우리 모두의 고향 ‘지구’가 치명적 한방을 맞을 수 있는 핵발전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사실을 알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 전 촛불 집회에서 들은 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자기가 가지고 논 장난감은 자기가 치우자”고 얘기했단다. 이젠 우리가 치울 때이다. 우리가 출동할 때이다.
탈핵신문 2017년 1월호 (제49호)
인터뷰·정리,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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