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차 녹색당 탈핵캠페인 현장에서... 이상희 함께탈핵팀장
다른 사람을 통해 처음 명함을 받았을 때 직함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탈핵은 알겠는데 그 앞에 붙은 ‘함께’는 뭘까. 탈핵을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는 운동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가 했는데, 신기하게도 예상이 적중했다.
“탈핵이 논리가 부족해서 밀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의 고민은 이걸 어떻게 대중운동으로 만들건가죠.”
가을색이 짙어지는 광화문사거리 원자력안전위원회 건물 앞에서 84차 탈핵캠페인을 마치고 난 뒤 이상희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평당원으로 지내다 녹색당의 상근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탈핵운동을 하는 단체들도 운동의 대중화에 대해서 고민은 하는데 막상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날 엄두를 잘 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탈핵집회를 위안부할머니들의 수요집회처럼 뭔가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운동으로 만들고 싶어서, 작년 3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진행하게 된거죠.”
물론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매주 집회를 이어 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애초 생각했던 집회라는 상도 서서히 캠페인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들의 참여를 고려해 저녁에 진행하던 것도 겨울로 접어들며 날씨와 유동인구를 고려해 점심으로 바뀐 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많을 땐 서른 명쯤 되기도 하고, 용인 같은 지역 당원분들이 한번씩 맡아서 진행하시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무래도 녹색당은 당원 모두가 탈핵에 대해서만큼은 동의하는 정당이니만큼 지방 당원분들도 꾸준히 관심을 보이시기도 하고, 자체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탈핵캠페인을 하시기도 하고 그래요.”
과연 평일 점심시간의 광화문 사거리는 점심을 먹고 일회용기에 담긴 음료를 마시며 삼삼오오 다시 일터로 발길을 옮기는 직장인들과 관공서에 볼일을 보러온 사람들, 이국의 관광객들과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 무리 등으로 부산했다. 목걸이 이름표에 회사이름이 선명한 깔끔한 차림의 직장인들은 간혹 냉담했지만, 반 친구들과 무리지어 시내 나들이를 나온 들뜬 학생들은 캠페인에 호기심을 보이기도 하고 유인물을 건네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깍듯이 예의를 차리기도 했다.
유인물을 나눠주고 서명을 받는,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캠페인이지만 탈핵을 주제로 가사를 바꾼 신나고 빠른 대중가요와 낯설지만 잔잔한 몇 개의 창작곡을 배경음악으로 곁들이니 지나는 사람들도,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도 ‘생기’ 비슷한 것을 얻는 듯 했다.
“몇달 전에 핀란드 녹색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저희가 하는 캠페인에 왔다가 인원이 너무 적다면서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그래도 그날은 다른 날에 비하면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었는데, 핀란드는 탈핵집회를 하면 사람들이 수백명씩 오고 그런다면서요.”
하지만 운동의 역사와, 그 운동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의 제반 조건들이 판이한 상황에서 단순히 참가자의 수만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6년의 한국과 핀란드를 비교하는 것보다는, 1996년 혹은 2006년의 한국과 2016년의 한국을 비교했을 때 좀 더 생산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1996년이나 2006년에는 탈핵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당 같은 건 꿈 같은 일이었으니까.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 이상희 팀장은 웃으며 대답했다.
“캠페인 장소에 변화를 주자는 의견도 있어서 검토중이에요. 기간은, 뭐 제 생각은 아니지만 탈핵이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위에서 그러네요.”
대답에 배어있는 여유와 느긋함은 당장에 크고 화려하지 않아도 조바심내지 않고 천천히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단단한 결심의 다른 모습으로 느껴졌다. 무릇 먼 길을 가야 하는 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듯.
“대만에서는 시민들 5만명이 거리에 나와 공정률이 98%나 되던 네 번째 핵발전소를 멈춘 사례가 있어요. 우리도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이 힘을 모아 이런 사례 하나쯤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불시에 찾아오는 혁명의 순간을 항상 대비하듯 아직은 꿈만 같은 그 순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부디 해를 거듭해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느긋한 표정으로 만날 수 있기를.
탈핵신문 2016년 11월호 (제47호)
인터뷰·정리 황성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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