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건설로, 두 번 집단이주, 고리→골매마을→한수원사택(임시)→신암마을
인터뷰_ 임창 씨(울산 울주군 서생면 골매마을 주민)
서생면 골매마을 임 창(82) 씨가 1970년대에 고리에서 골매마을로 이주한 뒤 직접 만든 항구를 바라보고 있다.
골매마을 주민은 올해 안에 신암마을로 이주하고, 이 항은 폐쇄된다. ©용석록
지난 7월 7일, 포크레인 한 대가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리 골매마을에 있는 제당을 허물었다. 40년 동안 풍어를 기원하며 고기잡이 나간 배가 무사귀환하길 기원하던 제당이다.
“서글프지. 우리캉 40년 같이 살았는데 억지로 보낼라카이 와 안 서럽노. 우리도 서글프지만 할배는 얼매나 더 서럽겠노.”
7월 6일부터 7일까지 이틀 동안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리8반 골매마을 제당 앞에 골매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우리가 고리에서 이사 올 때 ‘골메기할배’를 모시고 왔거든. 당시 고리 제당에는 골메기할배와 할매가 있었는데, 할배는 골매마을로
할매는 온정마을로 모셨어. 할배가 골매마을을 40년 동안 지켜줬는데 인자 우리가 신암마을로 또 이주하잖어. 그곳엔 신암마을 원주민이 있고 그들이 모시는 제당이 있어.”
임창 씨는 1935년도에 부산시 동래군 장안면 고리 111번지(옛 주소)에서 태어났다(현 82세). 6남매 가운데 장남인 그는 월내초등학교 1회 졸업생이고, 부산 대동중학교를 중퇴한 뒤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생업에 뛰어들었다.
임 창 씨는 고리에 살면서 스물일곱살에 인근 효암마을에 사는 김차옥 씨(현, 78세)와 결혼했다. 임씨 부부는 고리에서 부모님 모시고 신혼생활을 하다가 1969년 겨울 고리핵발전소 건설로 인해 부모와 함께 골매마을로 이주했다.
7월 19일, 울주군 서생면 신암마을 바닷가 골매마을 주민 집단이주지에 집짓기 공사가 시작됐다. 임씨는 자신이 살 집을 잘 짓고 있는지 보느라고 온종일 공사장에 머물렀다.
임씨는 1969년 겨울 골매마을로 이주했던 때를 회상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집을 지어놓지도 않고 고리주민들을 거의 강제로 이주시켰다. 사람들은 야산이던 골매마을에 군용 천막을 치고 직접 집을 지었다. 생계 대책이라고는 어업뿐인데 마을 바닷가에는 방파제와 축대도 없었다. 주민들이 돌멩이를 직접 구해다가 높이 2미터에 300여 미터 길이의 축대를 쌓았는데 그 기간만 3년이 걸렸다. 그 과정은 한겨울에 손발이 부르트고 진저리칠 만큼 험난했다고 한다.
임씨는 배 한 척 사지 못하고 남의 배를 타거나 원양어선을 탔다. 악착같이 번 돈으로 신리에 밭 일천 평을 사서 농사를 지었는데, 이마저도 신고리핵발전소 건설로 한수원 부지에 편입됐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몸에 기력이 없어 어업도 못 나가고 집 뒤에 있던 텃밭을 일궈서 생계를 유지했다. 한수원은 그 텃밭에 2015년 2월에 ‘경작 금지’ 표지판을 세웠다. ‘신고리5·6호기 수중취·배수구 공사’를 한다는 이유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수중취·배수구 공사는 폭약을 터뜨려 취수구 뚫을 통로를 만드는 일인데, 한수원은 공사장 바로 옆에 집이 있어서 소음과 진동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니 임씨 부부에게 이사를 가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즈그들(한수원)이 벌써 우리를 이주시켰어야 한다고. 한수원이 2000년도에 신고리3·4호기 건설한다고 이 마을을 묶어뒀거든. 그동안 집에 손도 못 대고 재산권도 행사 못했지. 이주지역 정하고 협의하는데 난관이 얼마나 많았는지 우리만 동동거리고…, 즈그는 여태까지 태평이다가 5·6호기 취수구 공사랑 3호기 가동이 임박하니까 인자서 똥줄이 타는 거지.”
임씨는 신암마을 이주를 앞두고 또 한 번 이사했다. 그는 현재 세간을 컨테이너 박스에 넣어두고 한수원 사택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다. 그 사이 집은 허물었고 취수구 공사는 진행됐다. 임씨는 고향 고리를 잊을 수 없다면서 높은 산에 있던 제당과 축항이 자주 떠오르고, 효암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참 좋았다고 했다. 임씨의 부인 김차옥 씨 고향 효암마을은 신고리핵발전소1·2호기 건설로 사라졌다.
신암마을 집단이주지 공사장에 있던 주민 한 분이 말했다.
“내 고향 고리…, 과연 아름다운 곳이었지. 지금은 들어갈 수 없지만 아직도 그 길 안 잊어버린다. 고리 들어가는 진입로에 우리 밭이 있었지. 고향을 코앞에 두고 다른 마을에 집 짓는데 과연 이것을 희망의 집짓기라고 해야 하나. 쓸쓸하지 않은가.”
1969년 우리나라에 최초 핵발전소 건설이 고시되면서 고리에서 집단이주한 주민들이 또 다시 핵발전소 건설로 집단이주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8반 골매마을은 1970년 부산 장안면 고리에서 강제로 집단이주 당했고, 신고리핵발전소3·4호기 건설로 또 다시 집단이주해야 한다. 2000년 9월 한수원은 골매마을에 신고리핵발전소3·4호기 건설을 고시했고, 골매마을은 16년 동안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이주도 못한 채 줄다리기하다가 올해 7월 15일 이주지역인 신암마을에 집 짓는 첫 삽을 떴다.
1969년 당시 고리 핵발전소 건설로 고리주민 148가구 가운데 43세대는 온정마을로, 40세대는 골매마을로 집단이주하기로 했다. 골매마을에 이주하기로 한 40가구 가운데 14가구는 이주보상비를 다른 곳에 쓰거나, 돈이 모자라 집도 못 짓고 흩어졌다. 골매마을에 이주한 26가구 가운데 어업에 종사하지 않던 6가구는 신고리3·4호기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된 뒤 마을을 떠났고, 남아 있는 20가구 가운데 18가구가 신암마을로 이주한다. 이들은 올해 안에 골매마을을 떠나 신암마을로 들어간다. 골매마을 진입로에는 철조망이 쳐질 것이다. 골매마을 주민들은 어업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어업에 종사하기 어렵다.
울산 울주군 서생면 신리8반 골매마을. 주민들이 제당에 모셨던 골메기 신을 떠나보내는 천도제를 지내면서
먼 바다를 보고 있다. ©용석록
탈핵신문 2016년 8월호
용석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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