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진 지 약 5년이 지난 2월, 세계무역기구(WTO)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했다. 한국의 방사능 검역 조치를 심판할 세 사람의 판정부를 구성했다. 본격적인 국제 심판 절차가 시작했다. 보통 1년 정도가 걸릴 그들의 심판에 따라, 한국은 일본 수산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능 검역 조치를 계속할 수도 있고, 아니면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
세 사람의 판정인, 그러니까 외교관, 컨설턴트(식품과학자), 그리고 변호사인 그들이 식품 방사능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이 판단하는 것은 한국의 방사능 검역 조치가 WTO 협정 조항을 위반했는 지이다. 그들은 식품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의 조치가 문서로 되지 않았고, 일본에게 명확하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로 문제 삼았다. 그래서 판정부가 심판하는 대상은 일본이 제기한 절차 조항 위반 여부이다. 일본 수산물의 방사능 안전이라는 본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일본 식품의 방사능 안전 문제를 판단해야 하는가?
시민이 결정해야 한다. 시민의 권력과 민주주의가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식품 방사능 안전 문제는 한국인만의, 또는 일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시민의 문제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일본 방사능 문제의 실제 상황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핵발전소 사고가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 방사능 오염수가 매일 얼마나 나오고, 일본 정부가 이를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세계 시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시민은 정보에 철저히 차단된 상태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게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처리 실태 자료가 있으면 공개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없다’고 답변 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 정부 자신이 만들었고 시민이 꼭 알아야 할 핵심적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 현지 조사 결과와 일본 수산물 방사능 위험 평가 보고서조차 시민에게 제공하지 않았다. 일본 수산물 방사능 평가 보고서 작성을 중단했기 때문에 완성된 보고서가 없다고 답변했다.
한국은 2013년 9월 일본 후쿠시마 주위 8개 지방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다.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에 방출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일본산 수산물 임시특별조치’라고 부른다. 왜 스스로 ‘임시조치’라고 부를까? 정부가 세계무역기구의 위생 검역 협정 5조 7항의 잠정 조치 조항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라, 한국은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합리적인 기간 안에 이 조치를 재검토해야만 한다(참고로 올해 서명을 한 환태평양 동반자 협정(TPP)은 재검토 기간을 6개월로 제한했다).
이 조항에 따라, 한국은 재작년 9월에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전문가위원회(위원장 이재기 교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재작년 12월부터 작년 2월까지 모두 세 차례 후쿠시마 등에서 일본 방사능 검역 실태 현지 조사를 했다.
한국의 재검토 결과는 무엇인가? 지금 시민과 세계가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일본 식품의 방사능 안전 문제는 세계적 문제이다. 일본이 한국의 조치가 WTO 협정 위반이라고 제소한 절차에는 미국, 대만, 중국, 유럽연합, 러시아, 인도 등 세계 주요 9개 나라가 참가했다.
놀랍게도 한국은 재검토 결과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까지 해야 했다. 이 소송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요청에 따라 일본 해양 심층수와 해저토(海底土) 시료 채취를 포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내용은 법원에 제출한 이재기 위원장의 증인진술서에 있다. 하지만 애시 당초 작년 1월 7일에 열린 제 5차 전문가 위원회 회의록에는 “해수 및 해저 퇴적물 시료 채취에 대해서는 현지조사와 별도로 계속 추진이 필요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일본의 요구에 따라 이 핵심적 조사를 포기했다.
핵심 쟁점인 방사능 오염수 계속 방출문제는 어떤가? 작년 1월 7일의 제 5차 회의에서부터 2월 25일의 제 8차 회의에 이르도록 계속해서 ‘방사능 오염수 지속 방출 문제’를 위원회 회의에서 논의했다. 그러다가 3월 18일의 9차 회의부터는 논의를 중단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검토 위원회 활동마저 중단했다는 사실이다. 중단이유는? 일본이 WTO에 제소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한국은 지금 일본 방사능 위험 분석 자료와 보고서 없이 국제 분쟁에서 일본과 싸워야 한다. 패소를 작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면 안 된다. 재검토위원회 활동을 재개해야 한다. 일본 해양 심층수와 해저토 시료를 채취하고, 방사능 오염수 지속 방출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시민에게 재검토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의 법치주의가 필요한 최소한의 역할이다.
시민의 권력이 식품의 방사능 안전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 세 명의 WTO 판정부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2016년 3월호
송기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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