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에너지교수모임’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로 전 세계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2011년 바로 그해 11월 11일, 탈핵 및 에너지 전환에 관한 학술연구와 교육은 물론, 종교단체, 시민단체와의 연대 및 국제연대를 목표로 창립되었다. 그 후 정확히 1주년 되는 2012년 11월 11일 ‘탈핵교수1천인선언’을 하면서 전국 교수 사회에 본격적으로 탈핵운동이 점화되었고, 지난 수년 간 나름 탈핵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14일(토) 오후 동국대에서 가진 창립 4주년 총회에 참석한 지방의 어느 교수는 “이런 단체가 있는 줄조차 몰랐다”고 아쉬운 한마디를 했다. 일반적으로 교수 사회가 자신의 전문 분야 외에 무관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삶의 핵심 또는 시대의 화두를 함께 고민하는 교수가 전국 7만여 명의 교수들 중 1백여 명에 불과하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교수·의사·변호사 ‘탈핵전문가 단체들’, 교류·연대의 필요성 공유…2016년 후쿠시마 5주년, 국제세미나 계획
다행인 것은 ‘반핵의사회’와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와 같은 탈핵전문가 단체들과 함께 활발한 교류와 연대의 필요성을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정책 수립의 감시와 참여에서 일반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정보의 대중화까지 상호 긴밀한 협력을 하기로 한 것은 탈핵운동의 진일보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소위 ‘균도 가족’ 판결을 계기로 전문가들의 협력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인지 실제 체험한 효과일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5주년이 되는 2016년 3월 5일(토) 세 전문가 단체들이 공동 주최하여 국제 세미나를 갖기로 합의한 것도 그 성과물 중의 하나다.
11월 14일 총회 직후 탈핵 관련 전문가 단체들이 합동세미나를 가졌다. 에너지 권력의 단단한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수시로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대안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가진 학술대회였다. 마침 영덕의 좋은 소식 덕분에 희망적인 분위기 속에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영덕주민들의 의사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발표했던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여 유치찬반 주민투표를 진행한 결과, 60.3%의 투표율에 91.7%의 유치 반대라는 고무적인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온갖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 투표를 방해해왔으나, 이에 흔들리지 않고 주민투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영덕군민들의 주인의식은 높이 살만하다.
‘후쿠시마 사고 배경, 책임주체 연구’, ‘갑상샘암 소송’ 등 네 꼭지 세미나 진행
이날 발표된 네 개 세미나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대환경대학원생(최종민)이 발표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하여 본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원전 중대사고 대비와 대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의 배경과 사고 책임 주체에 관한 연구결과다. 일본의 정치(여·야당)·관료(경제산업성)·산업(전력회사)·학계·언론의 소위 오각형 원자력촌(한국에서는 핵마피아라 부른다)이 공고히 다져온 원전에 대한 ‘안전신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경고를 주는 내용이었다.
쓰나미 지진 발생 가능성은 2002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고, 심지어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 발생 불과 4일 전인 2011년 3월 7일에도 쓰나미 최고 높이 계산에 대한 보고가 있었음에도 책임당사자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상정외(想定外)’, 즉 쓰나미는 리스크 분석 대상이 아니었다며 책임을 피해가는 전력회사와 당국자들. 결국 각 조직의 사회적 관계와 고도의 노동분업 등의 이유로, 발생한 위험이 누구의 탓인지 특정할 수 없게 된다는 소위 현대사회의 ‘조직화된 무책임(organized irresponsibility)’에 관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이론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는, ‘균도 가족 판결’로 잘 알려진 ‘핵발전소 주변주민 갑상샘암 소송의 쟁점’에 관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김영희 변호사의 발표였다. 2014년 10월 17일 “갑상샘암 발병에 원전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다. 피고(한국수력원자력)는 박00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라”는 부산지법의 판결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위험성을 인정한 한국 최초의 판결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갑상샘암의 발생에는 방사선 노출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며, 원거리 대조지역에 비해 근거리 거주자의 암발생률이 유의미할 만큼 높다는 사실 등 학계에서 검증되어 법관이 이해할 만한 수준의 자료가 확보된 것이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그 정도로 확실하게 입증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부분적으로 가해기관이 정확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지 않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축소, 은폐까지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핵발전소 주변주민 피폭선량의 평가방식은 이번 세미나의 핵심적 사안으로 세 번째 발표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었다.
셋째, 동국대 의대 김익중 교수가 발표한 ‘방사능 피폭의 건강영향(ECRR 2010 보고서의 개요)’은 방사능 피폭의 건강영향을 설명하기 위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피폭량 계산법을 비판하며 다른 방식의 평가를 주장하는 ECRR(유럽방사선리스크위원회)의 최근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피폭량 평가는 실제로 발생한 건강영향인 역학조사 결과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ICRP 방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논란의 초점이다. 방사능 피폭과 관련된 역학조사 결과들은 세계적으로 많이 축적되어 있는데, 그 수치의 대부분은 ICRP 피폭량에 근거한 이론적 평가치보다 300배 이상으로 나타난다. 저선량 피폭과 내부피폭을 과소평가하고, 최근의 세포생물학적 연구결과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반면에 ECRR 모델에 의한 계산결과는 역학조사 결과치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버리거나 수정해야 하는 것이 이론이다. 수십 년 간 도전받는 집단도 없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함께 세계 원자력계의 물적·행정적 지원을 받아가며 독보적인 위상을 누려왔던 ICRP가 민간단체인 ECRR의 도전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장정욱 교수의 ‘(개정)한·미원자력협정과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처분의 허상’ 발표였다. 올해 6월 15일 합의된 한·미원자력협정에 대해 외무부는 ‘평화적 핵주권과 자율성의 확대, 얻을 것 다 얻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실속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선 계속 쌓이게 되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문제다. 건식 재처리(pyro-processing)도 실제 사용후핵연료가 아닌 모의재료로만 가능하고, 그것도 우리가 가동할 수 있는 장치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도 1년에 재처리할 수 있는 양이 겨우 3kg에 불과하다. 재처리의 해외위탁도 국내에서 골칫거리인 보관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회피수단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수송, 재처리, 폐기물처리 등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도 전혀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은 지난해 유엔과 IAEA에 개정 핵물질방호협약을 기탁한 바, 핵물질 및 원자력시설이 테러에 사용되지 않도록 방호조치를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조약을 근거로 앞으로는 중요한 자료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성적 비판기능의 상실, 정보조작 등에 의한 핵마피아의 기득권 확대와 함께 비밀·은폐주의로 인한 대형사고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되는 이유다.
핵발전산업, ‘안전하고, 싸며, 깨끗하다’↔에너지민주진영, ‘불안하고, 비싸며, 더럽다’…길고도 험한 싸움
세미나 후의 토론에서도 의미 있는 내용들이 짚어졌다. 사회적 이슈가 될 만한 사안일지라도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학술적, 법리적, 운동적 차원 중 어떤 방법을 선택할 지 깊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핵발전산업이 “안전하고, 싸며, 깨끗하다”는 핵마피아의 신화에 대해 “불안하고, 비싸며, 더럽다”는 에너지 민주진영의 싸움은 길고도 험난하기 때문에, 사안별로 세밀한 접근방식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하는 것이 확신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미국 속담),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 때, 정의가 실현된다”(솔론)는 사회흐름이 하루빨리 뿌리내리게 되길 기원해 본다.
탈핵신문 12월호 (제37호)
박광서(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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