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이 원전확대를 '포기, 중단'하는 경로를 걷는 것과 반대로
한국 정부는'지속, 확대'라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2011년 한국사회의 원자력정책은 세계적 추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래로 세계 각국이 원전확대를 포기, 중단하는 경로를 걷고 있는 것과 반대로 한국 정부는 지속, 확대라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원자력을 포기한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과 스위스이고, 다른 선진국들은 원전확대를 잠정적으로 유보해놓은 상태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천명하는 나라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시스템이 확립되지 못한 개발도상국이 대부분이다. 반면에 한국은 OECD 가입국 가운데 특이하게도 원자력의존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국가이다.
최근 시민사회진영에서는 이 같은 한국 원자력정책의 문제를 이명박 정부의 실책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지금의 역행적인 정책추진이 과연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최근 들어서 원자력 의존적인 정책이 강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정부에게만 지금의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반핵운동 진영에 가장 큰 타격을 주었던 사건은 사실 2005년에 경주로 확정된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선정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방폐장 입지선정문제는 참여정부뿐만 아니라 과거 20년 동안 풀지 못했던 한국 정부의 오래된 숙제였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3,000억원이라는 경제적 보상과 주민투표라는 권한이양을 통해서 대표적인 혐오시설인 방폐장을 지역주민들의 선호시설로 전환함으로써 반핵운동진영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사회에서 원자력은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체제와는 무관하게 어떤 정권 하에서도 일관성과 경로의존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성장해온 정책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착화된 한국의 원자력정책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인으로는 ‘기술관료적인 행정체계’와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들 수 있다.
먼저 한국에서 원자력 마피아, 일본에서 원자력촌(原爆村)이라고 불리는 기술관료 중심의 행정체계는 일반 시민이 배제된 의사결정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다음으로 경제성장 제일주의는 한국이 경제성장을 지속해야 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처럼 값싼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는 3단 논법을 통해서 한국의 원자력정책을 지탱하는 문화적 기반이 되고 있다.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 한국의 원자력 정책이 이 같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 의존적인 사회구조를 고착시키는 핵심적인 주역 가운데 하나라고 판단된다. 왜냐하면 기업가 출신이자 747공약으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성장 제일주의라는 신화를 더욱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 정부는 국민들과의 논의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원자력정책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집권 3년차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졌듯이 국민들은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불통(不通)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국민들의 불안과 요구를 무시한 채 「제4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확정해서 공표한 상태이다.
신규원전 부지선정이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작업처럼 중요한 사안들이 산적해있는 2012년에 이명박 정부는 1년밖에 남지 않은 임기동안만이라도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책을 결정해나가길 바란다.
그렇지만 보다 현실적으로는 원자력정책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인식하고 고민하는 후보자를 국민들이 국회의원과 대통령으로 선출할 수 있어야 한국사회에서 탈원전, 탈핵에너지에 대한 정책적 논의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과 바람의 대한민국’과 ‘원자력공화국’ 가운데 과연 어떤 나라를 원하는지, 2012년에는 시민들이 현명하고 신중하게 투표해주길 부탁드리는 바이다.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2면 기사
진상현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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