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76주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국제심포지엄
핵 없는 세상, 피폭의 날에 염원하다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76년을 맞아 8월 5일 ‘피폭 76주년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 일환으로 국제심포지엄이 히로시마현민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해외 참가자는 온라인 줌(ZOOM)으로 참여했고, 전체 일정은 유튜브로 동시 생중계했다.
국제심포지엄은 1부와 2부로 나눠서 진행했다. 1부는 ‘핵 없는 세상, 피폭의 날에 염원하다’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 핵 군축을 둘러싼 동향에 대한 논의가 펼쳐졌다. 아키바 다다토시(秋葉忠利,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 고문), 케빈 마틴(Kevin Martin, Peace Action), 그레고리 컬래키(Gregory Kulacki, Union of Concerned Scientist)가 발제했다.
핵무기금지조약 비준 안 한 일본 정부 강력 비판
먼저, 아키바 씨는 올해 1월에 발효한 핵무기금지조약에 일본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것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피폭국인 일본 정부가 핵전쟁의 가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핵무기 폐기를 저지하는 최대 요인이 되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 반대에 도의적 설득력을 부여했다며, 앞으로도 시민사회에 ‘반 핵무기’ 여론을 확산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민사회가 핵무기 보유를 옹호하는 근거인 ‘핵억지론(핵우산 아래 있어야 적성국의 핵무기로부터 안전이 보장된다는 이론)’에 대한 반대 여론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탈탄소 사회 실현 등 사회적 패러다임 전환의 일부로 미래 세대와 함께 인류 생존을 위한 큰 과제로 핵 군축에 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이 핵확산 조장하는 현실
“미국이 선제적 불사용 선언해야 동북아 비핵화 실현 가능”
케빈 씨는 미국 바이든 정권의 핵무기 정책에 대해 발표했다. 오바마 정권 때는 핵 군축을 제창하면서도 30년간 1조 달러를 투자하는 핵무기 근대화 계획을 추진했다. 케빈 씨는 어떤 사람이 백악관 주인이 되든지 간에 미국의 핵 근대화 계획은 계승된다며, 그것이 실질적으로 전 세계 핵확산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이 ‘핵의 선제 불사용’을 선언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의회 동의 없이 핵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지금의 대통령 권한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계 미국인 단체들이 결집해서 만든 ‘코리아 평화네트워크’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호소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레고리 씨는 핵무기를 둘러싼 세계정세는 결코 밝지 않다며, 세계는 새로운 방식의 핵무기 개발과 핵확산 전쟁에 돌입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트럼프 정권 아래 이란 핵합의와 미-러 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일방적으로 이탈했다. 미-러 간에 2010년 합의한 전략적 핵무기제한조약(신 START)도 실효가 염려되었지만, 실효 1개월을 앞둔 올해 1월에 가까스로 5년 연장을 결정한 바 있다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의 대중국 강경책을 이어받았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계속해서 동북아시아의 핵위기를 오히려 조장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그레고리 씨는 핵무기 폐기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미국이 ‘선제 불사용’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동북아시아의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10년
일본, 독일, 한국의 에너지 정책 현황
이어 열린 심포지엄 2부는 ‘핵발전 사고부터 10년, 에너지 정책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주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독일, 한국의 에너지 정책 현황을 공유했다. 주요 발제에 앞서 후쿠시마 원전 고소단 대표인 무토 루이코 씨가 기조연설을 했다. 무토 씨는 고농도 오염이 계속되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현장과 고통 받는 후쿠시마 주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어 마츠바라 히로나오 씨(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ISEP) 이사)는 일본 에너지 정책 현황을 발표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에서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10년 동안에 약 10% 늘어난 20% 전반까지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한편, 핵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4~6%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일본에서도 디커플링이 진행되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재생가능에너지를 2030년까지 36~38%까지 확대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205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 100%를 목표로 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했다.
두 번째 발표는 독일이 국제사회에 앞장서 ‘탈원전’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온 배경을 소개했다. 발표자는 오랫동안 독일의 환경·자연보호 행정에 관여해온 스테판 벤젤(Stefan Wentzel) 씨다. 그는 독일에는 핵발전을 대신할 수 있는 충분한 재생가능에너지 자원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책 기반이 있다고 했다. 그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핵무기에 반대하는 폭넓은 여론,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에 이어 후쿠시마 핵사고로 분명해진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공감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재생가능에너지 단가는 독일에서 계속 낮아지고 있고, 이제 핵발전의 1/5의 투자로 안전한 전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지역 행정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어 에너지 정책 전환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주택과 교통수단 등에서 비약적인 기술혁신이 실현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에너지 정책에 대해 김현우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이 발표했다. 김현우 씨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선언’ 이후의 한국 에너지 전환 정책 현황을 소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정책에 대해 ‘정치 세력의 집단적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핵발전을 포기하기 위한 법률 제정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는 기후 위기 극복을 핑계로 핵발전의 이용 확대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비롯한 신기술 개발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여야를 막론하고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 사회, 정치권, 지역, 기업, 노동자에게 에너지 전환 정책의 전망과 이에 따른 이익과 피해에 관한 정직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를 추모하고 핵 없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매년 개최되고 있다. 대회를 총괄하고 있는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이하 원수금)은 1965년에 결성하였으며,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반핵·평화운동 네트워크다. 다양한 시민단체와 피폭자 단체, 노동조합, 정당 등과 연계해 반핵·평화 캠페인, 탈원전 운동, 피폭자 지원, 국제 연대 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올해 열린 원수폭금지세계대회는 후쿠시마(7/31), 히로시마(8/5~6), 나가사키(8/8~9) 세 곳에서 진행되었다. 대회 기간에는 ‘평화와 핵군축’, ‘탈원전’, ‘피폭자’ 등을 주제로 다양한 세션이 펼쳐졌다. 원수금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행사를 대폭 간소화했다. 세션 내용은 모두 원수금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다.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8월(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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