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뵐 재단은 지난 4월 26일, 체르노빌 재난 35년 후 유럽의 핵발전 현황을 점검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중 폴란드의 상황을 비에타 사이버만이 요약한 것을 소개한다.
1986년 4월 28일 이른 아침, 폴란드 북동부 마주리 지역의 방사능은 전 달 보다 55만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사성 구름이 체르노빌에서 폴란드로 흘러온 것이다. 하지만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폴란드 정부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고, 폴란드 과학자는 영국 BBC의 라디오 방송에서 재난에 관한 정보를 얻어서 이를 방사능 데이터와 연결할 수 있었다.
그제야 폴란드 통일노동당(KC PZPR) 중앙위원회는 갑상선암 위험을 낮추기 위해 아이오딘을 투여하는 조치를 했고, 국민들은 버섯과 우유를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공식적 제한은 없었고 5월 1일 노동절의 행진도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의 건강보다 정치적 이해가 우선인 시절이었다.
폴란드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첫 계획은 1956년에 시작되었는데, 나레프강과 부크강 일대에 200~300MW급 용량의 실험용 원자로를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1971년 폴란드 정부는 WWER-440(러시아형 가압원자로)을 갖춘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했다. 폴란드의 산업도 여기에 뛰어들었고, 1981년에는 원자로용 열교환기를 생산하고 소련과 헝가리 등 다른 나라의 핵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다. 1982년에는 폴란드 최초의 핵발전소인 ‘자르노비에츠’ 건설이 시작되었다.
자르노비에츠 프로젝트는 네 개의 원자로 총 1.6GW 용량으로 설계되어 1989년까지 이어졌지만, 체르노빌 사고에 대한 생태주의자들의 대규모 저항 이후 포기되었다. 하지만 이는 폴란드에 어떤 교훈도 주지 못했고, 2011년에 자르노비에츠는 다른 두 곳과 함께 다시 2020년까지 건설될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되었다. 2014년의 폴란드 정부의 연구결과는 첫 핵발전소가 2024년에 가동될 것이라고 제시했지만, 2015년에 재무부는 다시 2027년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계획은 여전히 실행되지 못했다.
폴란드의 여당인 ‘법과정의당’은 에너지 정책 문서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2043년까지 총 6~9GW 출력의 핵발전소 6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1호기는 2033년에 가동 예정이며, 미국, 한국, 프랑스 등과 발전소 건설 및 운영 파트너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알려진다.
폴란드 녹색 보수주의, 탄소중립 해법으로 핵발전 제시
폴란드에서는 핵발전을 탄소중립 해법으로 간주하는 녹색 보수주의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좌파 정치세력 일부에서도 에너지믹스에 핵발전을 포함할 것을 지지하며, 환경운동가들도 찬핵과 반핵으로 나뉜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6년 현재 폴란드의 핵발전소 찬성 의견은 38%, 반대 의견은 50%다.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의 잠재력에도 폴란드 정부는 2016년 재생에너지 ‘이격거리 법’을 통해 이런 인프라 개발을 차단했다. 결국, 발트해의 대규모 해상풍력만이 가능한 상황이다. 정부가 태양광 설치에 혜택을 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시민의 에너지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유럽 그린 딜은 핵에너지를 탈탄소 수단으로 포함하지 않지만, 폴란드 정부는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더불어 지구온난화 대응 전략으로 핵발전과 가스를 유럽 택소노미에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에 보낸 바 있다.
폴란드에서는 반핵 주장을 공개 토론에서 펼치기 어렵다. 정부의 고집은 여전하고, 우라늄 연료와 관련한 문제를 에너지 안보와 연결해서 보거나 방사성폐기물을 우려하는 이들도 거의 없다. 폴란드에서는 체르노빌의 교훈을 일깨울 수 있는 반핵 담론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김현우 편집위원
탈핵신문 2021년 10월(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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