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를 무시하는 밀실의 선택,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이진우(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사회 각 분야를 아우르는 최상위 정책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개별 부처의 수많은 계획과 궤를 같이 하지만, 에너지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에너지는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요인이기도 하고, 잘못된 에너지 계획은 환경은 물론이고, 고용, 물가 등에 부정적인 신호를 끊임없이 보낸다. 유관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민간단체와 산업계가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에너지가 가지는 포괄적 성격에 비추어보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은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합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2008년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1차 국기본) 수립 당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엘리트를 통해 정책을 수립한 후 요식적인 절차만 치른 후 계획을 확정짓는 광폭(狂暴)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일방적인 추진 과정은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2차 국기본) 수립을 앞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결론이 뻔한 거버넌스, 과연 합리적인가?
정부는 1차 국기본 때의 비판을 수용하는 차원에서 이번엔 사전에 주요 이슈별 워킹그룹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각 분야 전문가와 시민단체, 산업계가 참여해 다양한 이슈를 협의하고, 여기서 나온 결론을 토대로 국가에너지위원회에 상정하여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 이슈별 워킹그룹 면면을 보면 뜨악하다. 워킹그룹은 총 5개로 나눠져 있는데, 수요전망과 에너지 가격 등을 논의하는 ‘수요 워킹그룹’, 송전 문제와 온실가스 감축방향을 다루는 ‘전력 워킹그룹’, 핵발전소 비중 및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원전 워킹그룹’,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대책을 논의하는 ‘신재생 워킹그룹’과 함께 각 워킹그룹에서 나오는 결론을 토대로 최종 결론을 논의하는 ‘총괄 워킹그룹’이 그것이다.
2차 국기본에서 다뤄야 할 내용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는 면면을 보면 매우 편향적이다. 일례로 원전 워킹그룹의 경우 탈핵을 표방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몫은 전체 18명 중 2명에 지나지 않고, 중립적으로 평가받는 전문가를 합쳐도 원전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인사는 4~5명에 불과하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총괄 분과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후쿠시마 사고와 이후 이어진 국내 핵발전의 각종 사고로 인해 핵발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여론과 핵발전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0%를 상회하고 있는데도, 이를 수렴하기 위한 절차가 고작 시민단체 관계자 2~3인의 참여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탈핵에 관한 사회적 여론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거버넌스(협치)라고 불리는 논의 자리는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결론이 어떻게 도출될지 명확하다.
밀실 엘리트주의를 넘어 광장에서 논의해야
정부는 전문적인 내용이 많고, 전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이는 국민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오만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자신들의 환경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전문적인 논의과정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2차 국기본의 결정은 국민들이 내려야 한다. 따라서 각 워킹 그룹에서 논의된 내용을 전면 공개하고, 공청회 수준이 아닌 각계각층의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여론을 감안하여 워킹그룹을 재편해야 하고, 최종 결정 역시 총괄분과나 워킹그룹이 아닌 의견을 포괄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건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정부의 의무다.
발행일 : 201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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