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기본법 서명운동을 제안한다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핵을 벗어나려면, 국가차원의 탈핵선언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탈핵은 점점 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연이어 일어나는 핵발전소의 안전사고들은 한국이 핵사고로부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대선 후보들도 핵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실제로 탈핵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로드맵과 법률 제·개정, 예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공허한 논의를 하는데 아까운 시간을 다 써버릴 가능성이 높다. 아마 로드맵만 만들다가 끝날 가능성도 높다. 핵발전과 관련된 이권이 워낙 크기 때문에 반발도 심할 것이다. 일본정부도 얼마 전에 2030년대까지 탈핵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지만, 산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따라서 진정으로 탈핵을 하겠다면, 새 정권이 들어서는 순간에 곧바로 국가차원의 탈핵선언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법률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탈핵 및 에너지전환 기본법(이하 “탈핵기본법”)」이다.
「탈핵 및 에너지전환 기본법」의 주요내용
녹색당이 처음 제안한 「탈핵기본법」은 국가차원의 탈핵결정을 확고하게 하고, 탈핵을 위해 추진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 법률안이다. 법률안의 내용은 명확하다.
첫째, 신규핵발전소 건설을 전면 중단하는 한편, 설계수명이 완료되는 핵발전소들을 단계적으로 폐쇄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순차적으로 핵발전을 중단해 나가자는 것이다.
둘째, 핵발전 확대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법률들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는 것이다. 특히 핵발전 확대를 뒷받침하는 「원자력진흥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늘린다는 기존의 국가계획들도 모두 수정해야 한다.
셋째, 전기수요를 관리하고, 에너지효율성을 높이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한다는 것을 대안으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탈핵기본법이 제정되면, 그것을 바탕으로 더 강력하게 이런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탈핵의 과정을 전담할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사실 탈핵은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이므로, 그 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할 독립적인 주체가 필요하다. 그러니 기구로 ‘(가칭) 탈핵 및 에너지전환 관리위원회’를 두고, 이 기구가 탈핵의 전 과정을 전담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일관되게 정책을 추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탈핵의 목표시점을 명시하자는 것이다. 녹색당은 2030년 탈핵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그보다 더 앞당길 수 있다면 앞당기는 게 좋다. 일부에서는 2040년, 2060년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렇게 멀리 목표시점을 잡으면 그만큼 정책의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많아도 20년 정도의 기간을 잡고 로드맵을 세우고 추진해야 힘있게 탈핵이 추진될 수 있다. 독일도 그렇게 했다. 물론 2030년이 되더라도, 설계수명이 끝나지 않은 핵발전소들이 있다. 그러나 독일이 핵발전소 수명을 32년으로 정했던 것처럼, 어차피 핵발전 폐지는 기술적인 판단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정책적 판단문제이다. 안전성과 경제성이 담보되지 않는 핵발전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핵발전을 조기에 종료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을 한다면 핵발전소 폐쇄시점을 앞당길 수도 있다.
‘탈핵기본법’ 제정하고, 대선후보에게 ‘탈핵’을 요구하자
이런 내용을 담은 「탈핵기본법」이 제정되면, 핵발전확대로 일관해 온 대한민국의 에너지정책은 탈핵으로 큰 물줄기를 바꾸게 된다. 이 법률이 제정되면, 한국에서 탈핵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후보들에게도 막연한 탈핵선언이 아니라, 「탈핵기본법」의 제정과 같은 구체적인 약속을 받을 필요가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하지만, 집권 초기의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법통과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 일단 대선 때까지 서명운동을 할 것을 제안한다. 서명운동을 할 내용을 제안해 보면, 첫째, 탈핵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 전체에 대한 요구이다. 둘째, 대통령 후보들에게 탈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요구사항들을 걸고 서명운동을 하면서, 그와 동시에 유권자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약속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 첫째는, 투표를 할 때에 탈핵에 대한 입장을 투표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사는 지역과 내 생활에서부터 탈핵을 위한 실천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을 통해 대선 때까지 탈핵을 위한 힘을 모아 나갈 것을 제안한다. 그래야만 대선 이후에 탈핵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탈핵을 바라는 시민들이 믿을 것은 결국 ‘핵발전은 위험하고 경제적이지도 않으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비윤리적 행위’라는 진실을 알고, 작은 실천이라도 하려고 하는 우리 자신들 뿐이다.
발행일 : 201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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