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교수 인터뷰
‘토론의제’는 탈핵 여부, ‘투표의제’는 신고리5·6호기 건설중단 여부
지난 7월 24일 ‘신고리5·6호기’ 건설 여부를 판단할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3개월간의 공론화를 통해 ‘신고리5·6호기’의 운명이 결정될 전망이다.
탈핵신문은 지난 8월 1일(화) 오랫동안 공론화를 연구해온 이영희 교수(가톨릭대)를 대한상공회의소(서울 중구) 인근에서 만나, 공론화가 무엇인지, 현 정부의 공론화 계획은 무엇이며, 바람직한 공론화를 위해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본인 소개?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다. 연구 분야는 과학기술 사회학, 환경 사회학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갖는 의미와 역할은, 과학자들로 국한하지 말고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운영해 가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및 환경정책에 어떤 식으로 시민 참여를 고취시킬 수 있을지 그 모델과 효과, 특히 핵발전을 비롯한 위험기술의 정책과 논쟁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어떻게 설계·운영할지, 지난 25년 동안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하며 연구해 왔다.
‘공론화’란?
공론화란 사회적인 쟁점에 대해 소수의 특정 관료나 전문가, 정치인의 독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일반 시민, 직접적인 이해 관계자, 그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공론화라는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때다.
먼저 대통령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방안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가 수행되었고, 이어 부안사태 직후 정부와 시민환경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 에너지 거버넌스 기구로서 만들어진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가 구성되어 이 흐름을 이어갔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큰 쟁점이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포괄적으로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밟자는 문제의식에서 공론화TF가 만들어진 것이다. 공론화의 구체적인 방법, 절차에 대해 고민·설계해보자는 취지로 핵발전업계, 환경단체, 관료, 전문가 등이 모였는데, 나도 함께했다.
2008년 초에 거기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방안에 대한 권고 보고서가 나왔는데, 그 때 ‘공론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즉, 공론화란 “특정한 공공정책 사안이 초래하는, 혹은 초래할 사회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반 시민과 이해관계자들 및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함으로써 정책결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일련의 절차”라고 표현되었다.
공론화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에는 ‘선호취합’ 모델과 ‘숙의’ 모델이 있다. 공청회, 여론조사, 국민투표 등을 통해 시민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해 내는 방법이 ‘선호취합’ 모델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짧은 시간 내에 여론 파악이 가능해서 대표성을 확보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선호는 정보에 대한 접근과 숙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숙의’ 모델은 사람들이 학습과 토론, 그리고 성찰을 통해 자신들의 판단, 선호, 관점을 변화시켜 나가는 동태적 과정이다.
‘숙의 모델’ 중 하나인 시민배심원제는 15~20명의 소규모 시민을 무작위로 뽑아 쟁점 사안에 대해 3~4일 정도 토론한 후 투표라는 형식으로 시민들의 선호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기존 여론조사나 공청회보다 훨씬 더 심사숙고한 의견을 도출할 수 있지만, 소규모의 인원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그래서 나온 새로운 개념이 미국 스탠포드대 정치학자 제임스 피시킨(James Fishkin) 교수가 1988년에 제기한 ‘공론조사’이다. ‘공론조사’는 과학적 표집을 통해 200~400명 정도의 대표성을 가진 시민들을 선발한 다음, 그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함께 찬반토론 등을 통해 논의하고 숙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공론조사 전과 후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방식이다. 시민배심원회의의 ‘숙의성’과 여론조사의 ‘대표성’ 사이의 균형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현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계획’은?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신고리5·6호기 백지화를 공약했다.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앞으로 탈핵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했고,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건설공사를 일시 중단하고 10인 이내의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 무작위로 선발한 시민배심원단으로 하여금 최대 3개월 동안의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적 판단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5·6호기의 운명은 공론조사에 따를 것’이라고 천명했고, 7월 24일 ‘중립적’ 인사 9인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즉, 정부는 신고리5·6호기 건설 여부를 앞에서 언급한 ‘공론조사’ 방식을 채택해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은 공론조사를 설계하고 중립적으로 운영하는 일에 국한된다. 무작위로 2만 명 정도의 시민에 대한 여론조사를 거친 후, 당사자 의견을 물어 350명 정도의 시민배심원단을 선발해 전문가 설명, 찬·반토론 등 숙의 과정을 거쳐 내려진 시민배심원단의 결론을 공론화위원회가 취합하면, 대통령은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형식적 차원의 결정을 내린다. 즉 실질적 결정권을 시민에게 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동안 ‘거버넌스(민·관 협치)’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시민참여가 이루어져왔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만약에 정부나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된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촛불 시민혁명이 만들어낸 성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주 예외적이지만 분명히 시민권력이 행사되어, 우리 사회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현 정부의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계획’에서 아쉬운 점은?
첫째, 공론화위원회 구성원들 중 실제 공론화를 실시·연구해본 사람들이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민감한 갈등 사안이다 보니, 이 사안에 대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할 시간이 필요한데 문제는 공론화위원회 활동 기간이 불과 3개월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이 진행되다보면 추후에 오히려 여러 잡음이나 불필요한 갈등이 생겨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10월 21일까지 결정하는 것으로 못 박았지만, 최소 한 달 정도 더 시간을 주는 유연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둘째로, 핵발전 문제에 직접 관련된 핵심 당사자들의 공론화 절차와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중요한데, 현재 공론화위원회와 찬핵, 탈핵 양쪽 당사자 사이의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셋째, 공론화를 위한 환경조성이라는 측면에서, 거대한 자원 동원력을 가진 한수원의 중립성 유지를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공기업인 한수원에 대해 공론화 기간 동안 광고 중단 이상의 중립성 유지가 요구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사 중단으로 인해 발생한 신고리5·6호기 지역주민과 노동자, 관련 기업들에 대한 피해 보상계획도 발표되어야 한다.
현 정부의 ‘계획’에서 고려해야 할 점은?
공론화에 직접 참가하는 시민 배심원단은 ‘mini–public’으로 일반 시민대중의 여론 흐름에 민감하게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종 결론은 소수의 시민배심원단이 내리더라도 공론화 기간 동안 사회 전반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소위 ‘공론화의 사회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배심원단과 공론조사에만 국한하지 말고, 공론화 관련 행사들을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이 주제에 대한 사회적 학습과 숙고의 시간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신문 지면이나 TV 토론회를 통해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토론을 촉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상다큐나 책자를 제작해서 일반 시민들에게 보급하는 것도 필요하다. 10월 초에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연휴가 있다. 이 때 일반 시민들이 고된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우리사회 공동의 과제인 사회적 문제에 대해 ‘시민으로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때 시민들에게 신고리5·6호기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에너지 정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편성했으면 좋겠다.
기타, 하고 싶은 말은?
이번 신고리5·6호기 공론화의 ‘투표 의제’는 신고리5·6호기 건설중단 여부에 국한될지라도, ‘토론 의제’는 결국 탈핵 여부, 즉 한국사회 에너지정책과 핵발전 지속여부 등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고리5·6호기 공론화’는 그간 일방적인 핵발전 홍보에 과다 노출되어온 일반 시민들에게,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에너지정책의 방향에 대해 비교적 균형 잡힌 논의과정에 참여하여 숙고할 수 있는 공론장이 처음으로 열린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탈핵진영으로서는 한국 사회의 40년 핵발전 역사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공론의 장을 통해 시민들에게 탈핵 담론을 확산시키고 그 주장의 설득력을 검증받는 엄중한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공론화 과정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공론화위원회를 감시하기도 해야 하지만,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 문제와 더불어 ‘탈핵 담론의 사회화’라는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결국 탈핵이라는 것은 장기적인 사회변화 속에서 이루어질 것인데, 정부가 탈핵을 선언했지만 제한적이고 불안정하다. 향후 정권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은 시민들의 힘이다. 시민들의 마음에 탈핵의 가치를 각인시키고 그 필요성에 대해 시민 스스로가 이해하고 지지해 가도록, 이 공론화 기간을 탈핵 논의의 장으로써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탈핵진영이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탈핵신문 2017년 8월호 (제55호)
질문 윤종호, 정리 오하라 츠나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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